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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신앙한다는 것

문사수 2011.03.09 조회 수 24660 추천 수 0
 종교(宗敎)를 신앙한다는 것

 
종교(宗敎)란 절대무한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佛敎)나 기독교(基督敎)나 다 같이 얘기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절대무한을 내 밖에서 찾습니다. 내 바깥세상 어디에 하나님이라고 하는 절대자가 있다고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아닌 하늘세계에 천당이라고 하는 아주 살기 좋은 세상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식인들로부터 이러한 종교관을 부정하며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세상은 사랑으로 평등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가 실컷 부르도록 먹고 체중이 늘어난다고 다이어트를 해야 하느니,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느니 하는 한편, 또 다른 한쪽에서는 굶어죽는 애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하나 예를 들어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은 여러 가지 불평등과 갈등, 그리고 우리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부조리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눈 밝은 사람이면 이런 현상에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리처드 도킨즈라는 과학자가 쓴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옛날부터 신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불안하니까,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놓고는 다시 그 신에 얽매여서 사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내 밖에 신이라는 절대적인 권능자가 있어서 세상을 만들고, 주관하고, 은총을 베푼다는 논리의 모순을 세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소위 열성적인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보면 ‘정말 신이 있을까?’ 하면서, 신앙에 회의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믿어온 습관에 의해 믿지 않으면 서운하니까 신이 없다는 고백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젊었을 적에 관세음보살을 많이 불렀고, 6. 25 전쟁의 와중에 관세음보살을 불러서 살아났다고 얘기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67년에 해인사에 가서 성철스님을 만나 뵈었는데,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셔서, 관세음보살을 신앙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건 종교가 아니니, 그럼 아직 종교를 안 하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라 ‘관세음보살을 신앙하는 게 종교가 아니라면 어떤 것이 종교입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내 밖에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특별한 분을 믿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아주 얼떨떨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주일 동안 하루에 3천배씩 하고 하루에 한 번씩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님께서는 내 밖에 어떤 은혜로운 분이 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관세음보살님만 부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그러한 신앙을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그렇게 4일 정도가 흐르니까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5일째 되는 날에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저는 관세음보살에게 의지하고 살았는데, 스님의 법문을 듣고 보니까 관세음보살을 밖에서 찾는다는 것이 잘못됐다 그러시니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얼굴을 보시면서 급히 살려야 되겠다고 하시면서 화두를 주시면서 법명을 지어주셨습니다. - 처음에는 하루에 3천배씩 기도하고 일주일 끝난 다음에 이름을 지어주시고 화두를 주시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 그래서 그때 화두를 받고 법명을 철오라고 받았습니다.

이렇게 내 밖에 하나님이 있다, 예수님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 혹은 관세음보살이라고 이름 붙여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런 존재가 없다는 것을 짐작하지만, 없다고 하면 너무 허전하고 안 믿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 나으니까 믿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리처드 도킨즈는 인류역사에서 여러 가지 불행의 원인이 있지만, 이러한 종교로 인한 불행이 끊이지 않은 것이 인류의 역사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종교가 없었으면 십자군 전쟁도 없었을 것이고, 이스라엘과 주변의 나라가 그렇게 싸우는 일도 없을 것이며, 최근에 일어난 9. 11 테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종교를 내 바깥세상에서 찾는 것, 처음에 이야기한 절대무한을 내 바깥에서 찾는 것이 인류를 불행하게 한다는 것이 자꾸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종교만 이야기할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절대무한을 내 밖에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밖으로 찾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자귀의 법귀의(自歸依法歸依 : 너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너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아닌 다른 것을 찾아가는 것은 불교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믿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믿고 있습니다. 최근에 불교라고 이름 하면서도 신앙하는 행태를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계없는 신앙이 무척 많습니다. 부처님을 내 밖에서 찾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지장기도를 해서 병을 낫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 승려가 있고, 영가를 천도하는 재주를 가졌다고 말하는 승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기꾼이지 승려라고 할 수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곳에 몰려들며 삿된 신앙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 밖에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고 하면서, 특별한 사람의 능력으로 신도들을 은혜롭게 한다고 하는 것들은 불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삿된 신앙이 유행하는 것은 불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종교를 믿는다고 하지만 종교가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삿된 신앙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종교는 무한절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불교는 그러한 무한절대(無限絶對)를 내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의 세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無限)이라는 말은 없는 데가 없이 있는 것을 말하고, 절대(絶對)라는 것은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무한절대가 내 안에는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니 당연히 내 밖에도 있는 것이겠지만, 먼저 내 안에도 있는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너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고 등불로 삼아라’라고 법문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선언하는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이라는 말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생처럼 보이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들의 본래 생명은 무한절대라는 말입니다. 겉모양은 태어난 때가 있어서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겉모양인 중생은 다만 얼마동안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때가 되면 없어져 버릴 것, 얼마동안 있는 것,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없는 것을 가지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몸에 아픔이 있을 수 있고 근심걱정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건 전부 잠시 나타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언젠가는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잠시 나타난 현상을 가지고 별별 사기를 치면서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데 속아서 삿된 신앙에 빠져서 헤매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교를 그렇게 미신적으로 몰고 가니까 불교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이 무기력합니다. 그런데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무기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역동적인 종교가 불교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절대무한입니다. 언제 새삼스럽게 절대무한이 되는 게 아닙니다. 새삼스레 이루어야 하는 것은 절대무한이 아닙니다. 내가 알거나 모르거나 관계없이 본래부터 무한절대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사니까 불평불만이 많고 기복적인 신앙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본래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으니 이 세상에 남이 없습니다. 법화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계(三界), 이 온 우주전체가 모두 내 소유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부처님생명을 살고 있으면 부처님께서 선언하신 그 내용이 바로 우리의 생명내용입니다. 우리가 바로 부처님의 아들, 즉 법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전부 다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들이는 책임을 내가 짊어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밝음으로 이끄는 사람이니까 환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무기력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불평하고 불만에 젖어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밝음으로 이끌어주지 못합니다.
내 눈앞에 잠시 나타났다가 끝내는 사라져버릴 현상에 미혹되지 말고, 내가 본래 부처님생명이라는 것을 믿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는 인생을 살도록 합니다. 이것이 참다운 종교이며, 신앙인의 생활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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