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에 40대 중반쯤 되는 사람이 진찰을 받으러 왔습니다. 마침내 의사가 진찰을 마치고는,
“더 이상 당신은 안되겠소” 하면서 무언가 귓속말을 해주었습니다.
이후부터 이 사람에겐 묘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눈을 꼭 감고 마십니다.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이 새로 생긴 버릇에 대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눈을 감는 거야?”
“나는 술을 보면 안돼. 의사가 나한테 주의를 줬어. 건강을 지키려면 앞으로 절대 술을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거든”
우리들도 혹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사는데 만족한다면, 끝내 이는 자기학대(自己虐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백년이 아니라 천년을 살아도 나를 중심에 둔 인간관계와 물질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한, 나는 결코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충실한 노예로 살아갈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세상과 관계지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나서, 즉 만족한 조건이 갖추어지고서야 자신의 참된 삶을 살아가겠다면 이보다 큰 착각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여기서 확실히 정의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출가는 집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집을 제대로 품는다는 점입니다. 본래 맺은 적이 없는데 끊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편견과 오해가 난무하는 집착의 집에 갇혀 있었기에, 진정한 생명의 관계를 가질 새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출가를 형상화한다면, 아마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갖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 온갖 고민을 되풀이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는 넉넉하면서도 항상 조화롭습니다. 그렇다면 미륵반가사유상은 무엇을 생각[思惟]하고 있을까요?
이를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미륵반가사유상은 테두리가 확정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건질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얘기하자면 자신이 인정한 집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가지?”
“어떻게 하면 이 사업을 성공시킬까?”
“어떻게 하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등등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중심에 두고 끝없이 고민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할까?”
를 사유하는 것이 미륵반가사유상입니다.
마치 장기나 바둑을 직접 둘 때보다 옆에서 훈수(訓手)하는 경우에 수가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스로 그 틀 속에서 벗어나 있기에 가능합니다.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기거나 진다는 결과에 대한 중압감을 벗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출가(出家)란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수해야 될 필수과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듯이 진정한 내 삶에 입학하는 겁니다. 내 인생은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을 기약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바로 지금 출가하여야 합니다. 다음에 출가할까가 아닙니다. 내 마음을 추스리고 나서 출가한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입니다. 내가 주변 여건을 다 정리하고 나서 출가한다고 한다면 그런 거짓말도 다시 없습니다. 인생에는 다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후회되는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친구한테 그때 고맙다고 말할 걸”
“사랑한다고 고백할 걸”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뭐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내 틀 속에서 될까 안될까 논하고 있는 계산의 집으로부터 여러분은 지금 당장 출가해야 합니다.
이는 미래적인 지향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집안 일을 완전히 처리하고서 법회에 나가라”
혹은
“당신은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면서 무슨 불교를 믿는다고 해”
하는 비난에 동의하고 있다면, 아직 법우님은 참된 삶을 입으로만 떠들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현상적인 조건이 원래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주변을 다 정리하고서 부처님 법 따르겠다고 하면,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있지 않다는 증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얼마만큼 봉양해야 효성스런 자식이겠습니까? 얼마나 맛난 음식을 사드려야 합니까? 그런 시도들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일시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아마 영원히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장 큰 효도라면 나 자신부터 부처님생명의 자리를 찾는 것이고, 또 그 도리(道理)를 부모님께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괴로움을 떠나 참다운 즐거움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친구 일이라면 뭐든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데, 과연 얼마만큼 해야지 그 친구에게 우정을 다한 게 되겠습니까? 잘못하면 둘 다 지옥의 삶을 면치 못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저쪽이 먼저가 아닙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나로부터입니다. 나로부터 출가할 때, 친구도 같이 부처님생명으로 살아갈게 됩니다.
출가한 사람이라면 지금 만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곳이 어디든,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삶이 부처님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출가인의 본분이기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 보면 모두가 다 부처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부처는 부처와 더불어 살고, 출가한 사람에게는 출가한 환경이 전개됩니다. 혹시 인연진 저쪽이 자기 혼자만의 집 속에 콕 박혀서 잔뜩 삐져 있는지 모르지만, 그를 대하는 나는 분명히 출가한 부처님생명으로 대할 뿐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나와 관계된 사람이 자연히 부처님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고 마음보를 고치라고 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저 사람에게 출가하라고 말할 새가 없음도 알았습니다. 관념과 집착으로 울타리 친 갖가지의 집으로부터 내가 먼저 출가하면 그만입니다. 중생생명인 줄 알았던 내가 부처님생명으로 출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로 살게 됩니다.
나를 상대하는 관세음보살이 어딘가에 따로 있어서 구제의 손길을 내미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관세음보살로 사니, 부인이나 남편 혹은 며느리나 사위 등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형상을 지으면서도 가는 곳마다에서 놀게 됩니다. 놀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으며, 무슨 두려움이 있습니까?
출가한 사람의 인생은 싸움터가 아니라, 즐겁게 노는 놀이터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나이가 몇 살이든 신분이 어떠하든 나로부터 출가하여야 합니다.
자, 우리 모두 놀아봅시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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