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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은밀한 속삭임

문사수 2014.09.16 조회 수 17338 추천 수 0

 부처님이 부처님일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이것저것 다 그만두고 한마디로 이른다면,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정황에 대해서는 항마성도(降魔成道)라는 의미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마(魔)를 항복받아서 진정한 생명의 길을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마는 명예의 군단입니다. 끝내는 승리하지만, 몰려오는 명예의 군단과의 전투로 싯다르타는 무척 지칩니다.
 부처님일대기를 얼핏 살펴보아도 왕자시절의 싯다르타가 얼마나 똑똑하고 의지 강건하며, 재능 또한 뛰어났었는지를 넉넉히 짐작할 만합니다. 본인은 겸손했을지 모르지만, 지난 삶의 밑변에는 “내가 누군데!”하는 명예욕이 잔뜩 똬리를 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 촉망받고 인정받던 시절에 대한 기억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그것이 싯다르타에게 강력한 마로 등장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닥쳐온 게 뭐냐 하면 바로 돈입니다.
 싯다르타의 아버지 정반왕은 엄청난 재산을 아들에게 쓸 수 있게 했습니다. 계절마다 바꿔가면서 지낼 별장을 내주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전 인도를 통일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을 거리낌 없이 제공합니다. 그만큼 엄청난 돈을 소유한 적이 있던 싯다르타는, 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과거의 삶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마로 등장한 것입니다.
 
 다음은 천녀(天女)들로 비롯되는 색욕(色慾)의 군단입니다. 이때도 도대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치 아름다운 미녀들과의 힘든 전투를 간신히 이깁니다. 
 성적(性的)인 문제는 사실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입니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옳다거나 그르거나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 본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빠져서 허우적거릴 이유도 없지만 굳이 기피해야 될 이유도 없다는 뜻입니다. 쾌락 지상주의나 반대로 금욕주의적인 추구 모두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만족의 테두리를 결코 뛰어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본능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본능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본능을 기준으로 자기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본능은 버리고 말고의 대상이 아닙니다. 본능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식욕입니다. 식욕을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굶어죽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가지고 사는 것일 따름입니다. 

 이와 같은 갖가지 마군(魔軍)들의 엄청난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아직은 부처님이 아닌 구도자(求道者) 싯다르타는 기진맥진해서 거의 절망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때 구도자는 마구니들과 이어지는 전투에 계속 매진하였을까요?” 답은 “아니오”입니다. “그럼 어떤 시도를 하였을까요?” 답은 “아무 시도도 하지 않았다”가 맞습니다. 

 이른바 포기(抛棄)입니다. 마와 싸우기를 포기하자 마침내 항마성도를 성취한 것입니다. 이는 곧 결과적으로 승리한 것이지, 싸워서 이긴 승리가 아님을 뜻합니다. 마라고 하는 상대와 싸워서 이겼다고 한다면, 이긴 내가 있으므로 아직은 상대적인 승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싯다르타에게 명예와 돈과 색욕의 군단이 몰려왔다고 하지만, 이는 자신에게만 일어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눈이 있다고 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다고 해도 듣지 못할 현상입니다. 그때 싯다르타라는 구도자에게만 유일하게 벌어진 것이 마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라고 하는 경계(境界)는 누가 부른 겁니까? 네. 100퍼센트 싯다르타입니다. 

 혹시 카지노에 없는 세 가지를 알고 있습니까?
 첫째 창문을 내지 않습니다. 바깥세상과 교통하지 말고 몰두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시계가 없습니다. 각자 손목시계야 어떻게 하겠습니까만, 시계가 없습니다. 시간가는 줄 몰라야지 주머니를 몽땅 털 때까지 게임에 집중합니다.
 마지막으로 거울이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보지 못하게 거울이 없습니다. 고스톱이든 뭐든 장난이라도 도박에 빠진 사람의 얼굴은 기막힙니다. 영어에서 왜 포커페이스(무표정, Poker Face)라는 말이 나왔을까?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니, 생기 있는 얼굴이 아닙니다. 미라와 같습니다. 만약에 자기가 그 얼굴을 본다면 하도 끔찍해서 번쩍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런 자기 얼굴을 못 보게 하려니, 거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魔)라는 것은 엄청난 욕망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욕망이 향하는 시간대는 언제입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미래(未來)입니다. 미래에 얼마만큼 무엇을 이루겠다는 결론이 항상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가용 비행기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자가용 비행기를 사기만 해봐라. 그러면 내가 매일 태워줄게”하는 식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해 지껄이며 시간을 보내는 욕망의 세계는 확실히 지금에 있지 않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구도자 싯다르타도 왕자의 신분에 걸맞은 명예와 돈과 여자를 자연스레 자기의 소유(所有)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마군(魔軍)과의 싸움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마다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가지가지의 것들이 어떤 시간대에 머물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소유는 과거(過去)에 속합니다.  

 아무튼 그것이 욕망이든 소유든 간에 현재의 삶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앞으로 사는 데 따르는 결과물이거나 살아온 내력에 따른 흔적일 수는 있어도,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는 적어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마를 항복받았다고 하지만, 그 진정한 뜻은 마와 싸우려는 마음을 항복(降伏) 받은 것입니다. 실로 누구와 싸워서 이기겠다고 하는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지, 내가 누구와 싸워서 이겼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마군들이 완전히 항복하였다”는 멋진 증언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될까요?
 그때 마왕(魔王)이 나타나서는 부처님께 속삭입니다.
 “‘구도자여, 그대가 그러다가 죽을라”하면서 짐짓 염려를 합니다. 부처님이 “내가 왜 죽느냐?”고 하시자, 마왕은 대단한 연설을 합니다.
 “내가 수 억겁토록 수많은 구도자를 봤고, 수많은 구도자를 봤습니다.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당신이 최고입니다. 왜 그런가? 수많은 구도자들이 어느 정도하다가 성취가 있으면 거기서 그쳤습니다. 반면에 당신은 너무 지나칩니다. 이제 이보다 더 정진(精進)하면 당신은 죽습니다.”
 물론 부처님은 “정진하다가 죽을 것”이라는 마왕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 또한 어디서 유래하는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정시킨 자신에 대한 자신의 평가의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대단한 수행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기에, 육체적인 한계와 심리적인 포화상태를 측정하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법당에서 정진하거나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나만큼 정진하는 사람 있겠어?’, ‘나만큼 노력하는 사람 있겠어?’, ‘나만큼 잘하는 사람 있겠어?’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것은 마왕의 은밀한 속삭임이 시작된 신호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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