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종(鍾)은 누굴위해 울리나?

문사수 2015.06.17 조회 수 14150 추천 수 0

  살다보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종(警鐘)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정신 차리는 시기가 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자기 내면의 변화에 대해서 정직해지기 시작하는 중년(中年) 때쯤입니다. 그전까지는 오로지 출세나 돈을 위해서 혹은 가정의 안녕을 위해서 열심히 삽니다. 무언가를 위해서 움켜쥐려고 열심히 사는데 어느 날부터 가슴속이 허해집니다.
‘큰 집에 살아서, 비싼 옷을 입어서,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어쨌단 말인가?’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 그게 어쨌단 말인가?’ ‘회사에서의 내 지위가 부장이건 이사이건 그게 어쨌단 말인가?’ ‘이렇게 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
이러한 생각이 들 때가 바로 인생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때입니다. 좀 뭐한 표현으로 인생 종치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 종친다고 하니까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 종친다는 것은 크게 각성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계기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내면에 경종 소리가 “땡!”하고 울려도 이를 외면하고, 기존의 삶을 연장하면 무언가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이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나 열심히 살았는데 이게 뭐지?’ ‘나 이제 뭐하고 살지?’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에게 “인생은 다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라는 자못 씁쓸한 내용의 답변이 인터넷의 상담 사이트에 부지기수입니다. 똑같이 헤매고 있을 뿐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집단들끼리 끼리끼리 공범화해서 그냥 살아갑니다. 서로가 남들 사는 겉모습만 보며 그냥 살아갈 뿐입니다. 이것이 흔히 얘기하는 종족의식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솔직해지기로 합시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종족의식을 갖고 모였다고 칩시다. 예를 들어 30~40대끼리 모였다거나, 가정주부끼리 모이면 그들이 모두 똑같습니까?
각자 전혀 다른 인간들입니다.
매일 만나는 친구라 해도 그 친구가 나를 대신해서 살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라도 자식이 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염불법문이 있습니다. 염불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부처님의 원력에 의하여 살려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파암각(破闇閣)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종각이 많습니다. 어둠을 깨뜨린다는 참 멋있는 이름입니다. 또한 대개의 종에는 종성게가 새겨져 있는데 그 뜻이 참 좋습니다. 부처님의 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원차종성 변법계 철위유암 실개명 삼도이고 파도산 일체중생 성정각
願此鍾聲   遍法界   鐵圍幽暗   實開明   三途離苦  破刀山   一切衆生   成正覺

종을 한번 치면서 “원차종성 변법계(願此鍾聲 遍法界)”하며 시작합니다. ‘원하옵나니 이 종소리 두루 법계에 다 펴져서’
또 치면서 “철위유암 실개명( 鐵圍幽暗 實開明)” ‘철(종) 주위의 깜깜함이 모두 다 밝아지이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고정돼서 계속 불안한 것이 유암입니다.
“삼도이고 파도산(三途離苦 破刀山)” ‘지옥·아귀·축생, 삼악도의 괴로움을 떠나 칼산(칼날 속에 있는 듯한 불안한 세상사)이 잘라져 버리고’, “일체중생 성정각(一切衆生 成正覺)” ‘모든 중생이 다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지이다.’

원하옵나니, 이 종소리가 모든 우주에 다 퍼져, 모든 유암계가 다 밝아지고 지옥아귀축생의 괴로움이 그대로 다 없어져 모든 사람들이 다 정각을 이루리이다.’

종소리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이렇게 살아선 안 되는구나’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고, 이러한 종소리가 모든 우주에 퍼져 어두움을 다 밝게 합니다. 결국 우리가 법회에서 외우는 〈내가 바뀌니 세상이 바뀐다〉는 구호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것을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나로부터 밝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파암(破闇)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법우님 각자의 열의와 집념, 실천이 뒤따를 때만이 우리의 사회가 밝아질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내 식의 밝아짐이 아니라 그분들 또한 부처님생명 따라 살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일찍 삶의 경종소리를 듣고 20대에 이미 정신차린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분입니다. 왕자로 살아봐야 별 볼일 없다는 걸 분명히 인정하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죽기 바로 직전에 인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라도 늦지 않습니다. 이러한 종은 빨리 쳐야 됩니다. 그때 모든 지옥아귀축생의 삼도의 칼날들이 부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불하며 정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살려주시는 부처님의 원력에 내 모든 것을 맡기기 위해서 염불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의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침으로 인간을 구원(救援)하려는 시도를 하고, 사회개혁(社會改革)은 신이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권력과 욕망을 채우다가 어느 날 스러져갔을 뿐, 인간구원의 대상이었던 민중들의 고통은 계속 이어져왔음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구원을 자력(自力)으로 하고 사회개혁을 타력(他力)으로 하려는 시도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꿔서 해야 합니다.
인간구원은 타력, 즉 부처님 원력(願力)에 맡기고 사회개혁은 우리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사회개혁이 되기를 바라면 안됩니다. 옆에 쓰레기가 있으면 남들이 쓰레기를 주워줄 것을 기대하고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띠었으면 그것은 나의 몫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개혁(社會改革)의 원리(原理)입니다.

부처님원력으로 살고 있는 나로부터 인간구원이 시작됐을 때, 아까 살펴본 종성게에 나오는 ‘철위유암 실개명’, 즉 주변의 어둠이 밝아집니다.
철위유암, 내 눈에는 주변이 다 어둡습니다. 나는 제대로 사는 것 같은데 주변은 너무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기적이고 편견 속에 있고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구속하고 아는 척하고 참 어둡습니다.
그런데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어둠을 밝히려면 종을 쳐야 합니다. 종을 칩시다. 나를, 내가 유지했던 것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염불입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로 우리는 종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어둠을 파괴하는 능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세상의 어둠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어둠을 없애보겠다고 하는 나, 그 나가 바로 어둠의 원흉이기에 그렇습니다.

내가 밝아졌을 때 어둠은 자연히 파(破)해지는 것, 이것이 파암의 원리입니다.
스스로 내가 밝아졌을 때 그것이 정진입니다. 주변의 어둠을 내 힘으로 파해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로부터입니다. 내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본래부터 밝았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근원적인 자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정진을 발원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기 때문에, 내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 전에 일종의 선서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내 힘으로 구원(救援)하겠다는 망상, 이젠 버립시다. 가정을 내 힘으로 바꿔보겠다는 말도 하지 맙시다. 그 가증스러운 마음을 버리기 시작해야 진정한 정진이 시작됩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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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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