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부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문사수 2014.12.18 조회 수 16123 추천 수 0

몸뚱이와 관계없이 본래 영원 절대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이 나의 참생명의 실상입니다참생명은 시간적으로 영원해서 아미타[무량수(無量壽)]이고, 또한 그것이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나와 원수로 지내면서 눈을 흘기고 싸움박질 하는 사람도 또 뒤에서 나를 모략하고 손해를 끼치고 있는 사람도, 나를 들볶고 있는 사람도 알고 보면 다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즉 부처님생명 말고 딴 생명은 없으니까 모두가 더불어 한 생명을 살고 있으니, 아미타[무량광(無量光)]입니다.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 절대적이다’를 줄여서 아미타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참생명입니다.

참생명이 아미타인데도 우리는 거기에 믿고 의지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참생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나무(南無)'입니다. 귀명(歸命)이지요. 즉 돌아갈 귀자 목숨 명자. 참생명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는 예불을 드릴 때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귀명(歸命)하는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내 밖에 있는 걸 찾아가지 않겠다고 맹서하는 것이지요. 어디 특별한 곳에 가서 기도를 했더니 소원이 성취된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왜 부처님이 거기만 계시겠습니까? 온천지에 아니 계신 곳 없이 다 계시지요. 부처님을 가두려고 하면 큰 잘못입니다. 그래서 온천지 어디에도 계시고 온천지 모두가 그 생명으로 살고 있는 생명이 바로 부처님생명이란 것입니다. 아미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불(念佛)을 합니다. 염불한다는 것은 나무아미타불, 즉 본래 무한절대생명인 나의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독송하시는 금강경 14분에 부처님께서 뭐라 말씀하십니까?
 “왜 그러냐 하면 일체 모든 상을 여읨을 곧 모든 부처님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하셨습니다.
종교는 궁극의 의지처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적에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찾아가는 것이 됩니다. 그 부처님이라는 분이 어디 특별히 따로 계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칠십 넘은 할머니께서 얘기하는데 자기네 집안이 굉장히 어려워서 누구한테 가서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물어봤더니, 부처님이 당신네 집안에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복이 없으니까 부처님 눈을 뜨게 해야 된다고 오백만원 가져오라고 하더랍니다. 부처님 눈뜨게 개안수술을 하는데 오백만원씩 드는 모양입니다.
이런 얘기가 왜 자꾸 나오느냐하면 부처님을 귀신 도깨비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에요. 아주 멀쩡하게 불교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법복도 근사하게 차려 입고 염주도 달고 다니고, 법명도 받고 여기저기로 큰스님 찾아다니며 법문도 듣는다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근데 그런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부처님을 귀신 도깨비쯤으로 알아요.
부처님은 우리 모두의 참생명입니다. 우리의 참생명을 드러내면 되는 것인데, 어디 특별할 절에 가서 특별한 이름을 부르며, 특별한 방식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부처님은 귀신 도깨비가 아니에요. 앞에서 얘기한 대로 부처님은 진리이고, 진리는 바로 우리들의 참생명이고, 우리들의 참생명은 영원절대인 아미타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우리가 중생노릇하고 있는 것은 왜 그러는가? 금강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일체 모든 상(相)을 여읨을 곧 모든 부처님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간단합니다. 상을 여의면 부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우리가 지금 못난이 노릇하고 있는 것은 딴 이유가 아니에요. 원래 멀쩡한 부처인데 부처가 그만 상에 집착을 했어요. 상(相)이란, 나라는 생각, 그저 온통 나뿐이라는 생각이죠. 이것이 아상(我相)입니다. '나는'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너는'이라는 것이 나오지요. 나와 너는 따로따로다 하는 게 인상(人相)입니다. 따로따로니까 거기서 누가 더 잘사나 경쟁하게 되고, 누가 좀 잘되면 내 배가 아파지는 것, 이게 중생상(衆生相)입니다. ‘남이 더 잘 살게 됐으니까 내가 더 못살게 됐구나.’하면서 '난 못난이 중생이야' 하는 생각을 자꾸 일으킨단 말입니다. 이것이 중생상이에요. 그러면서 내 목숨은 영원할 거라고 자기 목숨에 대한 집착심이 생깁니다. 이게 수자상(壽者相)입니다. 이것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입니다. 우리는 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고 살고 있으면서 그것이 당연히 있는 줄 알고 삽니다.
그 아상 인생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상이 나를 못난이 노릇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전에 살펴봤던 금강경 14분 말씀을 보면,
 “이유를 말씀드리오면 그 사람은 아상이 없으며 인상도 없으며 중생상도 없으며 수자상도 없는 까닭이니라.” 하십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불교공부를 한다는 사람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없애는 공부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원래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는데, 부처님생명의 진실가치가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때문에 그렇단 말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어요. 그러니 상을 없앨 수밖에 없지요.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마땅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지마는, 그걸 전부 줄여서 얘기하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입니다. 거기서 더 줄이면 아상! '나 잘났다'하는 생각입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점잖고 겸손합니다. 내가 겸손하다는 걸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겸손할 것 같으면 그 또한 나 잘났다는 마음으로 꽉 차 있는 겁니다. 나 잘났다는 마음 때문에 이 세상에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불교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없애는 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어지면 뭐라고 금강경에서 말씀하셨어요?
“모든 상을 여읨을 곧 모든 부처님이라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생명으로 돌아가면 그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미타부처님하고 부를 때, 얼른 들으면 내 밖에 어디 특별한 곳에 계신 특별한 부처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그게 아닙니다.
아미타란 나의 참생명이니깐 나의 참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즉 무량수 무량광인 나의 참생명은 원래 여기 살고 있는데 우리가 모르고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몸뚱이에 속아서 몸뚱이를 나라고 생각하고 산단 말이지요. 돈 몇 푼 생기면 좋아라 하고, 누가 와서 욕을 하면 화를 벌컥 냅니다. 여태까지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나한테 와서 욕을 하고 나를 헐뜯고 모략하면 칼을 들고 가서 죽이려고 덤비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사는 것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에 집착하고 사는 모습이지요.

나의 참생명이 아미타란 사실을 모르고서 그만 이 몸뚱이를 나라고 자꾸 우기고 살다가 법회에 와서 바른 법문을 듣게 되었어요. 바른 법문을 듣고 보니까 ‘아 본래 나하고 대립되어 있는 남이 없고 남들과 대립되어 있는 내가 없다. 이 세상사람 모두는 다 나와 한생명이구나.’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제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온 우주는 모두 1인칭의 세계다'라는 것이지요. 일인칭의 세계니까 이인칭 삼인칭이 없습니다. 이인칭 삼인칭이 없으니까 내가 미워해야 할 남도 없고, 헐뜯어야 할 남도 없고, 내가 다퉈야 할 남도 없습니다. 그래 모든 사람과 더불어 본래부터 한 생명으로 살고 있는 그 자리에 돌아가는 것 말고 진리가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자꾸 부르지만 내 밖에 있는 부처님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따로 계시는 분이 아닌데 어떻게 남이라고 부르겠습니까?
본래부터 나의 참생명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나무아미타불인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0개의 댓글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대중법문] [12월 넷째주, 송년법회 생방송] 12월 22일(일) 문사수 2023.02.12 9157
좋은 윤회 또한 윤회인 것을! 문사수 2015.02.25 15514
아미타 노릇 잘 하세요! 문사수 2015.02.09 14170
소가 물을 먹으면 우유를 낳고, 독사가 물을 먹으면 독을 뿜는다 문사수 2015.01.28 15701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문사수 2015.01.19 15811
날마다 시작이고, 날마다 마지막이다 문사수 2015.01.06 16336
부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문사수 2014.12.18 16123
지금 바로 닫혔던 문부터 열어젖힙시다. 문사수 2014.12.02 16609
이 세상에서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 문사수 2014.11.21 17547
오직, 안심입니다 문사수 2014.11.03 17616
불자의 정체성에 로그인하세요. 문사수 2014.10.23 17201
찬탄과 해석의 갈림길 문사수 2014.09.30 18173
자미득도 선도타! 문사수 2014.09.24 18637
마왕의 은밀한 속삭임 문사수 2014.09.16 17338
무조건 항복하니, 그곳이 극락입니다. 문사수 2014.08.28 18319
[정토예불문8] 보살님의 보살핌 속에 산다 문사수 2014.08.25 22517
[정토예불문7] 법(法)이 나에게서 드러났다 문사수 2014.08.09 20550
믿어서 깨치는 도리 문사수 2014.07.29 18616
경계를 부르니, 경계가 펼쳐진다 1 문사수 2014.07.08 24633
공포로부터의 해방 1 문사수 2014.06.17 28617
진리의 제3법칙, 열반적정(涅槃寂靜)_(2) 문사수 2014.06.10 2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