법문듣기
 

진리의 제3법칙, 열반적정(涅槃寂靜)_(1)

문사수 2014.06.10 조회 수 21726 추천 수 0

이번이 진리를 파악하는 스스로의 눈을 키우기 위한 세 번째 시간인데, 법문을 앞두고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매일같이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사고를 접할 수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천재지변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선박이나 철도 등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집단시위를 하면서 그로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립니다. 어떤 사건은 멀리 남의 일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곧 나에게 닥칠 일들로 다가오기도 하면서 주변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을 접하면서,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해 정말로 마주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님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우리의 자리매김은 어때야 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무엇보다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별스러운 게 아닙니다.
비교상대 세계에서 나를 기준으로 한 삶을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위해서 나름의 온갖 조치를 합니다. 빈틈없이 준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법우님은 일본을 휩쓴 쓰나미에 대해 기억하실 겁니다. 일본사람들이 지진이나 해일에 대한 얼마나 많은 예방책을 갖고 있었습니까? 하지만 순식간에 밀려든 쓰나미는 집, 도로, 논밭을 삼키면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까지도 삼켜버렸습니다. 나름의 조치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을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상대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궁극적일 수 없습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 접하게 되면 부처님의 법을 들어야 할 텐데, 오히려 부처님 법을 등지려는 풍조를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의 시대를 말법시대(末法時代)라고 진단합니다. 지나가는 에피소드나 협박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렇게들 ‘나’를 내세우려 하는지요!
내가 만들어낸 결론으로 다른 사람을 구속하기 좋아하고, 그것에 의해서 또다시 덮어씌웁니다. 이것이 바로 윤회(輪廻)입니다. 즉, 윤회는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이처럼 윤회하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진리를 기준으로 살아가기보다 자기의 삶이 결과적인 입장에서 확인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종교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이 많은 곳에 진리가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진리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종교의 현장이라고 지레 짐작해버립니다.
다수가 모인 곳에 진리가 있습니까?
다수의 의견이면 그것이 진리입니까?
대중의 선택이 항상 옳았습니까?
사실상 인류가 만들어낸 정치적 제도 하에서 가장 최악의 정치제도로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그나마 선택할 것이 민주주의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든 민주적인 입장에서 선택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최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어떤 것이든 민주적으로 선택하겠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부처님의 깨달음마저도 다수결의 투표를 통해서 하겠다고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불법(佛法)이 있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행하면 그것을 법이라고 착각합니다. 즉, 나에게 익숙한 것이 다가오면 그것이 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진리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지난 두 달에 걸쳐서 우리는 부처님께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나타나는 현상은 항상 하지 않다)제법무아(諸法無我: 나라고 주장할 바 실체가 없다)를 배웠습니다.
그러면 모든 나타나는 현상은 항상 할 수 없다는 것이 허무한 것인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현상은 허무하지만 인생은 허무하지 않습니다. 현상이 항상 하면 죽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상은 항상 하지 않고 변화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안심(安心)법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상의 주인공인 나 또한 어떤 한 가지 모습으로만 머물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시집 장가가고, 또 아이를 낳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법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하지 않은 현상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정직한 삶입니다.

이렇게 계속 바뀌고 있는 현상계에서 나라고 주장할 바 실체가 없다는 것을 마주해야 합니다. 나라고 주장할 바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너와 나의 대립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너’라는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도 대립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지옥을 가게 됩니다.
나라고 주장할 바 실체가 없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연기(緣起)하는 것입니다. 다만 연(緣)하여 일어날 뿐입니다.
남편으로 연하여 아내라는 입장이 있고, 아내로 연하여 남편이 있게 됩니다. 아버지를 연하여 자식이 있고 자식을 연해야 아버지가 됩니다. 자식 없이 혼자 아버지가 될 수 없고, 아버지 없이 자식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가 연기입니다.
이것이 진리적인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진리란 보편적인 것이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특별한 것으로 오해하고, 그래서 특별함을 좋아하고, 특별함이 있다는 곳을 쫓아갑니다.

왜 특별함을 쫓아갑니까?
나라고 주장할 바 실체가 없는데 그것이 고정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내 손자가 크기를 바라면 나는 늙어야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손자가 크는 것은 바라면서 내가 늙는 것은 싫어해요. 대학교를 들어가려면 고등학교 졸업해야 하는데, 고등학생으로 머물려고 합니다. 하나는 좋고 또 하나는 싫다고 하니, 모순입니다.
여기에서 번뇌가 일어납니다.
번뇌란 잘못 가고 있는 내 삶의 방향을 수정하기 위해 일어나는 묘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번뇌를 싫어합니다. 번뇌를 피하기 위한 수많은 정보를 찾습니다.
기웃거리는 곳도 많아지고, 남들의 이야기도 듣고, 도서관에 가서 문헌들을 뒤지기도 합니다. 수많은 것을 통해봐야, 끝내는 그것을 가지고 사는 ‘나’로 돌아갈 뿐인데도 불구하고, 끝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합니다. 수많은 비방(秘方)과 요행수와 기적을 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라는 사람이 고정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설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라는 실체가 없는데도 스스로를 고정시키는 버릇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결과만 있으면 다 해결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가득합니다.
지금 막혀있는 것이 어떤 비방으로 한방에 끝나기를 바라면서, “이도령이 등장하는 순간 고생 끝!”이라는 춘향이 식의 망상에 젖어있는 것입니다.
............................................................................................................계속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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