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無病長壽의 비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웰빙, 운동, 요가, 몸짱, 유기농 야채, 다이어트, 무슨무슨 건강법… 이런 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디를 가도 이러한 조류에 뒤쳐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현대인들의 건강에 관한 관심은 이젠 단순한 관심을 넘어 맹신(盲信)에 가까운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해도 대과(大過)가 아닙니다. 실로 21세기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흥종교는 ‘건강교(健康敎)’라고 할 수 있는 형국입니다.
혹여, 인간에게 있어서 무병장수(無病長壽)에 관한 관심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고 심드렁하게 묻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바람은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이면서 공통된 것입니다.
허나, 법우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법우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건강을 챙기며 오래 살려고 하십니까?
늙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실, 몸을 건강하게 하려는 목적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몸을 잘 쓰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왜 건강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뒷전이고, 건강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몸뚱이를 신주(神主)단지 모시듯 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세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정작 몸뚱이를 쓰는 주인은 행방불명이고, 몸뚱이가 삶의 주인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가지고 자유롭게 살기는커녕, 도리어 몸뚱이에 소유당한 채 사는 전도(顚倒)된 현실은 너 나 할 것 없이 ‘건강염려증’에 걸린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실로, 소유하려고 하면 끝내 그것에 소유당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을 곱씹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병장수(無病長壽)에 관한 열망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두려움입니다.
병에 걸리는 것이 두렵고, 죽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중에서 사는 동안 한번이라도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제 아무리 장수했다고 한들 죽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분명 언젠가는 병들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몸뚱이입니다. 이 몸을 아무리 오래 가지고 있더라도 언젠가는 세상에 반납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에서는 어지간히 죽음이라는 단어를 기피합니다. 기분 나쁜 말로 치부되며,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어(禁忌語)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아무리 피하려 한다고 해도 피해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몸을 받아 태어날 때부터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생(生)과 사(死) 모두에 해당되며, 생과 사는 결코 따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생사(生死)를 넘어 영원생명을 일깨워주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眞理)란 보편하고 타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한 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명백하고도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 하다가 끝내 단발마의 비명 속에 저승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또한 너무나 명확합니다. 우리가 육신에 근거한 생명관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육신생명이 내 생명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몸뚱이가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죽음을 생명 전체의 종료로 받아들이게 되므로, 결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을 생명의 전부로 생각하는 것은 물질을 생명의 근거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삶의 모든 비극이 비롯됩니다. 펄떡거리는 스스로의 생명을 한낱 물질로 취급하는 한, 뒤틀리고 왜곡된 삶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스스로의 생명가치를 물질로 치부해 버린 삶은 항상 무엇인가를 비교하고 측정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채우기 위해 헐떡거리는 삶이 전개됩니다. 많이 채우면 채울수록 자기가 완전해진다고 믿기에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돈을 쫓고, 높은 지위를 얻으려 하며, 지식을 쌓으려 하고, 건강해지려 합니다. 왜 이러한 조건들을 쫓아야 하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무조건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그저 무조건 많이 쟁취하면 자기가 완전해지고 그것이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는 미신(迷信)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원하는 조건들을 충족시킨다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몸뚱이를 앞세우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끝내 몸뚱이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몸뚱이가 내 생명의 주인노릇을 하며 사는 한, 결국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물질화한 나머지, 무조건 뭔가를 많이 쟁취하면 자신이 완전해지고 그로 인해 행복이 보장될 것으로 믿는다면, 이러한 믿음이 ‘미신(迷信)’입니다.
‘미혹할 미(迷)’라는 글자를 분석해 보면, 그 의미가 보다 명확히 다가옵니다. ‘미(迷)’는 ‘달리다(走)+쌀(米)’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즉, 쌀을 좇아 달려간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쌀은 단순한 쌀이 아니라, 물질화된 가치의 총화(總和)를 의미합니다. 옛날에는 쌀이 화폐(貨幣)의 역할을 했었기에 여기서의 쌀은 모든 물질적 가치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혹한 삶이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서슴지 않고 물질적 가치 기준을 내세우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신앙이 바로 미혹한 신앙, 즉 ‘미신(迷信)’인 것입니다. 미신이란, 단순히 무슨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스스로 불자(佛子)임을 자처한들,
‘내가 이번에 백일기도를 열심히 했으니까 아픈 곳도 낫고 무슨 좋은 일이 있겠지…’
‘이번 일만 잘 되면 보시 많이 할 테니까, 이번 일은 꼭 성공하게 해주세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한, 이는 미신(迷信)일 뿐입니다.
오직 몸뚱이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처님과 거래를 하겠다는 심산(心算)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결코 의지할 바가 못됩니다. 몸뚱이가 요구하는 조건들도 의지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불(念佛)로 사는 염불행자라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염불은 결코 몸뚱이가 생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염불행자(念佛行者)는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믿음을 양보하지 않으며, 더 이상 몸뚱이가 요구하는 조건을 쫓아서 살 필요가 없음을 자각하는 사람입니다. 염불행자가 의지할 몸은 결코 육신이 아닙니다. 염불행자가 진정으로 의지할 몸에 관하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법문을 주십니다.
“저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니, 제가 부처님생명으로 사는 나라의 보살들은 금강역사와 같이 단단한 몸을 얻게 하겠습니다.”
법장비구(法藏比丘) 48대원 중 26째 원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증명하며 사는 염불행자야말로 부처님생명으로 사는 나라의 보살입니다. 이러한 염불행자의 몸은 금강역사(金剛力士)의 몸과 같은 부서지지 않는 몸이라 하십니다.
우리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은 결코 나고 죽는 법이 없는 영원생명이며, 부서지지 않는 금강역사의 몸입니다. 육신은 참생명이 표현된 현상이기에 무상법(無常法)에 따라서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지만, 참생명인 부처님생명은 항상(恒常)합니다. 또한 그 어떤 조건도 참생명을 위축시킬 수 없습니다. 이러한 참생명자리를 두고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이라 이르십니다.
마침내 무병장수(無病長壽)의 비결을 말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법우께서는 새삼스럽게 비결이라고 할 것이 없는 비결임을 이미 눈치 채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무병장수(無病長壽)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분명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무병장수의 비결은 오직 전법(傳法)말고는 없습니다.
만나는 모든 분들께, 우리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이 몸을 받은 것이지 결코 몸은 참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일깨워드려서, 그 분으로 하여금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늙고 병들어 결국엔 죽고 마는 몸뚱이가 우리의 참생명이 아니라 영원절대의 부처님생명이 우리의 참생명임을 알리고, 현상은 무상(無常)하지만 현상을 드러나게 하는 부처님생명은 항상하다는 것을 일깨워드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참생명은 본래부터 무병장수하는 생명임을 증명하는 것, 이것이 무병장수의 비결이며, 염불행자의 사명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법문들으신 소감, 댓글 환영합니다~~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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