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들음
 

『금강경』 제16분 ‘능히 업장(業障)을 깨끗이 함’에서 “다시 또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더라도 만일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이 되면, 이 사람은 선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로되, 금세의 사람들이 업신여김으로써 곧 선세의 죄업이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문사수 2010.02.20 조회 수 9654 추천 수 0
여기서는 경전의 교의적인 측면에서 답변하지 않고 신앙적 측면에서 말씀을 드릴까합니다.


사람들이 처음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믿음을 구하는 것은 여러 가지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하나는 세속적 욕망 추구이고, 두번째는 유한 생명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어떤 특별한 존재에게 의지하는 행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도 종교인 까닭에 이 같은 인간의 욕구에 화답하면서 인생의 바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고 실천하여서 마침내 부처이루기 위함[成佛]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되는 것 말고 최상의 길이 없음을 단적으로 말씀주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성불(成佛)을 위해서 우리는 발심(發心)을 하여 수행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수행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간단히 두 가지로 표현하면 업장을 소멸하는 일과 복덕과 지혜를 이루어 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충족하고 다 해결해 나가기 위해 우리는 경전(經典)에 의지하여 정진(精進)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항상 어려운 일들이 우리들 곁에 맴돌면서 시시각각 고통을 안겨주는 듯합니다.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하면 좋으련만 어떤 이는 수십 억짜리 좋은 집에서 행복을 구가하는 이들이 있으며, 반면에 또 다른 누구는 어려움 속에서 신음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차만별의 세상살이가 현실 속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별상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뿐만 아닙니다.
불교를 믿고 절에 다녀도 기대했던 것만큼의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염불 한마디 할 줄 모르고 평생동안 절에 한 번 가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과(因果)에 철저하지 못한 무지(無知)에서 나오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하여도 지금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은 전생에 지은 악업(惡業)이 아직 다 소멸되지 않은 까닭이고, 아무리 현재 악행을 많이 하여도 당장 망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전생에 지은 선업(善業)의 덕분이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삶의 모습은 모두가 인과의 소산임을 알아야만 됩니다.
중생이 인과를 믿던 믿지 않던 우리네 인생은 모두 인과의 법칙에 말미암은 현상을 떠나서 특별한 삶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내가 짓고 내가 받는’ 인과의 입장에서 삶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결코 밝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중생생명에 대한 집착심으로 인해 인과의 방향이 밝은 쪽, 복덕을 누리는 쪽으로 향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어둡고 척박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두운 쪽으로 향하는 업력을 업장(業障)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소멸하거나 되돌리는 노력이 없이는 결코 밝은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업장(業障)을 소멸코자하는 노력이 수행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이 스스로 업장을 소멸하기란 실로 쉽지 않습니다.
예부터 이러한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서 수많은 방편과 여러 단계의 수행과 과정을 밝혀놓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러 가르침에 의지하여 참회와 업장 소멸을 위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하루에 삼천배도 모자라서 만배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년을 수행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력으로 업장을 소멸하는 길이란 쉬운 길이 아니며, 나아가 그 수행의 성취를 완전히 이룰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없습니다. 한마디로 희박한 확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제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업장을 정화하여 밝은 인생의 성취를 이룰 수 없는 중생들을 단 하나도 버리지 않으시고 모두 구원하시겠다는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완전한 업장 소멸을 위해 처음부터 부처님의 자비원력에 의지하여 정진할 것을 맹서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지닌 이, 즉 발심을 한 불자에게 자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의 업장소멸의 길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 주고 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십니다.


“그렇지만 수보리여, 바로 이런 형태의 경전을 받아지녀 그것을 마음속에 새겨서 암송하고 자기 자신에게 비추어 보아 정진하는 그러한 선남자들 또는 선여인들 조차도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수 있느니라. 아니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족히 업신여김을 당할 수가 있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은 이들이 선세에 지은 죄업 때문이니, 이러한 죄업으로 인하여 응당 악도에 떨어질 것이로되, 바로 금세에서 그러한 굴욕을 받음으로 인하여 그들은 선세의 그 모든 죄업을 소멸시키고, 결국 그들은 선세의 그 모든 죄업을 소멸시키고, 결국 그들은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느니라.”라고 말씀 주고 계십니다.
또한 육조 혜능 스님께서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경(經)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인천(人天)의 공경과 공양을 받아야 하지만, 전생에서 무거운 업장이 있게 된 까닭에 금생에 비록 모든 부처님들의 심히 깊은 경전을 수지하면서도 항상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남의 공경과 공양을 받지 못함이니라. 하지만 스스로 경전을 받아 가진 까닭에 아(我)․인(人) 등의 상(相)을 일으키지 않아서 원수나 친한 이를 가리지 않고 항상 공경을 행하여 마음에 번뇌와 원한이 없으며 탕연(蕩然)히 계교(計較)할 바가 없어서 순간순간 항상 반야바라밀을 행함에 일찍이 물러남이 없으니, 능히 이와 같이 수행함으로써 무량겁으로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있는바 극히 무겁고 나쁜 장애를 모두 소멸한다 하시니라.”
고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워서 사람들에게 해설해 준 공덕으로 약간의 구박만 받는 것으로 전생의 나쁜 죄업을 소멸하고, 오는 세상에는 반드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증득(證得)하여 부처가 된다고 말씀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불자는 불법에 귀의하여 정진하면서 진리의 삶을 올곧게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거나 감내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의기소침하거나 물러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까짓 경전 하나 읽는다고 죄가 소멸되나?’하고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밝은 진리를 믿고 의지하여 정진할수록 점점 마음이 맑아지고 마음이 맑아지면 점차 모든 일에 걸림이 없게 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 걸림이 없이 삶을 마주하게 되면 마침내 죄업이 스스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죄업이 사라졌다함은 부처님의 지혜광명에 의지해 살려지고 있음을 확연히 믿는 것을 말합니다. 또 본래부터 부처생명을 살고 있었는데 어두운 마음으로 인하여 스스로 업장이 두텁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그 공포심에 갇혀서 짐짓 홀로 방황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불자가 오늘도 부처님의 자비원력을 믿고 정진하는 가운데 어려운 역경을 만난다면 나의 죄업이 소멸되는 기연(奇緣)을 만난 것이니, 주저하거나 퇴전의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다만 오직 겸허히 기뻐하고 불퇴전의 마음으로 회향해야 할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명성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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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2010.02.21
불자가 오늘도 부처님의 자비원력을 믿고 정진하는 가운데 어려운 역경을 만난다면 나의 죄업이 소멸되는 기연(奇緣)을 만난 것이니, 주저하거나 퇴전의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다만 오직 겸허히 기뻐하고 불퇴전의 마음으로 회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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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받아지니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