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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언어의 위력

문사수 2011.01.26 조회 수 29674 추천 수 0

창조적인 언어의 위력

  우리는 다양한 만남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슬픔을 느끼게 하는 만남도 있고, 또 고생을 겪게 되는 만남도 있습니다. 실로 다양한 만남을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하며 그때마다 다양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러한 만남을 구속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말 즉 언어(言語)입니다.
딴에는 반갑다고 말을 건네는데, 그 말이 화합(和合)의 말이나 생명(生命)의 말이 아닌, 물질(物質)적인 조건을 앞세우는 말이라면 갈등과 다툼을 불러올 뿐이며, 이로 인하여 심지어는 살인(殺人)사건까지 벌어지게 되는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까지 맞게 됩니다.

그렇다면 말의 본질(本質)은 무엇일까?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말(言)에 관하여 흔히 쓰는 말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말이 말 같아야 대꾸를 하지.”
우리는 이런 말들을 통해 말이라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을 배려하고 북돋워주는 말이야말로 참으로 말다운 말이라는 것입니다.
‘내 식’의 잣대만을 강요하는 말을 하거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말을 할 때 상대방의 생명력은 위축되고 상처받게 됩니다. 생명을 배려하지 않은 말은 그 어떤 총칼보다도 무서운 살인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생명을 배려한 말, 즉 상대방을 부처님생명으로 모시는 말은 그 사람의 생명력을 북돋워주는 자량(資糧)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업(業)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이는 구업(口業)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리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에 진정 말다운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말이 진정 말일 수 있으려면 그 안에 생명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을 살리는 창조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어생활을 하신 대표적인 분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십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존경하고 따랐던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부처님을 부처님으로 보지 못하고 상대유한적인 자기 범주에서 부처님을 평가하여 비방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의 일대기는 부처님을 비방하는 외도(外道)들과의 대론(對論)으로 점철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비방한 무리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집단은 당시에 기득권을 갖고 있던 바라문들이었습니다. 경전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부처님께 독설을 퍼붓고 비방했는지에 관하여 알 수 있는데, 부처님께 사기꾼, 이중인격자, 사회체제를 파괴하려는 불순분자, 자기 아버지를 모시지 않는 불효자 등 실로 갖가지의 구실을 붙여서 끈질기면서도 악랄하게 부처님을 비방하고 모함했습니다.
당시 바라문들은 신(神)에게 제사를 모시는 계급이라는 권위를 내세워서 사람들에게 점(占)을 봐주고 공포심을 불어넣어 그들의 생명을 속박했던 사람들입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오늘날 수많은 기성 종교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언어는 오직 법공양(法供養)뿐입니다. 참된 생명가치를 일깨워주는 법문(法門)만을 하고 다니실 따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신의 이름으로 공갈과 협박을 일삼고 공포심을 심어주는 바라문의 눈에는 부처님은 둘도 없는 원수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고 계시는데, 한 바라문이 부처님께 삿대질을 하면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욕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는데 이를 듣고 있던 제자들이 화가 나서 그 바라문과 대거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이 ‘선물의 비유’입니다.
“저 바라문이 우리를 향해 욕을 했다고 해서 너희들이 저 사람과 싸우려 하는데, 내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아라.”
제자들 중에서 가장 격앙됐던 이가 목련존자였기에, 부처님께서는 목련존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에게 선물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
“네, 제가 받습니다.”
“그런데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인데, 그 선물이 너에게 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보낸 사람에게 다시 돌려보냅니다.”
“마찬가지이니라. 저 사람이 너에게 욕을 했을 때, 그것이 네 것이 아니면 받지 말거라. 그러면 그 욕은 다시 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 나에게 칭찬할 때는 이를 감사히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고, 누군가 나에게 비난할 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을 놓치면 자기를 비난하는 말을 듣고서 화내게 되는데, 엄밀해 말해서 이것은 스스로가 그 비난에 동의하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에 대한 비난에 스스로를 동일시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이것이 선명하게 이미지화되어 버립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내 마음 속에 필름이 찍히는 것입니다.
필름에 찍힌 대로 영화가 상영되듯이 이런 사람에게는 자기가 동의한 세계가 펼쳐질 따름입니다. 그래서 자기에 대한 비난을 듣고 이를 인정한 사람에게는 자기설움에 겨운 삶을 살아가게 되고, 결국 비난받은 내용 그대로의 삶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력을 북돋워주는 말, 즉 찬탄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에게 찬탄의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이 어떠하냐는 것은 사실 두 번째 문제입니다. 찬탄의 말을 들은 상대방이 어떠하냐를 따질 겨를도 없이 찬탄의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부터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찬탄의 말을 입에 담는 사람의 삶부터 밝고 긍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뿌린 그대로 거두는 인과(因果)의 법칙은 실로 역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어가 갖는 창조력입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염불을 하면서 부처님의 원이 이미 성취된 사람은 어떤 말을 하든지 다 부처님말씀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생명에 대한 절대 긍정의 언어로 설(說)해져 있습니다. 경전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우리의 생명에 대하여 부정적인 말씀을 하신 부분은 찾을 수 없습니다. 경전의 말씀은 참생명에 관한 절대적인 찬탄으로 일관돼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을 읽고 외우는 사람은 자기의 참생명을 찬탄하고,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을 노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염불(念佛)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살아갑니다. 항상 염불하며 스스로의 생명가치를 누리기에도 바쁜 염불행자에게는 괜한 자기비하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전을 자꾸 독송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생명에 대한 절대 긍정의 언어를 삶의 중심에 모심으로써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탑돌이_P1010559.JPG 

2011 문사수 구도여행 <달마에서 혜능까지 그리고 혜원> 중 탑돌이 정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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