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렇게 끝없이 번뇌를 피하려고 하는데, 과연 번뇌가 나쁜 것일까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번뇌는 잘못된 삶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산자의 특권’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죽은 자는 번뇌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며 삶을 수정하려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현상이 번뇌입니다. 즉, 자기를 돌아보지 않거나 수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번뇌조차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직하자고 했습니다.
생명이 얼마만큼 위대해질 수 있는지….
생명은 멈출 수 없습니다.
머리에 담아둘 시간이 없습니다.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번뇌가 왔을 때 먼저 주고, 먼저 감사하고, 먼저 찬탄하고 볼 일입니다.
어떤 것도 이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남의 눈치를 볼 틈이 없는 것이 진정한 현실입니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여기저기 고려하는 동안, 우리의 인생은 고착화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인연들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존중하면서 나부터 밝아지자는 것입니다.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꽃가지를 잘라서 그 안에서 꽃을 잡아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꽃망울이 터져야만 그 생명의 완성이 아닙니다. 지금 새싹이 나오는 것도 생명의 완성이고, 꽃잎이 나오는 것도 생명의 완성입니다. 물이 흐르는 것도 생명의 완성입니다.
벚꽃이 만발하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지만 땅에 떨어진 꽃도 생명 자체입니다. 지고 나면 인생이 끝납니까? 특별한 것만, 특별한 때만 아름답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특별한 때만 성공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그런데 꽃이 피어야만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머지를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나머지가 불행한 사건이 되고 맙니다.
나라는 자를 앞세워서 어둠으로 다가왔을 때가 번뇌라고 했습니다.
이럴 때, ‘번뇌 속에서는 답이 없구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전면 포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번뇌를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번뇌로부터 도망가지 마십시오. 번뇌가 없는 사람으로 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번뇌가 없는 한 열반도 없습니다. 번뇌가 없는 한 평화도 없습니다. 번뇌는 내가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구해지는 게 아닙니다.
지금이 바로 결단의 순간입니다.
이제부터 열반으로부터 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부처생명이라는 절대 자리로부터 살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태에서도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열반의 주인공입니다.
열반이란 구하는 평화와 행복이 아니라, 누리는 평화 누리는 행복의 자리입니다.
열반이란 목적격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자신을 들볶지 말고 고요한 가운데 내버려 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본래 태어날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았고 하고자 함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무엇인가가 손에 쥐어집니다. 내 뒤에 경력으로 붙은 그것이 나인 걸로 착각하고 삽니다.
그런데 “조용히 좀 해라~!” 이것이 열반적정입니다.
무엇이 되려고 하고, 무엇을 이루려고 앞서갈 때 우리는 쫓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번뇌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우리의 생명은 열반 속에서 태어났고, 열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염불입니다.
무엇이 올 때까지 내 삶을 유보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본래 열반적정 상태이기에 유보할 틈이 없습니다. 잠이 오면 그냥 자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그냥 밥 먹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바뀌는 관심사를 언제까지 쫓아가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유행의 주체가 되리라.” “나로부터 살아가리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비교할 틈도 없습니다. 오직 절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부모가 되기도 하고, 자식이 되기도 합니다. 온갖 노릇을 할 뿐입니다. 이렇게 나는 항상 열반적정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부처님은 열반하시면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반적정으로 사는 유일한 길은 생명의 자리를 등불로 삼는 것입니다. 조건을 등불로 삼거나, 유행을 등불로 삼는 것은 등불이 아닙니다.
자등명 법등명의 법문! 이것이 우리가 진정 잊지 말아야 할 자리입니다.
이것은 항상 진행형입니다. 과거의 어느 때나 미래의 한 시점을 잡아서 그때부터가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자등명 법등명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것을 등불로 삼고, 그 가르침을 등불로 삼았을 때,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성취나 행복이나 성공을 추구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리면 그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진리의 제1법칙 ‘모든 현상은 항상 하지 않구나!’를 통해 오히려 감사함을 배우고, 진리의 제2법칙 ‘나라고 주장할 실체가 없구나.’를 통해,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의 반영이고, 내가 만나고 있는 모든 현실이 나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본래 조건에 의한 삶이 아니라 어떤 조건도 만들어 낼 수 있는 부처님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 본래 열반적정의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진리의 법칙을 가르쳐주신 것은, 진리의 자리를 양보하지 말고 그로부터 항상 살라는 당부입니다. 우리는 쫓겨 가는 인생도 아니고, 지금도 불안한 인생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부모로 살고, 자식으로 살고, 사업주로 살고, 행인으로 살고… 그러다가 이 사바세계에 연이 다했을 때는 다 주고 가는 것입니다. 부처님생명으로부터 태어나서 부처님생명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주인공입니다.
알고 보니 열반적정은 이 자리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럼 법우님들의 나날마다 열반적정의 자리에서 모든 성취가 이뤄지기를, 그리고 이뤄진 성취가 만나는 인연들에게 다시 회향되기를 축원합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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