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여래사(如來使)로 산다

문사수 2010.06.28 조회 수 24481 추천 수 0
여래사如來使로 산다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크게 펴는데 세 가지의 법칙이 있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말세(末世)가 되어 대승경전을 펴고자 하는 법사는
마땅히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
여래의 자리에 앉아,
여래의 옷을 입고 법을 설해야 하느니라.
여래의 방이라 함은 대자비심(大慈悲心)이 그것이요,
여래의 자리라 함은 공(空)이 곧 그것이며,
여래의 옷이라 함은 인욕유화(忍辱宥和)의 마음이 곧 그것이니라
.

법사(法師)란 꼭 법단에 앉아서 대중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남에게 한마디라도 전해줘서, 부처님의 법을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생명에 대해서 바른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다만 한 구절이라도 전해주면 법사가 되는 것입니다. 법사라는 자격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한마디라도 남에게 전해주는데, 법을 전해줄 때는 반드시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 여래의 자리에 앉아, 여래의 옷을 입고 설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방이란 대자비심(大慈悲心)이 곧 그것이다
부처님은 대자비심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자비심이란,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가서 괴로움을 없게 해주며, 즐거움이 없는 사람한테는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법당에 나와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결과로 이런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많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공덕을 지었다면, 그 과보로 극락세계에 태어났어야 할 텐데, 어째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덕을 지었으면서도 사바세계에 사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지요.
이것의 대답이 바로 ‘대자비심’입니다.
전생(前生)에 우리가 많은 부처님을 모시고 공부하면서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원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원(本願)입니다. 원을 세운 보살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제도할 중생이 있는 곳을 택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내생(來生)에 내가 아니면 제도할 수 없는 사람을 남편으로 만나고, 자식으로 만나고, 부모로 만나서 그분들에게 꼭 부처님 법에 의해서 큰 법문을 해주겠다’는 원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그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있다가 법회에 와서 법문을 듣고는, 잊었던 것을 다시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남편이나, 부인이나, 자식이나, 부모가 아니면 내 원력을 실현시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일수록 더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사람을 통해서 보살의 원을 점점 더 키워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자비심입니다.

부처님의 자리는 공(空)이 곧 그것이다
우리들은 부처님의 자리를 아주 멋지게 꾸미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자리는 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금강경에 “무릇 있는바 상(相)은, 다 이것이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이 곧 부처님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공(空)의 자리에서는 이 세상 모두를 절대(絶對) 평등(平等)으로 봅니다. 그 사람이 지금 현재 있는 자리가 어떤지도 관계없고, 잘 생겼느냐 못 생겼느냐도 관계없고, 돈이 많으냐 적으냐도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냐 바보 멍청이냐도 관계가 없으며, 더 나아가서 죄를 지은 사람이냐 착한 사람이냐도 관계가 없습니다. 무조건 절대평등입니다.
그러니 만약 어떤 법사가 있어서 ‘나는 아는 것이 많으니까 너보다 높고, 너는 아는 게 없어 나한테서 배우니까 너는 나보다 좀 아래다’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차별의 세계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참다운 법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법우님들도 앞으로 법사가 되려면 ‘나 잘났다’는 마음부터 없애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자리에 앉는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옷은 인욕유화(忍辱宥和)이다
부처님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옷의 내용이 바로 인욕유화(忍辱宥和)입니다.
인욕(忍辱)이란 ‘남에게 욕된 일을 당해도 참는다’는 것입니다.
법우님들은 저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법문할 기회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이라든지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줄 기회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전해주다 보면,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 천 명 가운데 한 명쯤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기뻐하며, 믿는 마음을 낼 수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무시하며 흘려듣거나, 오히려 비웃으며 비꼬거나, 심지어는 화를 내거나 욕하고 때리기까지 합니다. 이럴 때 참는 마음[忍辱]으로 참으려면 마음이 부드러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법을 전해주는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세상에는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도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남들이 나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상관없이 더욱 부처님의 법을 사람들에게 일러줘야 합니다. 그래서 내 몸뚱이가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게 되면 어려움을 참아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욕유화의 마음입니다.

법사란 이처럼 부처님의 법을 설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럼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부처님도 설법하시는 분입니다.
부처님은 언제 어디서나 계시면서 늘 법문을 주고 계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법사가 그것을 풀어서 우리들이 알아듣기 쉽게 일러주는 것입니다.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법(傳法)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전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디 멀리 가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시작합니다. 내 아내에게 전법하고, 부모에게 전법하고, 남편에게 전법하고, 자식에게 전법하는 것입니다.
전법을 통해서 생명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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