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삼십대에 구설수에 올라서 매우 괴로운 상황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무척이나 개인적인 일입니다. 제가 파렴치한 사람으로 매도되었는데, 이게 퍼지고 퍼져 주변 사람들이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어이없는 상황이었죠. 사람들은 당사자인 저한테 확인해 본 적도 없이 서로 수군댔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말을 만든 사람이 조금 더 심했으면 무슨 일을 벌일 정도로 저는 격앙됐었습니다. 물론 세월이 흐르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저는 그때 그런 일을 겪으면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제가 누구를 그렇게 미워할 수 있고, 심지어는 증오할 수도 있으며, 억울함 속에서 사람이 얼마나 못나질 수 있는지를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것들은 저한테 잠재되어 있던 겁니까? 없던 겁니까? 예! 잠재되어 있던 겁니다. 그분이 절 괴롭힌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제 안에 가라앉아 있던 것이 나를 괴롭혔다고 하는 사람 덕에 드러난 것이므로 덕분에 참회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모순을 얘기하지만, 모순이란 나에게 있는 모순일 뿐, 저 사람한테 있는 모순이 나한테 보이는 법은 없습니다. 저 분 또한 나와 만나는 부처님생명이기 때문에, 모순이 등장한다는 것은 억울해할 일도 후회할 일도 아닙니다.
먼저 참회하라!
보이고 들리는 모든 문제들은 참으로 모두 나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6.25 당시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에 대해 여러 가지 역사적 평가를 합니다만, 그의 자서전을 인용한 글에 이런 멋진 얘기가 나옵니다.
“모든 문제의 마지막 종착지는 내 책상이다!”
자기 삶을 책임지겠다는 거죠. 모든 문제의 마지막 해결의 자리는 이 책상 이 자리다. 피하지 않겠다는 거죠. 나에게 보이고 들리는 것, 나와 연관되어 있는 인연의 모든 것들은, 나로부터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책임지겠다는 거예요. 참으로 위대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따지고 해명하기 전에 먼저 참회합시다. 내 앞에 아픈 사람, 극악한 사람, 문제가 뒤틀린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내가 오늘 참회할 일이 있구나.’하고 시작해 보세요.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집니다.
두 번째, 끝없이 살려지고 있음에 대해서 감사해야 됩니다. 이리 갈지 저리 갈지 모르는 불안한 사람은 자기가 살려지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겁니다. 우린 이 순간에도 살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감사밖에 할 게 없습니다. 이것은 머릿속의 이론으로 남겨둘 얘기가 아닙니다. 입이 달려있는 사람은 말을 하고, 생각이 있는 사람은 생각 속에서 감사를 떠올려야 합니다. 감사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내뱉으세요. ‘감사합니다’를 무조건 앞세우세요. 감사할 일이 있든 없든 관계없어요. 계산할 시간이 없습니다. 계산하는 동안 불안하게 되는 겁니다.
그랬을 때,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이 찬탄하고 볼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생명은 본래가 부처생명이기 때문에. 부처생명 자리의 내용은 ‘아미타’라 그랬습니다. 측정할 수 없다. 계산할 수 없다. 무한생명 무한광명 자리가 부처생명으로서 본래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먼저 찬탄하고 볼 일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측정해서 ‘못났네’, ‘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악질이야’라는 평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생명 자체의 무한생명과 무한광명이야말로 보다 근원자리이기 때문에 먼저 찬탄하라는 겁니다.
제일 먼저 참회합니다. 두 번째 감사합니다. 세 번째 찬탄합니다.
논리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구사하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새로운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시라도 잊지 않고 매일 외우는 염불의 원리입니다.
‘나무’가 곧 참회다
‘나무’하는 것이 곧 참회하는 겁니다. ‘아미타’는 측정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오직 감사합니다. 우리는 감사할 것과 안할 것을 따지는 측정 속에 빠지니까 끝없이 쫓기지 않습니까? ‘아미타’입니다. ‘감사합니다’를 먼저 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니 ‘佛불’ 부처님이죠? 부처님은 무한생명 무한광명 광채이시니 나무아미타불의 원리가 이러합니다.
자! 세상에 이런 완전한 해결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무아미타불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세 가지를 큰 소리로 해볼까요?
참회합니다. 감사합니다. 찬탄합니다! 다시 한 번, 참회합니다. 감사합니다. 찬탄합니다!
법우님, 진심으로 말씀드리건대, 이것을 행여라도 그럴 듯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에 담지 마세요. 생각에 담는 사람은 게으르다고 합니다. 내뱉으세요. 이게 문사수입니다.
닦지 않으면서 아! 그럴듯하네, 나무아미타불을 그렇게도 볼 수 있네.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세상에 쳐다볼 사이가 어디 있습니까?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직 참회할 뿐이고, 오직 감사할 뿐이고, 오직 찬탄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활동하시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부처님이 계신 걸 어떻게 아느냐? 참회하고, 감사하고, 찬탄할 때 부처님은 내 속에, 네 속에 우리 사회에, 우리 가정에 살아계신 분이고 항상 나와 함께 하실 겁니다.
이것은 사실 현상적으로 보면 거꾸로 돌아갑니다. 찬탄하는 사람은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는 사람은 참회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흔히 얘기하는 업장이란 건 반드시 소멸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업장의 찌꺼기가 남아 있을 구석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것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의 밝은 등불이신 부처님께서 오늘도 모든 현상을 관찰케 하시고 중생들이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통달하시어 ‘나의참생명 부처님생명’을 수기하십니다. 저는 이런 법문을 듣고서 믿고 받아 지니어 읽고 외우겠사오니 다시는 의심과 미혹이 없어서 다만 복덕과 이익을 얻겠나이다.” 이렇게 복덕과 이익은 따라 오는 것이지, 추구의 목표가 아닙니다. 부처님생명으로서 참회하고 감사하고 찬탄하니 복덕과 이익을 어찌 걱정하겠습니까? 복덕과 이익은 우리들이 써야 될 것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누구와 사업파트너로 협상하다가 잘 안 풀리면 어떻게 합니까? ‘저 사람은 왜 저리 까다롭지?’, ‘저 사람은 왜 저리 깐깐하지?’ 하지 말고 참회합시다. 감사합시다. 찬탄합시다. 틀림없다는 말이나 분명하다는 말을 잘 안 씁니다만, 이것은 분명한 진실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개입될 수 없는 생명의 진실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인생은 벌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이렇게 염불 속에 사는 사람, 염불세계 자체를 자기 생명의 원리로 삼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나의 참생명인 부처님을 알면 됩니다.
부처님을 알고 싶다면, 부처님이 되면 됩니다.
부처님이 되고 싶다면, 부처님으로 살면 됩니다.
부처님으로 살고 싶다면, 부처님을 염불하면 됩니다.
어떤 분들은 부처님을 알고 싶다고, 부처님 같은 분이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얘기합니다. 부처님을 알고 싶다면 부처님이 되세요. 부처님이 된다는 건 어려운 게 아닙니다. 부처님으로 살면 됩니다. 부처님으로 산다는 것은 부처님을 항상 끊이지 않고 생각하는 것, 즉 염불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부처님으로 사는 거죠. 우리의 목표는 부처님을 아는 게 아니라 부처님으로 사는 겁니다.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남의 솜씨를 쳐다보는 게 아닙니다. 그 밥을 먹고 숟가락질을 해서 내가 배부르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들은 살기 위한 것이지, 삶을 쳐다보고 해석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법우님! 다른 것 다 그만두고 쳐다보고 해석하고 계산하는 것 이제 그만 내려놓고 부처님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제도 필요 없고 내일도 쓸데없습니다. 지금 부처님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합시다. 인연들을 떠올리면서, 내 생명을 떠난 인연은 없다는 마음을 담아 참회합니다. 감사합니다. 찬탄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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