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에 열심히 참석하여 정진하는 사람을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종교는 그렇게 빠져드는 게 아니야. 부처님도 적당히 믿어야 한다. 우리도 불교를 믿지만 말이야”하는 식의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언뜻 듣기에 아주 그럴듯한 말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의 생활은 하나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부처님 법을 머리핀과 같이 장식하고 살겠다는 은밀한 뜻이 웅크리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가족 간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서 모이는 게 더 낫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고스톱을 치면서 주고받는 대화에서 과연 오늘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마음은 각자 딴 데 가 있으면서, 맛난 불고기를 먹으며 시시덕거린다고 인생의 근본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적당히 시간이 내서 사월초파일 같은 날에나 법회에 참석하겠다는 것은, 그 나머지 시간 동안 자신의 생명가치를 돌아보지 않고 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그런 마음자세로 법당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한다고 해도 다리 아픈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믿음이란 삶의 근본으로 돌아가 자신을 자신답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있어서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건이나 사물만을 말하는데 길들여져 왔습니다. 우리의 일생만을 본다면 수 십 년의 세월을, 그리고 인류가 살아온 날들을 감안한다면 수 백 만년을 말입니다.
이렇게 단 하루도 자신을 마주하지 않기에, 보통사람들의 나날은 온갖 공포로 가득 차 있게 됩니다. 자신을 일러 죄인이라고 하거나, 혹은 팔자가 나쁜 사람이라는 투로 너무나 쉽게 우리의 참생명을 모독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무서운 신이 있다고 그것이 내 인생 자체를 어쩌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부처님가르침의 핵심은 이렇게 삐뚤어진 삶에 대한 여지없는 단절에 있습니다. 아닌 것을 가지고 맞는다고 하고,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무책임한 세상풍조입니다. 반면에 이렇게 뒤집혀진 망상을 한칼에 베어버리는 분이 부처님입니다. 삶의 근본에 자리하고 계신 우리의 참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부처님을 잊지 않는 것이 염불 아닙니까?
따라서 극락왕생은 그럴듯한 구호가 아닙니다. 공짜로 얻을 수도 없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우리를 얽매어 왔던 굴레들을 끊어버리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구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정신생활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전존재를 던져 일생을 살아야 합니다. 믿는 그대로 받는 것이 인생입니다. 자신이 인정하는 범위의 틀 속에서는 불안과 두려움만 생깁니다. 그 틀은 평안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구속하기에 그렇습니다.
언뜻 듣기에 아주 그럴듯한 말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의 생활은 하나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부처님 법을 머리핀과 같이 장식하고 살겠다는 은밀한 뜻이 웅크리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가족 간의 우의를 다지기 위해서 모이는 게 더 낫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고스톱을 치면서 주고받는 대화에서 과연 오늘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마음은 각자 딴 데 가 있으면서, 맛난 불고기를 먹으며 시시덕거린다고 인생의 근본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적당히 시간이 내서 사월초파일 같은 날에나 법회에 참석하겠다는 것은, 그 나머지 시간 동안 자신의 생명가치를 돌아보지 않고 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그런 마음자세로 법당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한다고 해도 다리 아픈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믿음이란 삶의 근본으로 돌아가 자신을 자신답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있어서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건이나 사물만을 말하는데 길들여져 왔습니다. 우리의 일생만을 본다면 수 십 년의 세월을, 그리고 인류가 살아온 날들을 감안한다면 수 백 만년을 말입니다.
이렇게 단 하루도 자신을 마주하지 않기에, 보통사람들의 나날은 온갖 공포로 가득 차 있게 됩니다. 자신을 일러 죄인이라고 하거나, 혹은 팔자가 나쁜 사람이라는 투로 너무나 쉽게 우리의 참생명을 모독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무서운 신이 있다고 그것이 내 인생 자체를 어쩌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부처님가르침의 핵심은 이렇게 삐뚤어진 삶에 대한 여지없는 단절에 있습니다. 아닌 것을 가지고 맞는다고 하고,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무책임한 세상풍조입니다. 반면에 이렇게 뒤집혀진 망상을 한칼에 베어버리는 분이 부처님입니다. 삶의 근본에 자리하고 계신 우리의 참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부처님을 잊지 않는 것이 염불 아닙니까?
따라서 극락왕생은 그럴듯한 구호가 아닙니다. 공짜로 얻을 수도 없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우리를 얽매어 왔던 굴레들을 끊어버리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구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정신생활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전존재를 던져 일생을 살아야 합니다. 믿는 그대로 받는 것이 인생입니다. 자신이 인정하는 범위의 틀 속에서는 불안과 두려움만 생깁니다. 그 틀은 평안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구속하기에 그렇습니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