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이 없는 청정한 수행
진정으로 부처님 법을 따른다는 것은 현상적인 내 기준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뭘 했다’거나, 또는 ‘나는 세상에 대해서 뭘 잘 알고 있다’거나 이것은 끝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죽음인 것입니다.
다음은 법장비구의 48대원 중 서른여섯 번째 원입니다.
저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니,
제가 부처님생명으로 사는 시방의 한없이 불가사의한 부처님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저의 참생명 이름을 듣고는,
목숨을 마친 뒤에 마땅히 청정한 수행을 하여 부처님생명의 길에 이르게 하겠습니다.
‘저의 참생명 이름을 듣는다는 것’은 나무아미타불 염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마친 뒤에 마땅히 청정한 수행을 한다’ 이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부르고 있습니다. 목숨을 마친 뒤라니까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신체적인 죽음 뒤로 보고, 살았을 때 이 몸뚱이가 전부 다 인줄 아는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수행은 죽어서 하면 된다고 하는 오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청정한 수행이란 현상을 앞세우고 하는 조건부의 수행이 아닙니다.
조건이 떨어진 수행이 청정한 수행입니다. ‘뭐만 한다면~’이라는 조건부가 떨어져 나간 뒤라야 우리는 내 생명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청정한 수행은 이때부터 가능합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사회적인 목숨, 심리적인 목숨, 정치적인 목숨 등 우리가 의지하는 현상적인 것들은 그때마다 죽어줘야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아무리 대단한 경험을 했고, 대단한 기억을 갖고 있어도 그것은 그때마다 죽어줘야지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죽지 않고 자기주장을 할 때 우리는 거기서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닫을 수 없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중국의 덕산스님이 깨치시는 과정은 무척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덕산스님은 지금껏 책자로만 금강경 공부하다가 그것을 버리고 진정한 스승, 숭신이라는 큰 스님을 만나 훨훨 탈 정도로 열을 올리며 공부를 합니다.
덕산이 이제 공부의 참 맛을 알게 되니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침식을 잊으면서 공부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옆에서 스승이신 숭신스님이 보니 참 한심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가상한데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날도 숭신스님이 새벽에 가서 보니 덕산스님이 호롱불을 갖다놓고 그때까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안자냐?”하며 말을 건넵니다.
“저는 공부 좀 더 하겠습니다.”
그러자 숭신스님이
“그래도 오늘은 그만하고 자라.”
하니 덕산스님이 할 수 없이 문을 열고나옵니다.
그 밤중에 나오는 덕산스님에게 호롱불을 비춰주면서 ‘툇마루를 조심해라’하십니다. 덕산스님이 그 호롱불에 의지하면서 발을 내딛으려 하는 순간, 숭신스님이 호롱불을 ‘훅!’하고 불어 꺼 버립니다.
이때 순간 덕산스님이 ‘아!’ 하면서 깨치게 됩니다.
참 중요한 얘기입니다.
자기 삶을 진정으로 살리게 하는 것은 호롱불에 의지하고 있는 순간이 아닙니다. 숭신스님이 비쳐준 호롱불에 의지하고 있던 자신이 의지할 호롱불이 없어지니 그때서야 바깥에서 찾아야 될 내가 아니라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훅 하고 꺼져버렸습니다.
그것이 허구로 밝혀지는 순간, 염불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마친 뒤에 마땅히 청정한 수행을 한다’라는 말은 중생으로서의 목숨, 남자나 여자로서의 목숨과 같은 현상적인 목숨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앞세우고 있는 한 우리는 그 조건에 항상 끌려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조건이 살려고 하니까 끝없이 충족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조건이 먼저 죽을 때 비로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죽어야 하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2011년 수계법회(중앙법당)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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