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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밥값을 하였는가?

문사수 2015.12.22 조회 수 11113 추천 수 0

  무한히 공급되는 생명
 우리는 매일 아침 부처님께 마지공양(摩旨供養)을 올립니다.
마지란 게 뭡니까?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나서, 그로부터 다시 내려 받아 공양하는 거룩한 생명 흐름을 의미합니다. 삶은 내가 짓는 것이 아니라, 살려주는 공양을 받아서 살아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내 것이 있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쌀가게에 가서 내 돈으로 쌀을 사고, 내 노력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생명의 흐름은 무한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공급을 받아쓰고 있는 게 엄연한 나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배불리 먹은 밥이나 많이 배운 지식이나 지갑을 채운 돈이나 활기차게 누리는 건강 등등 온통 본래(本來)부터 내 것이라고 주장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유통되지 않을 때를 예로 들자면, 병원에서 진단을 받을 때, 혈액순환이 어떠하니 하는 식으로 순환기 계통의 얘기를 많이 거론하는데, 순환이 안 되면 몸이 어떻게 되는지 다 알지요?
 세상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유통업체 종사자들의 파업으로 인해 많은 화물들이 적재해 있는 것들을 보았을 겁니다. 뭐든지 순환이 안 될 때, 그것은 죽음의 상태를 연출합니다. 말 그대로 나라는 것은 제대로 순환되고 있으면, 건강하다고 합니다.

 1년 365일을 하루에 세끼 씩 해서 곱해보면, 1,095번의 식사를 한다는 단순계산이 나옵니다. 우리가 일 년 동안 1,095번의 식사를 했다라고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세상이 베풀어주는 은혜(恩惠) 속에 내가 살려져왔다는 대표적인 표상이 밥입니다.
 그것만이겠습니까?
 밥은 밥 자체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밥을 짓는 과정마다 숱한 정성이 들어갑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농사지은 농부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천지자연의 엄청난 조화력이 그 밥 한 알에 담겨서 다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도 “밥맛이 있다”거나 “밥맛이 없다”거나 또는 “먹고 싶다”거나 “먹고 싶지 않다”거나 하면서, 마치 당연히 나에게 밥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줄 압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래서 묻습니다.
 올 한 해 동안, 혹시 “밥을 먹어서 살려진 내가 아니라, 내가 밥을 먹고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자기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밥이라고 하는 매개를 통해 오직 무한히 살려지는 생명법칙만이 작동할 뿐, 나라는 자(者)가 새삼스레 주장할 선택권이 따로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복 받는 자리
  조건(條件)부터 갖추고 나면 삶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처럼 오래된 미신도 찾기 힘듭니다. 흔히 돈에 배반당하고, 사랑에 배반당하고 또 친구에게 배반당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돈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사랑이나 친구가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대상으로 해서 내 삶이 보장된다는 생각을 갖는 한, 이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미신(迷信)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조건들을 앞세우려고 한다면, “이 밥벌레 같은 녀석아!”하는 지적을 듣게 됩니다. 왜 그러한가? 자기가 규정한 틀 속에 갇혀서,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따져보아도 우린 결코 밥벌레가 아닙니다. 나라는 생명이 밥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코드를 통해서 생명이 지금 움직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산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질 않습니다. 가장 근본인 내 생명 그 자체로부터 삶을 살아간다는 진실을 하시라도 잊는 순간, 마치 곰팡이가 피어나듯이 필요로 했던 조건들이 생명을 갉아먹습니다. 생명의 주권을 뺏겨 버리고 맙니다.
 내가 써야 할 도구와 같은 조건이 주인노릇을 한다? 생각만 해도, 이처럼 꼴이 우스운 게 없습니다.
  어떤 것을 갖췄다거나 안 갖췄다고 따지는 한, 우리는 노예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조건의 노예로 살아야 합니까? 왜 돈이나 명예 심지어는 남편이나 아내나 혹은 부모나 자식의 노예임을 스스로 자처해야 합니까? 실로 세상 어디 할 곳 없이, 어떻게 하면 노예적인 삶을 벗어날까 하는 것이 유일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불교란 무엇인가? 석가모니부처님이 택하신 삶의 궁극적인 해결책입니다. 스스로 뭔가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거기서 더 갖춰가겠다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스스로 무한히 살려지는 주인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불교를 믿으면, 복(福)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살려짐을 믿기만 하여도, 복 은 이미 넘치고 넘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은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우리는 복 받는 자리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주인자리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무한히 받고 있는 은혜의 주인공으로 살 뿐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려지고 있으니, 무엇을 걱정하고 누구를 원망하리요.


  감사하자
  12월-.
  결산으로 바쁠 시절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세상으로부터 공급 받은 결과입니다. 따라서 그냥 내버려둬도 그 현상은 변화하여 흘러갑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 자체도 알고 보면, 생명이 성장하는 또 하나의 흐름일 따름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살아오며 많은 자취들이 있겠지만, 지나온 삶의 무게 속에 다 내버려둡시다. 그것은 실체가 아니기에, 어느 것 하나 붙잡을 까닭이 없습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또는 남들보다 칭찬을 들었거나 낮은 평가를 받았거나 관계없습니다.

 “다~지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갖가지의 감회를 넘어서, 감사(感謝)가 부족하지는 않았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 받은 게 없다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받은 것 보다는 못 받은 게 앞서가니, 어떻게 감사하겠습니까? 감사가 나올 리 없습니다.
  마지공양 올리면서 부처님께 올렸던 공양을, 내려 받아서 내가 산다고 했습니다. 한 해 동안 이렇게 부처님으로부터 살려진 이는 밥을 받아, 그것을 살려짐의 에너지로 해서 내가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일 년 밥값을 하였는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묻고 정직하게 답합시다. 그러다가 아직도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볼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부터 부처님이 굳게 닫힌 나의 방문을 두드리고 계시군요. “밀린 일 년 밥값 갚으세요!”하면서 말입니다.
 이제라도 못한 감사가 있다면, 생각으로 하지 마세요. 실컷 입으로 합시다. “감사합니다!”하면서, 감사의 손길을 잡읍시다. 감사의 숟가락을 떠주세요. 감사의 선물을 하며, 끝없는 감사를 표현하세요. 이렇게 간곡한 살려짐에 맡기니, 무진장한 감사로 가득한 삶이 펼쳐집니다.
  법우 여러분, 일 년 밥값에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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