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운수행각(雲水行脚)하라!’

문사수 2012.03.13 조회 수 27198 추천 수 0

예부터 불가(佛家)에는 전해오는 말이 있습니다.

 ‘운수행각(雲水行脚)하라!’

 구름이나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쉼 없이 다리품을 팔라는 의미입니다. 다리는 단순히 몸에 달려있는 다리만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쉬지 말고 움직이고 살라는 뜻입니다.
 움직여 가는 곳마다에서 진리의 자리임을 확인하라.
 한가로이 앉아서 산천경계가 어떠하다고 얘기하고 있어도, 자신의 삶을 투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좋은 경치도 맑은 공기도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생(生)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시사하는 운수행각.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이는 곧 부처님생명으로 살기를 발심(發心)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더 이상 멈칫거리지 않겠다는 행동강령이 될 만합니다.
 이 발심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겨보는 의미에서, 부처님께서 법회의 자리에 모인 우리를 무척이나 대견스러워 하시면서 칭찬하시는 게송을 같이 모시겠습니다.

오, 착하도다.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는 것도 진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 마음을 내고 다시 보살의 행을 부지런히 행하려는 것은
몇 갑절이나 더 어려운 일이구나
그대가 이제 발심하고 보살의 도를 구하여
온갖 지혜중의 지혜를 성취하려거든
마땅히 진정한 선지식을 부지런히 찾아야 하느니라.
 
선지식 찾기를 고달파하지 말며
선지식을 보거든 싫증을 내지 말며
선지식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고 어기지 말며
선지식의 미묘한 방편에 다만 공경할 뿐이요,
허물을 보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큰 칭찬을 하고 계십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언제나 항상하는 진리를 말합니다. 이런 보편타당(普遍妥當)한 진리에 대한 마음이란, 나만이 옳다는 게 아니라 내 자식도 옳고, 내 조상님네도 옳고, 내 회사도 옳고 버스에 탄 사람도 다 옳은 진리라는 그런 마음을 내었을 때를 말합니다.
 이 마음을 냈을 때 얼마나 신통하냐고 부처님께서 우리를 칭찬하고 계신 것입니다. 참으로 잘 살고 싶고, 이웃과 화목하고 싶고, 형제와 도우며 살고 싶은 이런 마음을 낸다는 것이, 생각과 같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 진실로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마음만 내어서 되는 게 아니라, 다시 보살의 행을 부지런히 행하려는 것이 몇 갑절이나 더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마음과 같이 말이나 행동이 나오던가요?
 앞생각으로 이웃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내었다가도 갑자기 미워지는 뒷생각이 일어나면,
 “그래, 너는 네 복 따라 살아”
하면서 그냥 방치합니다.
 넌 너대로 그렇게 살아라하는 뜻으로 한 말이라 여겨지지만, 이렇게 마음하고는 달리 가슴에 못박는 소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서자마자 후회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입니까?

 이렇게 우리가 마음을 내는 것도 힘든데, 막상 실천해가며 지키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부처님은 선지식(善知識)을 찾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선지식을 찾는다는 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내가 선지식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어느 날 보면 악지식(惡知識)으로 밝혀질 때 우리는 황당해 합니다. 알고 보니 노름꾼이어서 나를 노름의 구렁텅이로 몰고 갑니다. 온갖 삿된 행위를 권하면서 나에게 공포심을 심어 줍니다. 용한 곳에 점을 보러 가자거나, 돼지머리라도 바쳐서 푸닥거리를 하자고 꼬입니다. 성지순례를 빌미로 해서 명승지만 돌아다니며 구경하는데 마음을 빼앗기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지식을 잘못 만나면 큰일 난다는 게 이런 걸 두고 말할 것입니다. 나를 잘 살려주는 그런 분이 선지식이라면 악지식은 나를 눈멀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선지식보다 악지식을 친근하게 여기기 쉬운 이유는, 무언가에 눈이 멀게 되면 눈에 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바깥의 어떤 것에 정신이 팔렸을 때는 전체적인 삶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내가 금을 가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금에 내가 소유됩니다. 내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금이 주인 노릇을 하고 맙니다.
 어찌 금만이겠습니까? 눈이 뒤집히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소유라고 착각합니다. 자기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을 마주하지 못하게 됩니다.
 애정이나 우정과 같은 인간관계(人間關係)도 그렇습니다.
 저 친구는 내 것이고 저 남편이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배반(背反)이라는 말을 쉽게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배반이 아닙니다. 극히 정상적인 귀결입니다. 대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집착에 말미암고 있기에, 내가 오히려 잡아먹히고 만 것이기 때문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사람에게서 발견됩니다.
 만나고 있는 상대방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과 만나고 있는 나를 동시에 확인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주변에 모여든 친구나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 우리들의 마음 상태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오늘 법우는 어떤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습니까?
 반목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지, 아니면 웃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지를 헤아려 보면, 당신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좋거나 나쁘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쪽에서 어떤 지향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주변의 상황은 벌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한 세계의 주민인 내 이웃들 속으로 들어가서 선지식을 찾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발을 내딛으면서 말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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