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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지족(吾唯知足)의 날, 입춘을 맞아

문사수 2014.02.04 조회 수 30404 추천 수 0

오유지족(吾唯知足)의 날, 입춘을 맞아

 

법문_여여법사

 

새삼스레 좋은 날을 맞는 법우들을 찬탄합니다. 왜 그러할까? 누구나 그 좋은 날의 주인공 되어 살아갈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회 달력을 펴면, 2월 4일자 칸에 “입춘 <오유지족의 날>”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맞습니다. 입춘(立春)이라고 할 때, 이는 단순히 일 년에 한번 맞는 많은 절기 중의 하나인 날로 끝나지 않습니다. 흔히 이날로 시작해서 봄기운이 본격적으로 움튼다고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뜻이 깊은 날입니다.

 

그럼 무슨 뜻이 그리도 깊다는 말인가?

 

답에 앞서서 먼저 묻습니다.
 

 

“하루 중에 가장 어두울 때가 언제지요?”

 

네. 해뜨기 바로 직전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익숙하다 보면, 자칫 해가 떠서 날이 밝아 온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언제쯤이면 날이 밝을까 기다리다가도, 나름대로 측정한 만큼의 시간에 맞춰지지 않으면, 마치 스스로를 어둠의 자식인 양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둠은 그 농도를 더해가다가 지난 하루의 어느 시간보다 더 어두워지는데, 그때가 바로 해뜨기 직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입춘보다 앞선 절기인 동지(冬至) 때에 새알심을 먹었지 않습니까? 전날까지 밤이 길다가 동지부터는 낮이 길어집니다. 일 년 중에 가장 어두웠던 날을 뒤로하고 이때부터 밝음이 많아집니다. 그렇게 시작된 밝아짐을 본격적으로 맞이하는 때가 입춘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네들이 참 지혜롭게도 천지자연이 오늘로 해서 다 깨어나는 날로 기념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입춘이란, 내가 동지를 맞아 새알심을 먹어서 밝음을 내 생명의 근원으로 모셔놓았지만, 아직은 어둠에 젖어있던 습(習)이 남아있는데, “습에 젖었던 내가 이제는 그마저도 떨치고 일어나겠습니다.”라고 결심하는 날입니다.

 

이제 자신의 삶을 더 이상 한정시키며 규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사건을 앞세운 상대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지난 날 어둠에 익숙하던 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 법문한 적이 있듯이 비교된 행복은 비교된 불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못난 삶은 동지 이후에 바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부터는 여태까지의 습이 어찌 하든 말든, 습에 찌든 중생이 아닌 부처님생명으로서 이제 나아갈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자신이 부모 세대가 되었든, 자식 세대가 되셨든 간에 분명한 게 있습니다. 내가 밝아지지 않으면, 나를 둘러싼 삶들 즉, 그것이 누구든 또는 무엇이든 간에 도저히 밝아질 수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 역사상에 널리 알려진 반면교사(反面敎師) 두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하나는 조선시대 때 간신으로 이름났던 유자광의 집안 이야기입니다.

 

유자광이란 사람을 역사적으로 깊이 몰라도 이름을 풀이하자면, 아들자(子)에 빛 광(光)입니다. 자손이 빛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도 자기 죽마고우였던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것도 역적으로 몰아서 말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삼형제인 아들들을 잘되라고 재산을 많이 물려주고, 좋은 자리에 앉게 하기 위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던 겁니다.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아무리 대단한 권세도 십년을 못 간다고, 마침내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자기가 역적이 되어 경상도 두메산골로 귀향을 갔습니다. 거기서 칡뿌리를 캐먹고 살 정도로 힘들게 삽니다. 한 때는 곳간에서 굴비가 썩고 쌀이 썩어서 썩은 물이 흐를 정도였다던데, 그렇게 호사를 누리던 사람이 귀향 가서 칡뿌리를 캐먹고 살았으니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버지는 이런 정황인데, 그렇게도 애지중지 했던 아들들은 어땠을까요? 비록 역적으로 몰렸지만 그래도 자신들에게는 아버지인데, 아무도 찾아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굳이 역적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그랬던 겁니다.

 

이렇게 귀향살이를 하던 유자광이 드디어 죽습니다. 그 당시의 관습상 간신이나 역적이 죽고 나면 자손들도 시체를 걷어 갈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도 한때는 친구였던 정이 떠오른 한 사람이 왕에게 시체라도 거둘 수 있기를 주청(奏請) 하였습니다. 허락은 받은 친구가 그래도 인륜을 어길 순 없다 해서 아들들한테 연락을 합니다. “비록 너희 아비가 역적노릇을 해서 많은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지만, 너희들에게는 아비이니 시체를 거두어가라”고 배려를 하였습니다.

 

그 결말은 어땠을까요? 소식을 듣자마자 큰 아들은 병(病)을 핑계대고서 누워버립니다. 너무 아파서 못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엔 둘째 아들을 찾았더니, 술을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서 못 일어난다는 겁니다. 셋째 아들은 집에 있다가 누군가 자기를 찾으니, 잡으러 오는 줄 알고 뺑소니를 쳐버렸습니다. 셋이나 되는 아들들 잘되기를 바라며, 못된 삶을 살았던 유자광의 시체는 끝내 친구가 거적에 말아서 수렴해줬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저 유명한 이완용입니다. 이 이완용집안에 대해선 얘기가 아주 많습니다만, 이완용의 직계 자손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한마디로 그 집안은 대(代)가 끊겼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이완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텐데, 이 사람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일본에서 엄청난 돈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그 아들들과 갖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한 아들이 정신질환으로, 또 다른 아들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립니다. 그러다 두 아들이 모두 이완용 생전(生前)에 죽습니다. 뿐입니까? 이완용의 부인이 당대의 미인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미인인 부인을 두고 자기는 중요한 판서(判書)를 몇 번 지냈습니다. 게다가 나라를 팔아 손꼽히는 재산가가 되었지만, 그 재산을 물려주려고 했던 아들들은 온전치 못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예를 드는 것은 슬픈 얘기를 하거나 혹은 가뜩이나 힘든 여러분을 겁박하려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는 유자광과 이완용의 자식 얘기를 했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누구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산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는 대상이 부모가 되었든, 남편이나 아내 혹은 친구가 되었든, 내가 누구 때문에 무엇을 한다는 건 다 핑계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입춘을 맞으면서, 나로부터 밝아지는 것 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자식이 걱정이다. 부모가 걱정, 친구가 걱정이다. 나라가 걱정이다. 도저히 손에 꼽지 못할 만큼 온갖 걱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 그럼 누구 걱정부터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나로부터입니다. 이걸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자식을 생각하면 눈을 못 감을 것 같아”라고 넋두리 할 새가 없습니다. 이런 말은 삶의 현장에서 본다면, 다 거짓말이 되고 맙니다.

 

나로부터 밝아지지 않으면, 자식이 어두워집니다.

나로부터 밝아지지 않으면, 부모가 어두워집니다.

나로부터 밝아지지 않으면, 친구가 어두워집니다.

나로부터 밝아지지 않으면, 나라가 어두워집니다.

 

이는 곧 누굴 원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원망의 상대인 그 누구와 함께 사는 것 또한 어느 사람의 업(業)입니까? 그런 경우를 맞이하는 나 자신을 결코 한 치도 떠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내 업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사는 건, 누구의 업입니까? 바로 내 업입니다.


 

이와 같이 나를 떠난 세상은 따로 없습니다. 이러한 삶의 주인공이 입춘 날을 맞아서 동지 때부터 가졌던 가능성의 세계를 실현합니다. “습에 젖었던 내가 이제는 그마저도 떨치고 일어나겠습니다”라고 결심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맙시다. 이제 저지를 순서입니다.

 

매섭게 추운 겨울의 찬바람을 견디고 피어나는 매화(梅花)의 향기는 코를 찌릅니다. 혹시 지난 삶들에서 아직도 어둠을 거둬내지 못하였습니까? 슬픔과 후회 또는 열등감이나 죄의식 과 같은 어둠 말입니다.

 

그런 걱정들은 입춘으로 그만. 그렇다고 외면하라는 게 아닙니다. 더욱이 잡고 늘어지라는 것도 아닙니다. 살아온 날들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품고 자신의 생명가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삶 속에서 코를 찌르는 매화의 향기가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생명의 맑고 밝은 기운이 움트다가, 오늘로 용틀임을 시작합니다. 입춘 날부터 이제는 뒤로 가기 없기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이런 마음으로 사는데, 뭘 굳이 부적을 붙이고 복(福)을 구하러 다니겠습니까?

 

오유지족(吾唯知足)!

 

나는 다만 만족하고 삽니다. 부족한 게 없는 삶입니다. 왜? 본래부터 걸림 없는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인데 뭐가 부족해요? 다 갖췄습니다. 모자란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로부터 밝아지는 이런 광명(光明)의 길로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입춘 공양(供養)을 올리는 그 공덕이 인연 짓는 분들에게 다 회향되어서, 다 함께 밝아지기를 축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참된 삶을 살려는 당신.

바른 길을 가려는 당신.

기쁨의 꽃을 피우려는 당신.

진리를 ‘듣고’ ‘생각하고’ ‘닦는’

삶이고자 한 당신.

바로 그 순간부터 당신은 ‘불교’입니다.


오유지족s.jpg

- 2011년 오유지족의 날 기념법문 중에서

2개의 댓글

Profile
나로부터
2014.02.07
누구 걱정도, 누구 원망도 하지마라... 나로부터 밝아지면...
처음 듣는 '입춘법문'. 회춘하겠습니다^^;
법문 정리하여 눈으로 듣게 해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Profile
구본현
2014.03.26
바로 그 순간부터 당신은 '불교'입니다. 와우!!!

"참된 삶을 살려는 당신.
바른 길을 가려는 당신.
기쁨의 꽃을 피우려는 당신.
진리를 ‘듣고’ ‘생각하고’ ‘닦는’ 문사수(聞思修)의 삶이고자 한 당신.
바로 그 순간부터 당신은 ‘불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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