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들음
 

실로 마음이 갈팡질팡한 게 그리 믿음직스럽지 않습니다. 어느 때는 성인군자같이 넉넉하다가, 갑자기 돌변해서는 야차(夜叉)보다 더 잔인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제 마음을 제가 모르겠습니다.

문사수 2009.09.28 조회 수 5316 추천 수 0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습(習)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힐 만큼 확연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힘으로 일상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게 습의 정체입니다.
예를 들어 종이 자체에는 습이 존재하지 않지만, 한 번 돌돌 말아놓으면 펴놓아도 다시 돌돌 말리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프링은 본래 쭉 펴진 철사 줄이었지만, 둥근 모양을 짓고 나면 아무리 힘을 주어 눌러도 그 모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게 습입니다.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익숙하다 보니까, 그것이 자신의 본성인 줄로 알고 의심치 않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혀가 짧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바람 풍(風)자를 읽도록 시켰더니, “바담 풍!”하더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듣고 있던 아버지가 아무리 잘못을 교정하려고 해 보아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발음 자체가 “바담”인데, 어떻게 아들 입에서 바람이라는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들은 대로 흉내를 낸 아들은 아무 잘못도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난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거야!”하면서 큰소리치던 사람이 나이를 먹고 나니, 주변에서 “어쩌면 어머니하고 그렇게 비슷한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으로 나타나는 습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말아놓은 종이를 보고 종이의 본성은 돌돌 말린 상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럼 이런 습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갈 길은 과연 없을까요?

염불의 원리에 따르면 됩니다. 이미 중생구제의 원력을 성취하신 부처님께 섭취(攝取)되어 부처님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이 염불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쉽고 간단할 뿐더러 확실합니까?
우리는 부처님에게 섭취되어 있는 참으로 자랑스런 부처님생명의 주인공들입니다. 우리 각자마다 따로 업을 정화하려고 발버둥 칠 필요가 없습니다. 염불하며 부처님께 섭취되면 그만입니다. 다시 말해서 염불은 언제 어디서나 지금의 마음이 부처님생명으로 살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 섭취된 자신이 부처님생명의 상태를 항상 유지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발현인 동시에, 원력 섭취의 기회를 잃지 않겠다는 절박한 결단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끔씩은 부처님께 “뭘 좀 해 주소서”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진심이 아닌 습이기에, 착각이며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빨리 마음을 다잡아서 염불합시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원력이 성취케 하십시오. 부처님의 회향은 우리 각자가 자리한 곳을 떠나지 않으며, 염불하는 바로 지금 벌어지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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