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功德을 지어라! 그리고 회향廻向하라!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보면 법장비구(法藏比丘)가 마흔여덟 가지 원(願)을 세우고 그 원을 성취하여 아미타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원(願)이 마흔여덟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전부 당신의 세계에 태어나는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당신이 지은 공덕(功德)을 모두 다 회향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당신의 공덕은 온 우주를 만들고도 남고,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중생을 다 부처되도록 하고도 남는 절대무한(絶對無限)의 공덕입니다. 그 절대무한의 공덕을 당신 쪽에서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하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열여덟 번째 원은
‘내가 만약에 부처가 되었을 적에 내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는 원을 가지고 내 이름을 다만 열 번만이라도 부르면 내 나라에 태어나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원입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만약 태어나지 못한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즉 아미타부처님은 부처님이 되어서 혼자만 호강스럽게 사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한량없는 수행공덕을 중생들 모두에게 남김없이 다 회향하고 계신 분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회향(廻向)의 참뜻입니다.
중생들 자신은 죄업밖에 지은 것이 없지만 그 잘못으로 인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미타부처님이 지은 공덕으로 모두 부처가 됩니다. 즉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미타부처님의 회향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네가 지은 공덕을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해라’는 말이고, 이 얘기는 ‘당신의 모든 공덕을 중생들에게 모두 회향하고 있노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께서 회향하고 계신 공덕을 그냥 받아쓰기만 하면 그대로 극락왕생(極樂往生)입니다.
극락왕생은 부처님의 원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내가 따로 애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 힘으로 극락에 간다면 어려울지 모르지만, 부처님께서 지은 모든 공덕을 나에게 회향해주시는 그 힘으로 극락왕생을 하고, 그 힘으로 부처가 되는 것이므로 누구나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래부터 부처님의 무량공덕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부처님의 무량공덕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나 자신을 위해서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의 회향의 힘에 그저 올라타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고 합시다. 일단 버스에 탔다면 서울에 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버스에 탔으면 잠만 자도 서울에 갑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의지해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로 극락왕생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애쓸 필요 없이 부처님의 원력에 나를 맡기기만 하면 극락왕생(極樂往生) 합니다. 그러니 내가 내 걱정을 할 것 없이 오직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극락왕생을 했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극락에 가는 것이 틀림없지만, 극락에 가서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나 혼자의 것으로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본래부터 부처님의 무량한 회향 속에 있으니 스스로 내 문제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내 문제를 가지고 아옹다옹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 문제보다는 내 주변의 동포형제들을 어떻게 하면 기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동포형제들에게 심부름 잘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심부름을 잘한다는 것이 바로 회향과 같은 의미입니다.
회향은 회전취향(廻轉趣向)을 줄임말입니다. 즉 방향 전환을 한다는 뜻입니다.
보통은 회향이라고 하면 기도를 한다든지 불사(佛事)가 있다든지 하면 마지막 날을 회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내가 지은 공덕을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다 남들이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이에게 되돌리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만약 정진을 하면 그 공덕으로 당연히 자기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가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 권리를 내가 갖지 않고 그 공덕을 전부 일체 모든 중생 쪽으로 방향을 바꿔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향에는 보리회향(菩提廻向) 즉, 깨달음에 대한 회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덕을 지었다면 공덕의 가능성은 무한하고, 그 공덕으로 인해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무한합니다. 금강경에 다만 한 구절이라도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서 해설해주면 온 삼천대천세계에 꽉 차있는, 금·은·유리·마노·자거·산호·호박·진주와 같은 칠보 무더기를 가지고 남에게 보시한 공덕보다도 훨씬 더 크다고 했습니다.
경전을 읽은 공덕으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삼천대천세계 온 우주를 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부처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그 공덕을 다 지어놓고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기껏 ‘부처되는 것은 나중 문제고, 지금 오십 평짜리 집이나 좀 얻게 해주시오’라든지, ‘병을 좀 낫게 해 주십시오, 벼슬을 얻게 해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얼마나 기가 막히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공덕을 지어놓고 제일 먼저 할 일은 내가 이런 공덕을 지었으니, ‘깨닫게 해 주세요, 부처되게 해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리회향(菩提廻向)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내가 없고 오직 부처님생명만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는 없고 부처님생명만 있으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과 한 생명을 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은 놔두고 나만 부처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 공덕을 지을 때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법회를 모시는 것도 큰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로 하여금 이렇게 공덕을 지을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법회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준분들에게 공덕을 전부 나누어줘야 합니다.
이렇게 가만히 따져보면 온 천지의 모든 동포가 다 은인(恩人)입니다. 그런 동포들의 은혜가 아니면 오늘날 우리가 살 수도, 부처님 법을 공부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법회를 모시고 있는 이 조그만 사건 하나에도 전 세계인류가 총동원되어서 우리를 뒷바라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밥을 먹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새들이 나를 먹이려고 굶었겠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벌레는 죽어갔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밥 한 끼 먹는 것에도 부처님의 은혜와 온 우주 생명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공덕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내 것으로 가질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나로 하여금 공덕을 지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준 중생에게 모두 다 회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생회향(衆生廻向)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많은 동포형제들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 그 은혜를 갚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회향 법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온 우주 법계에 회향을 하는 것이 실제회향(實際廻向)입니다.
모두 남에게 돌려주고 나에게 돌아올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온 우주법계가 고맙기만 합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는 사람은 정진하는 것도 불사(佛事)하는 것도 일상생활 모두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입은 수 없이 많은 은혜를 갚아가는 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체 모든 중생의 성불(成佛)을 위하여, 일체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내가 지은 모든 공덕을 그쪽으로 돌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불교를 믿는 것은 처음부터 회향으로 시작됩니다. 내 욕심 채우자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기주의(利己主義)가 부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것이 따로 없이 모두가 한 생명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고 주장할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은, 이렇게 ‘나’라는 생각이 일어날 때 얼른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나를 없애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내가 없는데, 공덕을 지어서 내가 차지하려 하는 것은 참생명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내가 없는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공덕을 짓고, 그것을 모두 회향하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한탑스님 법문>
법문들으신 소감, 댓글 환영합니다~~~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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