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법문은 ‘무아(無我)’, 즉, ‘나라는 것을 따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런데 이 법문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일어납니다. ‘이 세상은 본래 모든 사람들과 한생명을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째서 내 밖에는 남들이 저리 많아서, 나를 괴롭히고, 나를 못살게 굴고, 나한테 원수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걸까?’
여기에 대해서 부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참으로는 네 밖에 남이 없다. 너하고 남 사이에 울타리란 없다. 그런데 네 마음이 어둡고, 어지러우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남으로 보이고, 이 세상 사람들이 너에게 적(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겁니다. 항상 이야기 했습니다. 인생은 무적(無敵)입니다. 우리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적을 많이 만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있지도 않은 중생을, 있지도 않은 적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적이라고 잘못 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마음의 소산이란 말입니다. 불교는 그런 어리석은 마음을 모두 정화시키는 종교입니다. 정불국토(淨佛國土)의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불국토! 즉 부처님나라 밖에 없습니다. 온 천지에 부처님나라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만 우리가 부처님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깜박 잊고, 나와 남이 대립하는 생존경쟁의 세계에서 고생하며, 다투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에 빠지니까 이 세상이 괴롭습니다. 온천지가 지옥으로 바뀌고 마는 겁니다.
그러면 그 지옥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겠습니까?
제일 먼저 할 일은 지옥이 참으로 내 밖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내가 잘못 봐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안경 쓰고 계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안경에 때가 잔뜩 묻거나 김이 서리면 밖이 잘 안 보이죠? 그러면 내 눈에 이 세상이 어둡게 보인다고 해서 지금 어두운 세상이 현실로서 있는 겁니까? 아니면 내 안경 때문에 그런 겁니까? 내 안경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 세상에 나의 적이 많다고 아우성치고, 또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하고, 또는 무슨 사주팔자가 나쁘다는 등 이런 생각들은 전부 내 마음에 때가 껴서 그런 겁니다. 내 마음이 어둡고 지저분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유마경에서는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수기심정 즉불토정(隨其心淨 則佛土淨)’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이 정화되는 만큼 이 세상은 깨끗해진다고 했습니다. 내 눈이 정화되는데 왜 세상이 깨끗해질까요?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은 본래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내 눈이 어두우니까, 어지러우니까, 눈에 눈곱이 끼어 있으니까 이 세상이 어두운 것처럼 보였던 것이지, 실제로 어두운 세상은 없다는 겁니다. 그렇죠?
온천지에 본래 어두움이 없는데 어두움이 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이 세상 어디에도 인생의 적이 없는데 적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금강경을 자꾸 읽어서 내가 본래 중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나하고 남이 대립하는 세계가 본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나에게 본래 인생의 적(敵)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들 극락에 간다고들 합니다. 그러면 과연 극락이란 어떤 세계인지 아미타경을 보겠습니다. 이렇게 금강경을 공부하고 아미타경을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미타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으뜸가는 여러 착한 사람들과 한데 모여 살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극락세계라는 곳은 이렇게 모든 착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모든 착한사람들이란 나에게 가장 은혜로운 사람들이란 말인데, 나한테 가장 은혜로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나한테 사탕 사주고, 돈 갖다 주고 그런 사람이 착하고 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가장 은혜로운 사람은 내 마음에 있는 상(相)을 없애주는 사람입니다. 나와 남이 대립되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상(我相)때문에 내가 세상을 잘못 살고 있으니까, 그 근원인 아상을 없애도록 해주시는 분이 가장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아상을 없애주는 사람은 또 과연 누구입니까?
여러분들도 가끔 느끼실 겁니다. ‘아! 내가 아상이 많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죠? 그 아상을 없애야 하는데,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그 아상이 없어집니까? 내 비위를 맞춰주고,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해주는 그런 사람이 주위에 많을수록 아상이 없어집니까?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둘러싸이면 아상이 점점 늘어나고, 더 굳어집니다. 아상이 벗겨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나한테 와서 시끄러운 소리하고, 나를 못살게 굴고, 네가 잘난 것이 뭐가 있냐고 나에게 대놓고 이야기해주는 사람 때문에 아상이 꺾이는 겁니다. 그렇죠? 그러면 이제 정말 고마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나를 거스르기 때문에 내 인생의 원수로 봤었던 그 사람들이 바로 가장 은혜로운 사람, 으뜸가는 착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경전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니까 비로소 ‘아!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은혜로운 사람이로구나!’ 라고 알게 되는 거죠. 얼핏 보면 인생의 적처럼 보이는 그 모든 사람들이 지혜의 눈으로 보게 되면, 그 모든 사람들이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들이고, 말할 수 없이 성(聖)스러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보게 될 때 그 때를 일러 극락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극락에 간다는 말은 ‘나는 본래 내 힘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살려주고 계신 그런 은혜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때에 극락에 왕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기억나십니까?
극락은 여기를 떠나서 저 멀리 다른 세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온천지에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들로 꽉 차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세계인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나한테 미운 소리하는 것도, 며느리가 나한테 거슬리는 것도, 또 나를 못살게 구는 모든 사람들도 내 인생의 적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참생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 이것이 극락왕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극락에 간다는 말을 새롭게 정의하면 ‘아상(我相)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것이 극락왕생이예요. 그러면 아상으로부터 해방을 얻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아까 처음에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을 다 나로 보고,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을 다 나의 괴로움으로 보고, 모든 사람들의 어려움을 다 나의 어려움으로 보고, 모든 사람들의 근심걱정을 다 내 근심걱정으로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거죠.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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