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로서 절에 다닌다하고, 금강경이나 법화경이든 어떤 경전을 공부하든 간에 공부하는 내용은 금강경에서 수보리존자가 물었던 이 질문에 해당합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그리고 이에 대한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불교는 듣는 종교입니다. 문사수(聞思修)의 문(聞)자도 듣는다는 뜻입니다. 듣지 않고는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자꾸 들어야 해요.
우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다는 말은, 내 밖에 있는 어떤 특별한 진리나 철학이나 사상을 받아들여서 부족한 나에게 보충시키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말은 깨달음이란 말인데, 깨달음이란 것은 나에게 없었던 것을 밖에서 얻어다가 보충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아시는 바대로 깨달음이란 본래부터 있어 왔는데 있는 줄 몰랐다가 어느 순간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은 분이 부처님인데 깨닫기 전에는 그 부처님이 뭐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깨닫기 전부터도 이미 부처님이라는 말씀이지요. 이미 부처님이 부처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는 것은, 사실은 이미 되어있어서 뭘 새롭게 할 일이 없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무! 하는 겁니다. ‘나무(南無)’라는 말은 한문으로 표현하면 ‘귀명(歸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갈 ‘귀’와 목숨 ‘명’이예요. 어디로 돌아가느냐?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부처된다는 것은 ‘내가 본래 중생인데 부처님이 자비로써 저를 잘 좀 살펴봐주셔서 모자란 게 있으면 보충시켜주세요. 그러면 제가 부처될 수 있겠습니다.’ 라는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처된다는 것은 나의 본래 참생명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무’입니다.
그런 다음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할까요?
사실은 머물고 뭐고가 없습니다. 그냥 참생명으로 돌아가면 그뿐입니다. 다른 것은 다 가짜에요. 다 내버려야 합니다. ‘참생명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일으켜라.’ 하는 것이 ‘나무!’입니다. 그러면 참생명은 무엇입니까? 참생명은 바로 부처님생명입니다.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
우리 문사수법회에서 항상 외치는 이 말은, 부처님의 법문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는 겁니다.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냅니다. 언제나 ‘나는 중생이요!’ 하며 우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하고 ‘남들’이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존경쟁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어리석은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원효대사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은 귀일심원(歸一心源)이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참생명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귀일심원을 하고보니까, 즉 참생명으로 돌아가 보니까 내 밖에 남이 없어요. 본래부터 나와 남이 한생명으로 살고 있어요. 내밖에 남이라고 보아 왔던 그 마음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내 마음이 어두워서 남이라고 보았던 거지, 원래 남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귀일심원!’, 참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한생명을 살고 있다.’ 는 명확한 인식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한생명을 살고 있는 세계에 들어가니까 어떻게 됩니까?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괴로움은 나하고 어떤 관계죠? 그게 바로 나의 괴로움이에요. 모든 사람의 어두움이 내 어두움이고, 모든 사람들의 근심걱정이 나의 근심걱정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들은 잘못되더라도 나 하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그런 말이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원효대사는 ‘귀일심원(歸一心源)’하여, 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요익중생(饒益衆生)’하라. ‘모든 중생들을 다 끊임없이 이롭게 하는 인생을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금강경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 전체입니다.
다 같이 큰 소리로 한번 해볼까요?
“귀일심원하여 요익중생하라!”
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것 이것이 불교입니다.
금강경에 의해서 남들과 대립되어 있는 내가 없고, 나와 대립되어 있는 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남이 있다고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남이 참으로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남이 아닌 것을 가지고 남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도 괴롭고 나도 괴롭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무!’ 하는 겁니다.
‘나무!’ 참생명으로 돌아가니까 그 자리가 바로 한생명 즉, 아미타입니다.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입니다. 우리는 죽으려야 죽을 수가 없는 영원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량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반야심경을 못 외우는 불자는 없습니다. 그러니 반야심경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모르는 불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법도 없고 따라서 죽는 법도 없다고 외우기는 다 외웁니다. 그러나 그 깊은 뜻을 잘 모릅니다. 우리의 참생명은 새삼스레 세상에 태어난 법이 없기에 죽음 또한 없는 영원생명을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량광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하고도 울타리를 갖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 밖에 남이 없고 남 밖에 내가 없습니다. 이것이 아미타입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나의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입장에서 보면 그 자리는 바로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이니까 모든 사람을 나로 보고,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나의 괴로움으로 보고,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내 문제로 보고,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근심걱정을 나의 근심걱정으로 알면서 그것들을 전부 해결해 나가는 그런 인생을 산다는 말입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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