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시절 인연의 주인공

문사수 2011.01.09 조회 수 25269 추천 수 0
 시절 인연의 주인공

     법우 여러분!
  새해를 맞이해서 더욱 더 부처님 전에 신심 견고하시고 날로 정진하는 일상생활로서 내 인생이 밝아지면서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끝없는 지혜광명을 펼쳐나가는 보살로서의 생애가 전개되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시절인연의 주인공에 대해서 법문을 하겠습니다. 흔히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큰 깨달음을 얻는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깨달음이라는 어떤 결과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표가 있어서 그것을 손에 넣겠다는 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성불(成佛)이란 ‘부처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 보면 부처란 실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부처라는 목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들의 일상생활 모두가 보살도로 이루어질 때, 이미 우리는 불국토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절인연의 주인공이란, 특별한 것을 구하는 생각을 갖지 않고 다만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언제나 보현행원을 실천해 가는 사람입니다. ‘아무 성과도 나타나지 않았지 않느냐’고 하더라도 다만 시절인연에 맡겨두는 것뿐, 따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영원한 과정뿐이니까요.
  만약 결론이 있다면 실체적으로 또는 목표로 존재한다는 것이 되므로, 그 또한 영원한 상대세계의 전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부처가 되어야겠다는 그 부처는 저쪽에 있기 때문에 내가 부처 쪽으로 가야겠다고 가 봐도, 부처님은 영원히 저쪽에 계신 것이 되기 때문에 결코 나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에서 결론을 추구하지만 사실은 인생 자체에 결론이 없습니다. 영원한 과정입니다. 영원한 과정인 삶을 보현행원으로 빛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사수법회의 신앙 덕목입니다. 이걸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묘법연화경 가운데 여래수량품을 공부하겠습니다. 이 여래수량품이 법화경의 가장 중심이 되는 품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배우면 우리가 왜 나무아미타불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됩니다. 

  먼저 묘법연화경이라고 했는데, 묘법이란 말부터 무슨 뜻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묘(妙)는 부사의(不思議)하다는 말로 도저히 생각하고 의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생각하고 의논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대상화를 삼았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진리는 나의 참생명 자체이므로 대상화로 삼을 수 없습니다.
  이런 묘법을 연꽃에다 비유했습니다. 연꽃은 아주 지저분한 진흙탕, 도저히 꽃이 필 수 없을 것이라고 보여지는 환경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니까 연꽃은 씨가 뿌려진 곳도 지저분한 곳이고, 또 성장하는 과정도 지저분합니다. 그러면 성장하는 동안 영양분을 어디에서 흡수합니까? 바로 진흙 그 자체 속에서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우리가 냄새조차도 맡기 싫다고 하는 더러운 진흙이 연꽃을 꽃피우게 해주는 고마운 영양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연꽃입니다. 
    묘법연화경을 공부하면 우리가 특별한 신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내버리게 되고, 특별한 환경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내어버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정법이라면 진흙 속에서 피는 것입니다. 진흙이란 우리들의 일상생활로서 누가 보더라도 천하게 보이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 도저히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신분이 아닌 사람, 또 머리도 깎지 않은 사람이 참다운 불법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임을 배우게 됩니다. 간혹 ‘이렇게 골치 아프고 지저분한 세상 집어치우고 머리 깎고 중이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법 공부를 그만두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묘법연화경의 높은 뜻입니다.

  이제 여래수량품 본론으로 들어가 보면,
  “만일 티끌을 떨어뜨린 국토나 그렇지 않은 국토를 다 합하여 티끌로 만들고, 그 하나하나의 티끌을 일겁(一劫)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성불한지는 이보다 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겁이 더 오래된다.” 

  이 얘기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셨을 때, 중생으로 태어나신 게 아니라 부처로 나오셨다는 말입니다. 원래가 부처님이신데 중생을 제도하려니까 할 수 없이 방편을 써서 중생과 같은 모양으로 나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2500년 전에 석가모니부처님이 도를 이루셔서 부처가 되셨다고 하는데, 여래수량품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지구가 생기기도 전, 태양계도 생기기 전, 은하계도 생기기 그 이전부터 이미 부처님이셨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이러한 부처님께 이름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당연히 이름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데도 이름을 붙이자니까 우리는 석가모니불이라고밖에 붙일 수 없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란 ‘석가족에 태어나신 성자’라는 뜻입니다. 석가족이란 태양계도 생기고 지구도 생기고 그래서 인도라는 나라도 생긴 다음에 생긴 가문이고, 또 지금은 없어진 2500년 전의 종족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부처님께 맞는 이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에 태어난 성자가 아니라, 석가족이 생기기 전부터 부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분에게 맞는 이름을 붙이려면 ‘무량수’라고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사바세계에서만 교화하신 게 아니라, 또 다른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국토에서도 중생을 인도하여 이익케 하셨다고 하시니까, 온 우주에 그 어른의 교화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교화가 광명입니다.
  즉, 그 부처님은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영원한 생명이고, 공간적으로 보면 절대 광명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그 이름을 무량수·무량광[아미타]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석가모니부처님이란 말은 그분의 육신에 붙여진 이름이고, 그분 자신의 참생명으로 보게 되면 아미타 부처님입니다.

  우리가 음력 12월 팔일을 ‘성도일’이라고 하면서 정진합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절에서는 석가모니불 정근을 합니다.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날은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아미타불이 되신 날, 아니 아미타불로 돌아가신 날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아미타불이 나의 참생명이다’고 선언해 주신 날이 부처님의 성도재일입니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을 독송하는 것이 더욱 의미에 맞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내 생명은 따로 있다’는 중생세계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중생세계도 없어집니다. 다만 부처님생명의 세계, 무한생명의 절대 세계, 극락세계밖에 남을 것이 없습니다. 사바세계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나무아미타불은 석가모니부처님과는 어떤 관계가 됩니까?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미타부처님이고, 또 우리들 참생명도 부처님생명이니까 부처님과 나는 따로 따로가 아닌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참생명은 부처님과 같은 나이 동갑입니다.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니 나무아미타불이고, 내 나이도 부처님과 동갑이니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부처님과 동갑 나이를 살아가는 내가 늙어갈 수가 있습니까? 병이 들 수가 있습니까?
  이 몸뚱이는 고장날 때도 있고 죽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물차를 타고 가는데, 마후라에서 검은 연기가 나고 털털거리는 소리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털털거리는 자동차를 타고 간다고 해서 그 운전자까지도 건강치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자동차가 고장나거나 말거나 운전수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몸뚱이가 고장이 나거나 안 나거나 관계없이 우리들의 참생명은 병들고 늙을 수 없는 생명입니다. 이 몸뚱이가 나중에 화장터에서 없어지거나 말거나 내 생명은 영원생명입니다. 내 몸뚱이로 보면 김가, 이가, 박가가 따로 보이지만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울타리가 없는, 그래서 모든 생명이 한생명을 살고 있는 그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그러니 이 나무아미타불 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내가 사는 세상은 내 밖에 남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들하고 나 사이에는 울타리가 있어서 대립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이 놈아! 본래 남은 없어. 나무(南無) 해. 나무!”
  그 얘기를 듣고 자꾸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서 내 인생 자체를 수정해 나가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이가 알고 보면 부처님 나이와 동갑입니다. 이 점 명심하시고 올해 한해 부지런히 정진하고, 전법합시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마하보디대탑_미하보디대탑2P1050179.JPG 2010 인도구도여행중..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곳, 보드가야의 마하보디대탑!
부처님이 성도하신 자리에 아쇼카왕이 세운 탑입니다.


선정터_선정터P1050159.JPG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선정에 드셨던 곳.(새벽에 정진하고 계신 법우님들)
부처님께서 이곳 보리수 아래서 동편으로 앉아 새벽 별빛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여 나무 동편에 대탑을 쌓았다고 합니다.(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마하보디대탑)

 

0개의 댓글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대중법문] [방송종료 : 11월 셋째주 대중법회 생방송] 11월 17일(일) 문사수 2023.02.12 8766
순·역경계 함께 안고 사는 게 삶의 실상[무량수경12] 1 문사수 2011.03.22 29967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문사수 2011.03.20 27419
태양은 스스로 뜨겁고 밝음 구분 않는다 [무랑수경11] 문사수 2011.03.10 34396
종교를 신앙한다는 것 문사수 2011.03.09 24656
상대적 가치관 무너진 후 열린 세계가 정토 [무량수경10] 1 문사수 2011.02.27 27919
독기 품고 겉으로 참는 것은 거짓된 치장 [무량수경9] 문사수 2011.02.19 27216
칭찬에서 시작되는 예경제불 1 문사수 2011.02.17 35119
[대중법문] 날마다 태어나는 삶 문사수 2011.02.10 24224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뀜을 아는가? 문사수 2011.02.02 24256
창조적인 언어의 위력 문사수 2011.01.26 29673
공양의 참된 의미 문사수 2011.01.17 26492
시절 인연의 주인공 문사수 2011.01.09 25269
감사는 감사를 부른다 2 문사수 2011.01.05 30257
무진장으로 산다 문사수 2010.12.31 23725
기도란 무엇인가? 2 문사수 2010.12.21 35577
죽음의 순간에 염불을... 문사수 2010.12.10 27183
마음을 따르는 현실 문사수 2010.12.05 23071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1 문사수 2010.11.25 26655
문(門)을 여니 안팎이 없네 문사수 2010.11.18 23558
다섯 가지 종류의 법사 문사수 2010.11.11 23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