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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만족으로 오신 부처님

문사수 2011.05.04 조회 수 27431 추천 수 0

오직 만족滿足으로 오신 부처님

‘부처님이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철저히 자기 기준이지 부처님은 오신 바도 없고 가신 바도 없습니다. 항상 하시기에 가고 오는 바가 없는데도 우리는 자꾸 오셨다 말하고, 자기의 기준에 안보이면 가셨다고 합니다.
그럼 부처님께서 오셨다고 할 때 어디서 오신 걸까?
부처님 일대기에 보면 부처님께서 스스로 당신의 출생 연기(緣起)에 대해서 고백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상대적인 입장 너머 상대적인 모든 입장을 말미암게 한 자리, 그 자리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나는 이 사바세계에 오기 전에 도솔천(兜率天)에서 호명보살(護明菩薩)로 있었다.’
호명(護明)이란 빛을 수호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순간이나 어느 입장에서도 어둠이나 상대적인 것을 앞세우지 않고, 오로지 참된 생명의 가치로부터 출발하겠다는 것이 호명보살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분별 즉 상대적인 입장에 의해서 살아가는데, 부처님은
‘나는 본래 자리에서 왔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 놀러 왔다.’
는 표현을 이차적(二次的)으로 하십니다.
그렇다면 본래 자리란 무엇일까?
부처님께서는 도솔천(兜率天)에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삶의 흐름 속에서 언제나 만족하고 산다.’는 것이 도솔천의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이 만족한 상황으로부터 오셨다는 말이 됩니다. 이 얘기는 어떤 조건이 닥쳐도, 어떤 상대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항상 만족한다는 주체적(主體的)인 입장입니다. 일종의 생명선언(生命宣言)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조건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을 하듯이,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의 정성과 농군들의 정성 어린 노고를 생각한다면 간장 한 종지 놓고서도 참으로 맛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진수성찬을 안 차려줘서 만족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불만이 상주(常主)합니다. 이런 면에서 부처님께서 도솔천에서 오셨다는 뜻은 참으로 귀한 소식입니다.
그럼 부처님께서는 왜 모든 것이 만족한 도솔천에서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셨을까? 사바세계(娑婆世界)란, ‘참지 않으면 도저히 괴로워 살 수 없는 세계’라는 뜻을 갖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맞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 때문에 괴로워할까?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자기 자신 때문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기준과 측정에 안 맞아서 괴로운데, 이 괴로움을 참을 수밖에 없어서 사바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세계에 오셨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모든 것에 만족하시는 분이 이 모순으로 가득한 세계에 왔다고 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만족한 분에게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오직 만족뿐입니다. 우리가 얘기하는 괴로움의 현장이라는 곳이 부처님이 가시면 불국토(佛國土)가 되고 극락(極樂)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극락은 가야 될 곳이 아니라, 삶의 현장 즉 확인해야 될 생명의 출발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가 산다’는 참다운 의미는, ‘본래 부처님생명으로 태어났음을 잊지 않고, 오늘도 부처님생명으로 살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석가모니부처님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인도에서 태어나신 날이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물론 이 말을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닙니다.
육신으로 태어난 줄 알았던 싯다르타라는 한 인물이 어느 날[성도일(成道日)] 스스로가 부처님생명임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부처님이라 이릅니다. 부처님과 중생(衆生)을 나누는 이분법은 부처님 가르침 어디에도 없습니다. 중생이 부처님으로 되는 법은 없습니다. 본래 부처님이 부처님 노릇할 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본래 부처님입니다’라고 하면, 다들 ‘무슨 소리? 부처님은 특별한 분인데 어찌 내가 감히… 나는 머리도 좋지 않고 나이도 많고 건강도 안 좋은데…’하며 자기를 측정하는 이런 모습을 불가에서는 중생이라고 이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중생은 실체(實體)가 아니라 상태(狀態)것입니다. 상태는 언제든지 유동성을 갖기 마련입니다.
이런 면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는 의미는 ‘부처님생명으로 왔다’라는 당연한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본래의 참생명은 만족으로부터 와서 만족을 누리게 돼 있는 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오셨다는 얘기는 본래 부처가 부처로서 왔기 때문에 항상 만족을 잊지 말자는 뜻입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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