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예불문 강의(11)
깨달음의 보편성을 증명하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우주 만법의 이치를 모른 채로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흔히 사대성인이라 불리는 분들이 출현하셔서 인류에게 깊은 통찰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주와 생명의 근본적인 깊이까지 두루 밝혀 놓으신 분은 부처님 밖에 안 계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우주 만법의 이치는 '절대(絶對)'와 '무한(無限)'이라는 말에 걸맞아야 하는 데, 소위 신(神)을 상정하는 유일신교들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주종(主從)과 대립(對立)의 구도로 보고 있습니다. 비록 신을 '절대자'라고 부르긴 하여도, 진정한 '절대' 즉 대립이 끊어진 존재로 파악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와 인간이 평행선처럼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이니 대립입니다.
아시다시피 불교는 부처님이 절대무한자 이기에 부처님 이외의 존재는 있을 수 없음을 밝혀 놓으셨습니다. 부처님과 모든 생명류는 본래 하나라는 것이고, 이 사실을 깨쳐서 아는 것이 불교의 본래 면목입니다.
이와 같이 불법(佛法)을 만났다는 사실은 참으로 귀하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불법을 우리가 만나서 이해하고 믿을 수 있도록 긴 역사의 터널을 뛰어넘어 설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치를 스스로 깨쳐서 증명해 온 많은 성인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여러 성인들에 대한 예경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
十六聖 五百聖 獨修聖 乃至 千二百諸大阿羅漢 無量慈悲聖衆
불교에서는 성인을 구체적으로 아라한(阿羅漢)이라고 부르는데, 한 마디로 만법의 이치를 깨치신 분입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하여 무학(無學)이라고도 하며, 또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공양(供養)을 마땅히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으로 응공(應供)이라고 합니다. 경전에서는 부처님 또한 아라한이라고 불러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깨치셨다는 만법의 이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그것은 연기법(緣起法)을 깨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연각(緣覺)이라고도 합니다. 객관적으로는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이치, 즉 모든 것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여 존재하며, 독립된 존재는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주관적으로는 나고 죽는 생사(生死)의 근본 원인이 무명(無明)으로부터 비롯됨을 깨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지혜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위 태초에 어떤 무엇이 있었다는 전제로 무조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어떤 원리로 존재하는가를 밝힌 것이니 그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지혜광명으로 우주 만법의 이치를 꿰뚫어 통찰하고, 세상에 낱낱이 밝혀 놓은 종교가 불교인 것입니다.
불교는 참으로 보편타당성을 존중합니다. 다시 말해서 평등성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 그 깨침이 혹 스스로의 주관적인 견해가 아닌가를 살피시기 위하여 21일 동안 면밀히 복기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당신의 깨침이 오류가 없는지를 하늘과 땅에게 물으시고 그 증명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범천(梵天:하늘세계의 최고 신)이 기쁨으로 증명하고, 그 깨치신 법을 설해주실 것을 세 번이나 요청합니다. 또한 지신(地神)의 증명으로 마왕파순을 항복받으시고는 스스로를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임을 이 세상에 선언하신 것입니다. 당신 혼자 자족하는 깨침이 아니라 이 우주 만물이 하나 되어 그 깨침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감히 평등하다고 이야기할 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십육성은 십대제자와는 별도로 아라한의 반열에 오르신 열여섯 분의 제자를 가리킵니다. 빈두로파라타, 나가세나 등의 이름을 가진 분들입니다. 절에 가면 그 분들을 모신 나한전이라는 전각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참으로 평범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또한 깨달음의 평등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백성도 계십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오백 분의 성인을 말합니다. 십육성은 개별적으로 깨달음을 이루신 분들이라고 한다면, 오백성은 여러 대중이 한꺼번에 아라한에 오르신 분들이라고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실제로 부처님이 깨치신 직후에 카샤파라는 배화교(拜火敎:불을 숭배하는 종교) 교주가 부처님의 감화를 받아서, 그의 제자 5백명을 데리고 부처님께 귀의하게 됩니다. 이들 모두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바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대중적인 귀의와 아라한 증득을 필두로 많은 대중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카샤파의 두 동생들도 각각 200명 300명의 제자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여기에 친구사이였던 사리불과 목건련이 그들 제자 250명을 데리고 부처님께 귀의한 숫자를 합쳐서, 천이백오십 명이라는 대규모 승가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들 모두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십육성이나 오백성이나 천이백오십 대중이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서 깨치신 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문을 설하시어 깨달음의 보편성을 실현하시고, 그 인연으로 많은 아라한들이 출현하시는 법의 평등성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독수성도 계십니다. 이 분들은 혼자 수행하여 깨치신 분들입니다. 직접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서 깨치시지는 않았지만,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깨침을 얻으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스스로 그 깨침의 보편성을 증명한 아주 보기 드문 분들입니다. 인연에 따라 세상에 알려진 분들도 있고, 아마도 우리가 모르게 살다 가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무튼 불교사에 등장하는 모든 성인들은 깨달음의 보편성을 증명해 온 구체적인 증인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오백성에 얽힌 감동적인 설화가 전해져 옵니다. 한번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공덕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숲 속에 500마리의 원숭이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원숭이의 두목이 마을에서 인간들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공덕을 쌓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원숭이들을 불러다 놓고 이야기를 하니 500마리의 원숭이들이 모두 찬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인간들보다 더 갚진 것을 공양 올리면 좋겠다고 하여, 밤하늘에 뜬 달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늘에 매달린 달을 따올까 고민하던 중에, 호수에 비친 달을 보고 저 달을 건져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들 기뻐하였답니다.
원숭이들은 깊은 호수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로서로 어깨를 걸어서 사다리를 만들어, 호수 물속으로 한 마리씩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어깨를 걸면 그 어깨를 타고, 한 마리 두 마리 원숭이들은 호수로 차례차례 들어갔고, 달을 공양 올리겠다는 일념으로 그 어떤 원숭이도 어깨를 결코 풀지 않았다고 합니다. 뒷얘기는 안 해도 아시겠지요?
달을 건져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는 그 공덕으로, 오백마리의 원숭이들이 다음 생에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 깨달음을 증명하신 아라한들이시여~ 다만 지심귀명례할 뿐입니다! 나무!
<계속>
<문사수법회 정신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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