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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예불문 13] 불교는 구도자의 종교다

문사수 2015.10.01 조회 수 13856 추천 수 0


정토예불문 강의(13)


  

불교는 구도자의 종교다!


앞 시간에 선지식(善知識)께 예경 드리는 것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불교사 속에서 대표되는 많은 선지식들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나 행적이 드러나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이 계셨을 것입니다. 선지식이라 하면 의례히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고매한 스승으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배우려는 자가 없는데 스승이라는 자리매김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배움의 길을 가는 구도자 앞에는 만나는 모든 인연들이 다 선지식인 것입니다. 남녀노소나 지위의 고하, 인격의 깊고 얕음과는 관계없이 모두가 선지식이 됩니다. 선지식과 구도자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스스로를 무한히 개방해 나가는 것, 그 속에서 스승을 만나서 끝없는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 '구도자의 종교'로서 불교의 특질이기에, 모든 선지식께 지심귀명례하는 것입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主一切 僧伽耶衆


예불문 마지막 여덟번째 지심귀명례입니다. 시공간적으로 제석천의 그물코처럼 많은 국토에 두루 두루 항상 계시는 승가에 대한 예경입니다.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가치를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라고 합니다. 이 가치에 대한 예경이 예불문의 주된 요지입니다. 앞에서 부처님과 깨달은 법에 대하여 예경을 모셨고, 이제 승보 즉 승가에 대한 예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승가(僧家)는 상가(sangha)라는 범어를 한문으로 음사한 말입니다. 승가는 소위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불교도를 전통적으로 4가지 부류로 나누는데 이를 사부대중(四部大衆)이라 합니다. 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로 나눕니다. 출가한 남자 수행자를 비구, 여자 수행자를 비구니라 합니다. 또 출가하지 않고 일상생활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남자 신도를 우바새, 여자 신도를 우바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모두 승가의 구성원입니다.


흔히 종교를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세 가지 필요충분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교주가 있어야 하는데 종교를 처음 열어서 가르침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내용 즉 교리(敎理)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교주와 교리를 따르는 교도(敎徒)가 있어야 합니다. 승가가 바로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교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요즘 참 기가 막힌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 사부대중을 비구, 비구니 그리고 사미, 사미니라고 가르치고 있는 종단이 있습니다. 사미 사미니는 아직 계를 받지 않은 수습과정에 있는 출가자를 말합니다. 사부대중의 의미를 잘 모르고 하는 착각이길 바랄 뿐입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면 출가자 중심의 불교를 정립하려는 무서운(?) 의도가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더 기막힌 것은 어느 절에서는 부처님 출가일을 ‘스님의 날’이라고 버젓이 명기해서 신도들이 스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한다는 깊은(?) 의도를 가지고 행사를 진행 한답니다. 생사해탈을 향한 굳은 의지를 실현하려는 결연한 구도자의 정신은 뒷전이고, 그 행색을 추앙하게 하는 불편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요즘 중이 무슨 큰 벼슬이나 되는 것처럼 행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닭 벼슬보다 못한 게 중이라고 했는데, 신도 위에 군림하고 종단 내에서의 소임을 권력화합니다.


비구(比丘, bhikku)는 걸사(乞士) 즉 빌어먹는 분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살려짐에 감사하며 오로지 하심(下心)으로 구도의 길을 가는 수행자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경하며 공양하고 복전(福田)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사부대중들은 다 알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당시에 인도의 계급화된 사회구조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부처의 출현과 진리의 보편성을 선언하셨습니다. 당시의 바라문과 외도들이 행하던 '사제(司祭:신과 피조물을 매개하는 자)의 권력'을 작금의 불교도들이 행하고 있는 꼴입니다. 불교는 사제의 종교가 아니라 구도자의 종교임을 각인해야 합니다.


열반경에 말씀하시기를, 비구의 행색을 하고 불법을 파괴하고 승가의 화합을 깨는 이가 있다면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는 칼과 작대기를 들고서라도 이를 저지하여 법을 옹호하고, 법을 옹호하는 법사를 호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도가 이런 작태를 뻔히 보고 알면서도 나 몰라라 한다면 이를 암묵적으로 동조한 것 아닐까요?


이 모든 비불교적인 행위들은 승가의 정신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승가는 좁은 의미로는 출가자 중심의 수행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 출가하는가?’라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이 승가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구도심'때문입니다. 구도심이 무엇입니까? 생노병사로 대표되는 인생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삶에 대한 적나라한 인식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지향하게 됩니다.

 

마침내 진정한 해탈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와 남의 동시적인 해탈을 추구하는 구도자, 이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내가 해탈하고 난 이후에 남을 해탈시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해탈은 그럴 수도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부처님의 성불은 만생명의 성불입니다. 동시적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이 바로 모든 생명의 완전성을 보고 깨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교는 부처님의 성불로부터 시작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승가의 진정한 의미는 '구도심' 즉 ‘보살심’입니다. 형상이나 형식이 아닌 생명의 근본적인 지향(指向)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해탈’을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생명이 괴롭고 병들고 죽고 싶어 하겠습니까? 이런 만생명의 지향을 존중하고 북돋워서 생명의 근본 원리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 승가의 참다운 정신이겠지요.

 

모든 불교의식은 삼귀의(三歸依)로부터 시작됩니다.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로부터 불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의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불교의식에서 삼귀의례를 노래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대중화에 맞춘 나름 의미있는 변화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중에 승보(僧寶)에 대한 귀의 부분을 '스님들'이라고 번역하여 부르는 것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승가는 스님들만의 공동체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사수법회에서는 화엄경 정행품의 삼귀의 법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게송으로 모십니다. 삼귀의의 근본 뜻을 후렴구에서 명확하게 각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법회가 사이비불교라는 험한 말을 듣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있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 이후 문사수법회 법요집에는 각 항목 마다 경전의 출처를 명시하는 친절(?)을 베풀게 되었습니다. (계속)


<문사수법회 정신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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