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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문사수 2012.10.06 조회 수 24816 추천 수 0

 중생공양(衆生供養)이 곧 제불공양(諸佛供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생한테 공양 올리는 것이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중생공양은 생각지 않고, 부처님한테만 공양 올리면 그만인 줄 압니다. 이것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따로 있다고 하는 착각에서 비롯됩니다.
  부처님이라는 특별한 분이 따로 계시질 않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처럼 보이는 분들이 사실 다 부처입니다. 그렇기에 중생들에게 공양을 잘 올리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내 밖에 있는 인격자를 공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참생명이 드러나는 공양이 됩니다.
  우리가 불공을 드리고, 예불을 잘하고, 부처님의 성스러운 명호를 잘 외고 나무아미타불하는 것이, 내 밖에 있는 어떤 특별한 분에게 공양을 하고, 어떤 특별한 분에게 절을 하고, 어떤 특별한 분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참생명에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나의 참생명을 가장 존귀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며, 부처님의 성스러운 명호를 외운다는 것은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것을 스스로 외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불교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중생세계 밖에 따로 부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불교는 나의 참생명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천지가 부처님밖에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중생이 없고 부처생명밖에 없다는 이 말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극락세계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극락세계를 여기와 따로 떨어진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 말씀대로 사실은 버릴 중생이 없습니다. 버릴 중생이 없다는 말은 곧 버릴 사바세계(娑婆世界)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사바세계가 따로 없으면 극락세계도 따로 없다는 것이 됩니다.

  시어머니가 날 들볶아서 못살겠다 싶어도 시어머니 비유를 잘 맞추고 뒷바라지 잘 해주는 것이 참다운 불공(佛供)입니다. 법당에 와서는 불공드리는 연습, 중생을 수순(隨順)하는 연습하는 곳입니다. 즉 법당은 부처님 모시는 연습을 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훈련을 하고는 일선에 나가야 합니다. 일선이 우리 집 안방이고, 직장이고, 버스 안입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이 얼른 보기에 중생처럼 보이니까 ‘아이고, 안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중생이 아닌 걸 중생으로 보았으니 죄송합니다’ 하고 얼른 하심(下心)하여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네가 나쁘게 했으니 내가 중생으로 보았잖아’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나쁘게 했다는 겉모양이 참으로 없다고 했으므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속은 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은 온화하시고 따뜻하셔서 내 소원 다 들어주시고 언제나 웃음으로 대해주시는 분인 줄 압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보면, ‘야차·건달바·아수라의 모습으로 제도할 중생은 야차·아수라·건달바의 모습으로 제도한다’ 고 하십니다. 야차는 살아있는 것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무서운 괴물입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야차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내 재산 다 뺏어가고,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야차가 재수 없는데 어떻게 내쫓을 수 있을까’ 합니다. 하지만 관세음보문품 말씀대로라면 그 야차가 정말 나쁜 귀신으로 있는 것인가요?
  그러한 것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정말로 있는 것은 부처님생명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내 눈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그분은 본래 부처님이란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들을 수순한다는 것이 부처님을 따라 모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따로 계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계 전체가 그대로 부처님의 법신(法身) 활동의 현장입니다. 아미타불의 현장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전 여태까지 관세음보살을 불렀는데, 스님 말씀을 듣고 아미타불을 부르려고 하니까 관세음보살이 자꾸 나오는데 어떡합니까?”
  관세음보살 부르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고 한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데 부르지 말라고 합니까? 그런데 다만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우리에게, ‘내가 나무아미타불 부르듯이 너희들도 나무아미타불 불러라’고 하십니다.
  관세음보살상을 보면 머리에 아미타부처님을 이고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이란 분은 날마다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계신다는 얘기입니다. 언제든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내 앞에 중생처럼 보이니까, 중생으로 보지 않기 위해서 자꾸 나무아미타불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있을 때, 곧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있는 모습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아무리 절에서 부처님한테 불공을 잘 드리고 독경도 잘하고 염불을 잘하더라도, 부모를 잘 모시지 않고, 며느리를 잘 대접하지 않고, 또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처님의 공덕이 나오지 않습니다.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과 시어머니나 며느리나 이웃사람이 본래 차별이 없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불공을 드리는 자리가 내 가정을 따로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모셔야 될 부처님이 우리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내지는 원수로 나타난 모든 중생들을 빼놓고 따로 계신 분이 아닙니다. 부처님을 따로 모시려고 할 때 우상숭배가 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 상태에 있고,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어떤 몸을 가지고 있든지 그걸 구별하지 않고 수순하는 겁니다. 아주 극악한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니 그 모습에 상관하지 않고 부처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 수순중생이 불교의 중심사상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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