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佛敎)를 말 그대로 풀이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란 ‘깨달으신 분’을 말하고, 이 분이 깨달은 내용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신앙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리로 들어가려면 ‘진리가 아닌 삶’을 청산해야지만 진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어떤 것이 진리이고 어떤 것이 진리가 아닌지를 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진리라고 내세우는 것을 가만히 보면 그것이 비진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대립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비진리란 ‘상대유한(相對有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노병사(生老病死)에 끄달리면서 살고 있는 이 자체가 비진리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진리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 안에서 판단을 하면서,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불신(不信)하고 맞으면 진리라고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나누어서 따로따로라고 생각하는 것’, 즉 분별심(分別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별하는 이 모든 것이 망상(妄想)이며 진리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나는 진리요’라는 생각이나, 혹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거나 심지어는 ‘나는 잘못이다’라는 생각조차도 모두 분별심에서 나온 망상이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망상이 결국은 대립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이렇게 대립하는 의미로 옳다 하여도 옳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생존경쟁하고 분별하는 비진리적인 삶을 모두 포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그 마음을 항복(降伏)받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할 수 없이 생존경쟁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생존경쟁의 세계로 보는 것은 항상 ‘나’를 내세워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것이 진리가 아니며, 생존경쟁적인 삶을 모두 항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본래부터 절대무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내용입니다. 다른 말로 부처님세계라고 합니다. 본래부터 절대무한, 즉 부처님밖에 없는데, 잡된 것이 들어와서 혼란을 일으키며 절대무한을 가리고 있어서 상대유한적인 현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밖에서 들어온 먼지가 본래 있는 것을 흐리게 만들어서 내가 부처가 아닌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객진번뇌(客塵煩惱)라고 합니다. 이 객진번뇌만 내버리면 본래 있는 절대무한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밖에서 들어왔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밖에 있는 것의 자극을 받아서 그 자극에 의해서 내가 반응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내밖에 남이 있고 남밖에 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입니다. 즉, 나와 남을 둘이라고 나누어 생각한 것이지요. 이렇게 분별심이 작동하는 것은 중생심(衆生心)때문입니다. 즉, 객진번뇌라는 것은 ‘나는 중생이요’라는 생각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느끼는 마음이란 것은 내 밖의 객관세계·상대세계로부터 스스로가 자극을 받아서 일으킨 반응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생각이 귀중한 것으로 알아 자꾸 거기에 매달려 지내니까, 그 마음이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 투쟁이 끝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번뇌망상(煩惱妄想)이라고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번뇌망상인 줄 모르고 옳다고 생각하며 자꾸 쫓아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착한 일도 생각하고, 정의도 생각하는 것 같고, 사회를 위해서 큰 사랑도 베푸는 것 같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착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존경쟁에서 이겨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불교계의 신앙생활을 생각해 봅시다.
불교에서 비진리를 버린다는 것은 중생세계를 버리고 진리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부처되는 것, 즉 성불(成佛)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한마디로 부처되는 종교입니다. 금강경에서 ‘그 마음을 항복받으면’ 부처가 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중생이 아니며 중생 아님도 아니니, 어찌한 까닭이냐? 수보리야, 중생 중생이라 하는 것은 중생 아님을 말하는 것이니, 그 이름이 중생이니라’고 하십니다.
중생이란 말은 비진리적인 존재를 말합니다. 비진리적으로 보이는 그 사람들이 사실은 비진리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이 보셨을 때 우리는 비진리적인 존재가 아니어서, 새삼스럽게 진리를 찾아가야 하는 그런 존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본래부터 부처라는 것입니다.
‘내가 부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나는 중생’이라고 우기는 마음을 항복받기만 하면 그대로 진리생명이 드러나는 것이지, 진리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불교를 믿는 이유는 성불하자는 것이니까, 내가 부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부처가 되겠다고 하는 마음은 나는 지금 중생이라는 것을 우기는 마음입니다. 이런 분별심(分別心)으로는 처음부터 진리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잘났기 때문에 진리생명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나거나 못나거나 관계없이 본래 부처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새삼스럽게 태어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을 부처님생명이라고 합니다. 시간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어서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한생명을 살고 있는 것이 나의 진실생명입니다.
이것을 믿고 거기에 반대되는 일체 모든 생각은 다 항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복한다고 할 때, 항복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종교는 진리 앞에 무조건 항복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이것이 나무(南無)입니다.
진리 앞에 비진리적인 삶 전체를 항복하는 것입니다.
진리란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든지 살아 움직여야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 생명 밖에 진리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나에게는 없는 것이 되어버리므로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리 앞에 항복한다는 말의 의미는 ‘나의 참생명’에 귀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한테 항복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비진리적인 요소들을 나의 참생명에게 항복할 수 있도록 항복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복한 그 자리가 바로 아미타(阿彌陀)입니다.
법우님들이 모두 아시겠지만, 아미타란 뜻 자체가 ‘절대무한’과 같은 의미입니다. 부처는 새삼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비진리적인 것을 모두 항복받은 그 자리에서 저절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것을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무아미타불! 하는 사람은 자꾸 자기를 항복해 나가기 때문에, 내가 잘났다라는 마음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만약 ‘내가 잘나서’ 항복한다고 한다면, 항복이라고 말은 하여도 상대세계에 남아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진리의 세계를 사는 것이 못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마음, 그것이 훌륭한 것이든, 자기를 위한 생각이든 모두 항복해서 본래부터 있는 진리생명을 드러내어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불교신앙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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