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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운다는 것은

문사수 2013.08.28 조회 수 32135 추천 수 0

  우리 모두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법신(法身)생명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라서 더함도 없고 중생이라서 덜함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량공덕인 그 법신 생명을 내어 쓰는 능력에 있어서는 차별이 엄연합니다. 같은 생명을 살고 있으면서 어떤 이는 부처 노릇하고, 어떤 이는 지옥에서 괴로움을 받으며 지내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한 차별은 각자가 지은 업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두운 업(業)을 지었을 때는 생명 능력이 극도로 제한받게 되고, 반대로 법신 생명의 본래 가치를 드러내는 업(善業)을 지었을 때 생명 능력은 실로 무한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면 벗어나고자 하는 괴로움은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스스로 지은 업 밖에는 따로 그 원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의 업(業)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수행(修行)입니다. ‘수행’이란 우리의 행(行), 곧 일상생활을 수정(修正)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삶의 방식을 바꿔 가는 것이지요.
그러한 수행의 목표 내지는 삶의 지향이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바를 그대로 배우고 따라 행하면 부처생명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발심(發心)을 배웁니다.
발심이란 부처생명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즉 지금은 중생으로 살고 있지만, 이 중생의 삶이란 괴로움뿐이라는 것을 알아 중생의 삶을 버리고 기필코 부처 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가 불자(佛子)가 되는 첫걸음입니다. 발심하지 않고 부처 되는 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발심의 바탕 위에서 불교의 모든 수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정진(精進)입니다.
발심이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정진은 그 목표를 향해서 발걸음을 내어딛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목표를 향해서 용맹스럽게 나아가는 것이 정진입니다.
이와 같이 정진하려면 안과 밖에서 나타나는 장애를 이겨내야 합니다.
안에서 나타나는 장애(障碍)는 의심(疑心)과 게으름입니다. ‘이 길을 가서 꼭 목표가 성취될까’ 하는 의심과, 그 길을 가는 데에 따르는 고난이 견디기 어려워서 정진을 포기하는 것이 게으름입니다.
밖에서 나타나는 장애는 여러 가지의 유혹입니다. 본능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유혹도 있고 또는 발심 자체를 포기하게 하는 유혹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유혹이 모두 철저한 발심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일단 발심하여 기필코 가고야 말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서 있다면, 이러한 유혹들은 용맹스러운 정진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위법 망구(爲法忘軀)의 정신을 배웁니다.
법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육신을 가볍게 보아 버리는 것입니다. 법만이 절대 가치입니다. 그 절대 가치인 법을 위해서는 육신의 가치를 무시해 버리는 정신을 배우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본생담(本生譚)에 나오는 여러 가지의 가르침은 석가보살의 위법 망구의 정신을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설산동자(雪山童子)가 단지 여덟 글자 법문을 듣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신 이야기라든지, 대승의 법문을 배우기 위하여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포악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한 이야기 등에서 우리는 법을 위해서 몸을 버리셨던 석가보살의 구법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넷째는 자비행(慈悲行)을 배웁니다.
부처를 이루기로 마음을 내고[發心] 부지런히 용맹 정진하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중생들에 대한 자비심입니다. 부처된다는 것은 깨달음을 의미하는데 이 깨달음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일체 중생이 자기의 생명 내용(生命內容)임이 밝혀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체 중생이 자기의 생명 내용이므로 모든 중생의 괴로움은 곧 자기의 괴로움이 됩니다.
부처 이루는 공부는 자비심을 키우는 연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들과 동떨어져서 고고하게 자기만 밝아지면 된다는 정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중생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기꺼이 버리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자비심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중생들에 대한 공경심(恭敬心)을 배웁니다.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서 가르쳐주신 대로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일체 중생을 어떠한 경우에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상불경보살은 누구를 만나든, 그의 신분이 천하거나 높거나 재산이 많거나 적거나 존경을 받는 이거나 사회적으로 몹쓸 짓을 저질렀거나 가리지 않고 예배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아직 불법(佛法) 문중에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아가서는 용서 못할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중생들은 결국 성불하고 만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크나큰 원력에 의해 모든 중생은 빠짐없이 성불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중생은 곧 미래의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원력(願力)을 배웁니다.
부처님께서는 온 우주 법계의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성불토록 하시는 원을 세우셨습니다. 이러한 원은 사홍서원(四弘誓願)으로 표현되어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중생을 모두 건진다는 원입니다. 중생들의 성불(成佛)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부처님의 성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용맹정진(勇猛精進)이라는 것이 무조건 절에 앉아서 참선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전법(傳法)하는 것도 용맹정진입니다. 전법하지 않는 깨달음은 없습니다. 전법해서 이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성불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수행도 이러한 원력이 있을 때 비로소 진실한 수행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비록 제도되지 못했더라도 남들부터 제도토록 하겠다[自未得度先度他]”는 원, 이러한 원을 부처님으로부터 배워 원의 성취를 위해 영원히 정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현행원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선남자여,
또한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운다」는 것은,
이 사바세계의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하실 때로부터,
정진하여 물러나지 아니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몸과 목숨을 보시하시되
가죽을 벗겨 종이를 삼고, 뼈를 꺾어 붓을 삼고,
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 경전 쓰기를 수미산만큼 하시면서도,
법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거늘,
하물며 어찌 왕위나 성읍이나 촌락이나 궁전이나 정원이나 산림 등의 모든 소유랴!”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파암각P1280177.JPG 
담양 정진원의 파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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