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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심에 계신 부처님

문사수 2010.08.27 조회 수 23411 추천 수 0
삶의 중심에 계신 부처님


 미생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한 아가씨와 아주 열렬한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양가 집안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야밤에 몰래 도주하기로 하고 개울가에서 밤중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미생이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때마침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어느새 발 디딜 틈이라곤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약속을 지키려는 미생은 그 자리에 붙박힌 듯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발목까지 차오르던 물이 허리를 지나는데도 그녀의 기척은 없습니다. 점점 몸은 잠겨 가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오질 않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야 하기에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마냥 순진한 이 청년은 익사하고 말았다는 얘기입니다.   

 언뜻 보기에 미생은 무척 신의가 있어 자기 원칙(原則)에 충실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누구도 그를 일러 지혜롭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 순전히 자기위주(自己爲主)입니다. 또 굳이 기다려야 될 장소가 꼭 그 자리이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근처의 안전한 곳에서 기다릴 수도 있었는데, 그는 죽어라 특정 장소를 고수하였던 것입니다.
 미생만이 아닙니다. 우리라고 별 수 있을까요?

 지금 당신은 혹시 “이만하면 나는 무척이나 옳게 살아왔고, 상당히 정진(精進)을 많이 했고,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했어”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나는 이렇게 충실하게 살고 있어’하는 자기 식의 삶을 고집하기에 여념이 없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얼마나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집안의 대소사는 그만두고라도, 신발이나 스카프를 한 장 고르는데도 죽 끓는 듯 한 변덕으로 바쁩니다. 심지어는 손톱을 깎으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갖은 정성을 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쓰던 물건이나 만나던 사람이나 또는 하던 일에 싫증을 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신이 선택한 삶의 현장에서 물러난다는 말이 됩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좋아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겨워합니다.
 이러한 성향을 우리 불가에서는 옛부터 외도(外道)라고 이르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외도의 뜻풀이 그대로 자기 삶의 의미를 바깥에서 찾으려고 하기에 말입니다.
 실로 우리가 무엇에 빠졌다는 것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무엇인가에 나를 뺏겼다는 얘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대상화된 무엇인가에 자신을 밀착시키다가 마침내는 그 속에 매몰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본신의 생명이나 능력은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 없이 바깥을 기웃거리기에 여념이 없는 이런 사람은 거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닙니다. 언제나 구걸을 해야만 하는 딱한 처지를 스스로 당연히 여긴다면, 이 사람의 속내는 거지 그 자체 아닌가요?
 따라서 거지의 삶은 베품의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그리고 베풀 줄을 모르니 부족한 자기만을 끝없이 쪼아댈 뿐입니다. 끝없이 바깥에서 더 많이 얻어야 하기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당신은 한시라도 ‘이만하면~’ 하면서 삶의 지향을 잠시라도 멈춘 적이 있었습니까?
 초등학교 시절이 어찌나 좋은지 계속 다니고 싶다는 사람은 보았어도, 때가 되어서 졸업을 하지 않은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밥을 배부르게 잘 먹어서 내일은 굶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았어도, 다음날 숟가락을 들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숨쉬고 사는 것도 귀찮은데 이제 그만 숨을 쉬어야겠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은 보았어도, 스스로 숨을 멈추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적어도 삶을 논하려면 그것은 계속되는 지향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인생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進行形)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선택(選擇)하고 말고의 사항이 아닙니다. 선택의 여지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무한한 진행형인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기 때문에 점검(點檢)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세계의 한 가운데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워싱턴? 토쿄? 아니면 베이징? 그도 아니라면 서울?
 과연 어디일까요?
 길게 얘기할 것도 없이 여러분이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 아니겠습니까?
 나로부터 사람을 보고, 나로부터 사물을 봅니다. 나로부터 여러 가지 우주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로부터 세계(世界)를 파악하는 이 자리를 떠나 어디서 따로 찾겠습니까?
 때문에 세계가 생겨난다는 것은 내가 태어날 때로부터 말미암습니다. 나를 포함한 세상이 아니면 그 세계는 내 세계가 아닙니다. 내가 세계의 주민이기 때문에 세계가 있는 것이지, 내가 세계 주민이 아닌데도 세계가 따로이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질 않습니다.
 때문에 모든 방향이라든가 세계가 돌아가는 한 가운데는 언제나 나로부터입니다. 나로부터 세계가 돌아갑니다. 북극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남극에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나로부터 돌아가는 세상살이입니다.
 그런데 나로부터라고 하지만, 구(求)하는 것을 삶의 바깥에서 쫓는 외도(外道)로서의 내가 아닙니다. 모자람을 보충하려는 나는 진정한 의미의 주인이 아닙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세계의 주인노릇을 하는 참생명으로서의 나인 것입니다.

 이런 도리(道理)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라는 존재가 정말 위대(偉大)하기만 합니다.
 지구가 그 자체로 돌고 있고 나는 거기에 빌붙어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지구 또한 나로부터 돌고 있을 뿐인 이 무한 능력의 자리를 보자 이 얘깁니다.
 따라서 이러한 우주의 주인된 자리 가운데 앉으신 부처님의 깨달음은 3000년 전의 사실이 아닙니다. 내가 자리해서 고민하고 있는 자리 한 가운데에 부처님은 이미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뵈어야 됩니까? 그리고 그 부처님은 어떻게 뵐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 비법(秘法)이 있으면 일러주십시오.”
 자기 인생의 한 가운데를 버리고 다른데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중국에 잠깐 다녀와서는 역시 대단한 규모의 사찰이라고 침을 튀깁니다. 또 미얀마를 다녀온 어떤 사람은 그 나라 사람들의 수행에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인도에 간 사람은 푸석한 흙을 만지면서 몸서리치는 전율에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헌데 우리나라 불교는 뭐 별 볼일이 없구먼!”

 과연 그렇게 어렵게 찾아가면 부처님을 뵐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자기 식의 착각에 지나지 않을 뿐, 얼토당토 하지도 않겠지요.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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