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깨달음
 
믿음과 깨달음
깨어있는 이가 깨워주니, 비로소 믿게 됩니다.
신앙(信仰)이란 믿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올바른 믿음[正信]일까요?
우리가 미신(迷信)사신(邪信)을 문제시할 때,
이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어떤 것이 바른 믿음이고, 어떤 것이 그릇된 신앙인가?'를
분별하고 있는 자신의 생각부터 점검해봐야 합니다.
흔히 「신앙의 대상이 뭐냐?」를 가지고, 바른 믿음과 삿된 믿음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신앙의 대상에 있지 않습니다.
신앙하는 사람의 주체적인 태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삿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주체인 나의 인생관, 세계관 내지 생명관이 바르게 확립될 때 비로소 바른 믿음이 이루어집니다.
신앙의 대상이 「나에게 뭘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앙이야말로 미신입니다.

우리 불자들의 신앙의 목표는 참생명의 완성인 부처를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한의 존재를 자처하는 '나'의 노력과 수행에 의해서,
무한의 존재인 부처를 이룬다는 말은 성립이 불가능합니다. (참조)삶과불교>불교란>불교와의 만남

그러면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본래부터 이미 부처입니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불자들의 올바른 믿음입니다.

어떤 부자가 일류 호텔 특실에서 자면서 거지노릇 하는 꿈을 꾸며 잠꼬대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 거지노릇 하는 그 사람의 모습은 진실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꿈속에서는 거지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가 부자인데 거지 꿈을 꾸고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깰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깨어있는 이가 있어서, 배고프다고 밥 좀달라고 잠꼬대하는 사람에게
『원래 넌 큰 부자이니, 빨리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면서 흔들어 깨워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깨어있는 이의 도움으로 깨어나면,
「본래가 나는 부자고 일류 호텔 특실에 살고있구나!」
를 그 자리에서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음과 믿음의 상관관계입니다.

얼핏 보기엔 타력(他力)인 것 같지만 타력이 아닙니다.
원래 내 생명이 드러난 것이므로 타력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력(自力)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밖에 계신 어떤 분이 깨워줬다는 의미에서 타력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신앙은
자력신앙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타력신앙이고,
타력신앙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자력신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