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왕생
 
극락왕생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님을 믿는 참생명의 길로 들어갑니다
불교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가
극락(極樂)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반쪽짜리 정답입니다.
만일 죽어야만[死] 가는 세계가 극락이라면,
극락은 생(生)의 세계에는 없기에 유한세계이고.
또 생사(生死)와 대립되어 있기에 상대세계
일뿐입니다.
대립이 있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괴롭습니다.
극락(極樂)이란, 말그대로 궁극적인 즐거움이 있는 세계인데 대립이 있다면
이름에도 걸맞지 않고, 공상과 상상의 세계로 치부될 뿐입니다.

불자(佛子)라면 누구나 가서 나고 싶어 하는 극락!
삼세 모든 부처님께서 그 세계에 가서 나기를 발원하라고 독려한 그 세계가
생사를 초월하지 못한 상대유한이라면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미타경에 극락세계는 ‘여기로부터 서쪽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난 곳’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죽어서 가는 곳이란 말씀은 없습니다.
‘여기’란 나라는 중생이 있는 자리를 말합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쪽이므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듯, 생명의 고향을 가리킵니다.
‘십만억 국토를 지난 곳’이란 중생으로서의 수많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판단 등이 필요없게 된 그 자리를 말합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중생세계의 부정’‘나무(南無)’할 때
왕생(往生)하는 세계가 극락(極樂)임을 설법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란 법문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주인이 되어 산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본래부터 절대생명을 살고 있으니까,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내가 주인이라는 믿음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생활하시는 분이 월급을 더 받으니까 혹은
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니까 직장에 나가서 일한다면,
그사람은 그 직장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조건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니까, 손님이거나 노예일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처한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무조건 나무아미타불 할 때, 나의 참생명의 세계를 놓치 않을 때
비로소 주인으로 산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생과 사에 관계없이 주인으로 사는 그 자리가 바로 진리의 자리, 극락세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