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幸福한 항복降伏_(2)
보살(菩薩)이라는 말은 구도자(求道者)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내 밖에 따로 계신 분이 아니라 바로 진실 생명을 찾아가는 우리들 생명의 본래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들 모두가 관자재보살입니다. 법회에서든,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정진을 삶의 중심에 두고 생활하는 것이 우리가 관자재보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내용을 계속 따라가 보면,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行深般若波羅蜜多)’
라는 경구가 이어집니다.
그러면 반야바라밀다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반야(般若)란 부처님께서 깨치신 지혜광명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라밀다는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즉, 부처님의 지혜광명에 의해서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 반야바라밀다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는 뜻은, 부처님의 지혜광명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것을 깊게 체험해 간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지혜광명은 온 우주의 진리 자체를 남김없이 드러낸 광명입니다. 이러한 광명으로 비추어보니까 온 우주는 본래부터 완성되어 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완성되어 있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절대무한의 세계라는 얘깁니다. 즉, 온 우주는 본래부터 절대무한 세계입니다.
우리가 자재를 찾아가는 이유는 생존경쟁의 상대유한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경쟁의 세계에서는 괴롭고, 상대유한세계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을 받으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행복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물질적 조건을 추구해도 상대유한세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상대유한세계를 벗어나 절대자유의 영원한 자재로움을 얻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면 관자재보살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자재보살로 사니까 내 안에서 무한촉광의 광명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에게 새삼스럽게 특별한 능력이 생겨서 자재로워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래부터 내 안에 있는 것인데, 내 스스로 부처님의 지혜광명을 차단해서 바라밀을 감지하지 못하고 지낸 것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온 천지는 이미 바라밀이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치신 지혜의 안목으로 우리들을 보시고는‘기특하구나, 기특하구나! 온 천지, 온 중생들은 본래부터 여래의 지혜덕상을 완벽히 갖추었구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앞에서는 내가 지금 자재를 찾아간다고 했지만, 실은 본래부터 자재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부처님의 지혜광명인 반야로 보니까 온 천지가 본래 절대무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이 세상이 여러 가지 한계가 있고, 대립이 있고, 그래서 남과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 되고, 그러다보니 불안과 공포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이 세상을 부처님께서는 본래부터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족되어 있는 절대무한의 세계로 보시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온천지가 절대무한의 세계이니 남과 투쟁할 것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이나 공포 속에 지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별도의 노력을 할 것도 없이 이미 있는 부처님의 지혜광명에 맡겨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자재로움을 찾아간다는 뜻은, 내가 특별한 어떤 것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부처님의 지혜광명 앞에 내 모든 것을 항복해버린다는 뜻입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부처님의 지혜광명을 어떻게든지 내가 실현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즉, 내 노력으로 반야바라밀을 실현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참선도 하고, 독경도 하고, 염불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들은 감동적일지 몰라도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노력에 의한 결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인연법(因緣法)의 소생(所生)이 되어버립니다. 인연법이란 인연에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라밀이라는 말 자체가 본래부터 절대무한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인연에 의해서 새삼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삼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것은 인연법의 소생입니다.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깨치시고 보니 ‘아, 온천지가 본래부터 바라밀뿐이구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밀을 인과의 법칙 속에 있다는 전제로 수행한다는 것은 크나큰 오류입니다.
이미 온천지는 바라밀의 세계이며, 절대무한의 세계입니다.
이렇게 온천지가 이미 바라밀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분이 바로 부처님이고, 이것을 밝히는 지혜가 부처님의 지혜광명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 앞에 내 노력이나 내 견해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다만 나를 경건하게 항복할 뿐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대중법문] [방송종료 : 11월 셋째주 대중법회 생방송] 11월 17일(일) | 문사수 | 2023.02.12 | 8778 |
주제를 알라는 말의 속뜻 | 문사수 | 2011.08.30 | 27241 |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 문사수 | 2011.08.19 | 26300 |
빛의 주인공 | 문사수 | 2011.08.12 | 24494 |
염불念佛이 곧 성불成佛 | 문사수 | 2011.08.07 | 26842 |
부처님을 모시는 마음으로 산다면 | 문사수 | 2011.07.24 | 24545 |
행복幸福한 항복降伏_(2) | 문사수 | 2011.07.02 | 38720 |
행복幸福한 항복降伏_(1) | 문사수 | 2011.07.02 | 32051 |
나무南無와 자유自由 | 문사수 | 2011.06.22 | 24190 |
‘나-너’ 대립으로는 진정한 행복 못 누려 [무량수경15] | 문사수 | 2011.06.14 | 27270 |
법을 청한다는 것은 | 문사수 | 2011.06.10 | 24427 |
괴로움의 정체 | 문사수 | 2011.06.04 | 27172 |
깨침의 의미, 믿음의 공덕 1 | 문사수 | 2011.05.25 | 27369 |
믿으십시오! | 문사수 | 2011.05.20 | 29149 |
불법을 듣는 자세 | 문사수 | 2011.05.15 | 24335 |
오직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 문사수 | 2011.05.04 | 27431 |
자기 위주의 자비는 독약일 뿐이다 [무량수경14] | 문사수 | 2011.04.30 | 31308 |
불자는 만복의 주인공 | 문사수 | 2011.04.26 | 24202 |
정진으로 생명의 깃발을 올려라 1 | 문사수 | 2011.04.14 | 28007 |
불자의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가? 1 | 문사수 | 2011.04.01 | 26467 |
‘南無’는 범부로 살수 없다는 참 생명 절규 [무량수경13] 2 | 문사수 | 2011.03.28 | 28448 |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