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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무한

문사수 2010.09.18 조회 수 24012 추천 수 0
지옥무한地獄無限

우리가 선택하는 삶의 영역은 과연 어떠할까요?  
불교에서 인생을 고(苦)로 파악하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입니다. 해석의 차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결의 길이 이 가르침에는 담겨 있는 것이지요. 흔히 말하듯이 괴로움의 현실로부터 도피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과 같다고나 할까요.
 부처님께서는 ‘꿈과 같고 환각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고 계십니다. 괴로움의 당사자인 인간이 인간이라는 굴레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오히려 인간답게 된다는 역설(逆說)을 담고 있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 이 가르침을 밑변으로 해서 우리 생명의 영역을 살펴봅시다.
 크게 열가지의 영역 즉 십계(十界)를 설정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즉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의 <미계(迷界)>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佛)의 <오계(悟界)>가 그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영역들은 별스런 세계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고 필름을 인화해서 확인할 때를 떠올리는 당신의 현실 그 자체입니다. 활짝 웃는 순간 셧터를 누르면, 웃는 모양 그대로 찍힐 뿐이지요. 화난 얼굴의 사진이 나오는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실감(實感)하는 삶의 내용은 순간마다 곳곳마다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현실(現實)이란 바로 이런 상태를 가리킵니다. 삶에 테두리를 긋고는, 나름대로 인정한 영역만큼을 생명이 활동하는 무대로 삼습니다.

생명이 일정한 틀을 갖고 활동하는 한, 아무리 날고뛰어 보아야 부처님 손바닥에서 까부는 손오공의 처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행복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행복을 만끽하지 못합니다.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습니다. 무엇이든 없으면 갖고 싶고, 있으면 없어질까 전전긍긍합니다. 끝없는 방황이지요.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삶이 이런 한정된 영역을 고집하고 있기에 미계(迷界)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나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걸맞는 생명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무위에 올라 고기를 구하는 격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미계에서 펼쳐지는 지옥 등의 육도(六道)를 하염없이 맴돌 뿐이지요. 윤회(輪廻)의 수레바퀴를 언제까지 굴리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삶의 영역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지옥과 같은 겁나는 삶도 스스로 찾아간다는 말이 되는데, 왠지 미덥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이왕이면 좋은 곳을 택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지금 마치 지옥을 보고 온 사람처럼 말하고 있는데,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말 그대로 어느 사람이나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좋다고 생각되는 곳이 객관적인 실체로 따로 있어서, 누구에게나 공유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지옥과 같은 생명감각을 느끼게 되는 원인으로 외부적인 상황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온갖 명분을 내세워 치루는 전쟁(戰爭)의 비참함을 들 수가 있습니다.
 어떤 전쟁이든 승자(勝者)와 패자(敗者)라는 확실한 구도를 갖고 시작됩니다. 또한 모든 전쟁의 당사자들은 스스로 승자일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규모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든 전쟁이 갖는 속성은 끝없는 배타성(排他性)을 갖기 마련이지요. 적(敵)으로 인정되는 대상이 한사람이든 국가와 같은 집단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상대를 누르고 반드시 이겨야 하기에,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휩싸이게 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지옥도(地獄圖)가 벌어지게 됩니다. 승패를 막론하고 당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지옥은 언제나 실제 상황입니다.
 이때 지옥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생명의 능동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삶의 모든 상태를 수동화(受動化)합니다. 어떤 가능성이든 주어진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와같이 지옥에서는 생명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無限)한 흐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지옥을 지옥인 줄 알면서도 스스로 찾아들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름꾼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십시오. 아마 ‘고스톱!’을 뇌까리는 노름판이라고 할 것입니다. 춤바람 난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카바레와 같은 춤판을 서슴지 않고 거론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름판에서 돈을 땄다는 사람을 들어보았습니까? 물론 당장에야 내숭을 떨면서 잇속을 챙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도 어느 자리에선가는 또 잃고 맙니다. 또 허구한 날 춤이나 추면서 가정을 온전히 지킨 사람을 보았습니까? 나로서는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분명 패가망신에 이르는 지름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 잠시 분위기를 바꿔 볼까요?
 흔히들 지옥은 죽어서나 가는 곳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갖가지의 지옥 중에서, 특히 돈을 위해 이승에서 사악한 짓을 한 사람이 가는 흑승지옥(黑繩地獄)에 대한 브리핑을 하려고 합니다.

흑승이란 목수들이 쓰는 먹줄을 가리키는 데, 이 지옥에 떨어진 죄인의 몸에는 눈금이 그어집니다. 왜냐하면 집행관들이 그 줄을 따라 톱이나 쇠도끼로 절단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절단된 살점들과 함께 고통이 사라지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람이 한 번 불면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되고, 또 먹줄이 그어지고, 잘리고 하는 형벌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상상을 못할 정도의 고통이 이어지는 곳이 저승의 흑승지옥인 것입니다.
 그런데 노름판에 끼어든 사람들의 면면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저승까지 굳이 갈 것도 없습니다. 이승에서도 흑승지옥이 이미 벌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초췌한 얼굴에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들이 번들거립니다. 상대가 쥔 패가 무엇인가를 쉴 새 없이 가늠합니다. 화투짝은 도끼가 되어 상대의 패를 두드려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긴장은 고조됩니다. 그러다가 한판이 끝납니다. 하지만 여기서 판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아무도 감히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참가의사를 밝히는 순간부터 ‘죽어도 고!’에 동의하였기 때문이지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휘휘 저을 노릇인데, 당사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하고 좋은 곳이 노름판인가 봅니다.
 그렇기에 시간만 나면 만사에 우선하겠지요. 아니, 다른 모든 시간을 희생해서라도 달려가야 직성이 풀립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끼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딱하게 여기면서...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타락의 자리가 원래부터 있다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 유해(有害)한 곳만 없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카지노나 비밀댄스홀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곳이 아닙니다. 일종의 수요 · 공급의 법칙이 작용된 것에 불과합니다.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유형의 곳들이 시대를 달리 하면서 간판을 바꿀 뿐입니다.
 안된 이야기지만 앞으로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옥무한(地獄無限)입니다.
 지옥이란 누에가 고치를 지을 때 제 몸을 속박하는 상황과 다름없습니다.
천당으로 알고 스스로 찾아들지만, 받느니 고통인데도 그 고통을 더 받지 못해 신경질적인 안달의 연속입니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그것 밖에는 생명의 확인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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