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말과 같이 가능할까요? 사람의 됨됨이는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염불을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 막상 죽을 때 나무아미타불이 될 턱이 없습니다.
죽음이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누리고 살던 모든 것을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순간입니다. 그런 상황이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보다 무서운 때가 어디 또 있었겠습니까? 그 어떤 경험이나 지식으로도 감당하지 못하기에, 오직 공포에 찌들어 죽어갈 뿐입니다. 당연히 몸뚱이나 가족이나 명예나 돈 등 자신의 소유로 여겨지던 어느 것도 가져가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한계 속의 자기만이 있다고 착각하는 범부는 생각 생각마다 두려움에 떱니다. 설사 소득이 있어도 “얻은 것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행복한 순간에도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식으로 끝없는 생사의 수레바퀴를 스스로 굴리며, 그 범주 속에 안주하려고 몸살입니다. 곳곳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흔히 하는 말로, “그런 것은 나중에 걱정해” 합니다. 학교에서도 “시험 때 가서 걱정하지”라고 큰소리를 뻥뻥 치면서 흰소리를 하지만, 결말은 언제나 짜증의 연속일 따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부러 시험을 못 보는 것은 아니지만, 큰소리를 친 만큼 거기에 상응한 자기 투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막상 죽음이라는 현실을 앞에 두고, “어떡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겠는가?”하면서 비방이나 물으러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방을 묻는 그 마음이 삿되기에,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삿되리라는 것은 불 본 듯이 환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제멋대로 뻐기다가, 나름의 한계를 맞고 나서야 “아하, 이거 가지고 안되겠네”하면서 꼭 당해봐야 압니다. 그러니 이보다 한심한 인생도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태어난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절대절명의 위기를 감당해 줄 사람이 따로 있을까요? 단정하건데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이외의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엄연한 인생살이입니다. 자식 대신 물 한 컵도 못 마셔주고, 부모 대신 밥 한술도 못 먹어줍니다. 형제가 넘어져서 생채기가 나도 대신 아파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대리인생이란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관심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삶이라는 게 본래 그러하니 어쩌겠습니까?
때문에 부처님은 『무량수경(無量壽經)』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고, 혼자 오고 혼자 간다[獨生獨死 獨來獨去].” 그렇기에 태어날 때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태어나지 않았듯이, 같이 죽자고 하는 큰소리치는 사람은 보았어도 그 소원을 이룬 사람 또한 보질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누리고 살던 모든 것을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순간입니다. 그런 상황이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보다 무서운 때가 어디 또 있었겠습니까? 그 어떤 경험이나 지식으로도 감당하지 못하기에, 오직 공포에 찌들어 죽어갈 뿐입니다. 당연히 몸뚱이나 가족이나 명예나 돈 등 자신의 소유로 여겨지던 어느 것도 가져가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한계 속의 자기만이 있다고 착각하는 범부는 생각 생각마다 두려움에 떱니다. 설사 소득이 있어도 “얻은 것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행복한 순간에도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식으로 끝없는 생사의 수레바퀴를 스스로 굴리며, 그 범주 속에 안주하려고 몸살입니다. 곳곳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흔히 하는 말로, “그런 것은 나중에 걱정해” 합니다. 학교에서도 “시험 때 가서 걱정하지”라고 큰소리를 뻥뻥 치면서 흰소리를 하지만, 결말은 언제나 짜증의 연속일 따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부러 시험을 못 보는 것은 아니지만, 큰소리를 친 만큼 거기에 상응한 자기 투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막상 죽음이라는 현실을 앞에 두고, “어떡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겠는가?”하면서 비방이나 물으러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방을 묻는 그 마음이 삿되기에,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삿되리라는 것은 불 본 듯이 환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제멋대로 뻐기다가, 나름의 한계를 맞고 나서야 “아하, 이거 가지고 안되겠네”하면서 꼭 당해봐야 압니다. 그러니 이보다 한심한 인생도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태어난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절대절명의 위기를 감당해 줄 사람이 따로 있을까요? 단정하건데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이외의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엄연한 인생살이입니다. 자식 대신 물 한 컵도 못 마셔주고, 부모 대신 밥 한술도 못 먹어줍니다. 형제가 넘어져서 생채기가 나도 대신 아파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대리인생이란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관심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삶이라는 게 본래 그러하니 어쩌겠습니까?
때문에 부처님은 『무량수경(無量壽經)』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고, 혼자 오고 혼자 간다[獨生獨死 獨來獨去].” 그렇기에 태어날 때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태어나지 않았듯이, 같이 죽자고 하는 큰소리치는 사람은 보았어도 그 소원을 이룬 사람 또한 보질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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