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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리한 법당

문사수 2010.04.08 조회 수 24768 추천 수 0
우리가 자리한 법당

 
수행자인 우리의 몸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법당(法堂)’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저 낯익은 하나의 건축물(建築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법당을 이처럼 단순히 건축물에 한정짓는다면, 법당은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만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법당은 어떤 특정한 공간으로만 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 법당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아니 계신 곳 없이 어느 곳이든 다 계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을 모시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정해진 곳이 따로 있을 수 없기에, 법당 아닌 곳은 본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자(佛子)가 가는 곳은 어디든 법당이며, 처한 상황마다 법회의 현장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이 법당에 자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법당은 육신을 뛰어넘는 자리입니다. 법당의 본질은 참생명을 담는 그릇인 것입니다.
이처럼 새삼스럽게 법당의 의미를 말씀드리는 이유를 법우는 이미 짐작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법당이라는 곳이 눈에 보이는 어떤 특정의 공간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면 법당은 참생명을 담는 곳일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익숙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보여지고 만져지는 현상적 수준에서 부처님을 찾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부처님을 모시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이고 상대적인 수준에 머무는 한 결코 부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아니 계신 곳 없는 부처님이라는 말은 한낱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맙니다.
만나는 인연마다 처음엔 가슴 뛰지 않는 인연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식어버린 가슴에는 더 이상의 설레임은 없습니다. 모든 인연이 그렇습니다. 부부 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친구 간에도 그저 뜨뜻미지근하고 데면데면할 뿐입니다.
‘내 식’이라고 하는 익숙함을 걷어내기 전에는 ‘나의 무엇’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모실 수많은 기회를 번번이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찰(古刹)에 가보면 ‘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 이라고 쓰여진 주련(柱聯)을 볼 수 있습니다. 천백억화신으로 나투시는 석가모니부처님이라는 의미는 부처님 아닌 존재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맞이하는 인연은 모두 부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러한 의미를 안다면, 내 옆의 부모, 형제, 가족, 친구를 제쳐두고 따로 부처님을 찾아 헤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 앞에 오신 부처님을 부처님으로 모시지 못하고, 끝내 나의 부모, 나의 형제, 나의 친구로만 규정하려 든다면, 이는 결국 누구의 손해이겠습니까?
다가오는 인연에 대하여 ‘나의 무엇’을 내세우지 않고 생명 그 자체로 맞아들일 때야말로 진정으로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며, 이러한 자리가 바로 진정한 법당(法堂)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익숙한 사이일수록 법당에서 새롭게 만나야 합니다. 부모도,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친구도 법당에서 부처님생명으로 만나지 않은 한, 아직은 만난 바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법우께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라 오히려 생뚱맞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제야 묻습니다.
“법우는 왜 법당에 나오십니까?”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면, 좀 달리 묻겠습니다.
“처음 법당에 나오실 때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법당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법우는 혹여 마음속에 이러한 물음을 품고 있지 않았습니까?
‘나는 누구지?’
‘왜 나는 살지?’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법당에 처음 나왔을 때 설사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 없이 그냥 나왔던 법우라 할지라도 지금껏 계속 법당에 나오고 있다면, 지금 법우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물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며,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법당에 나오고 계실 것입니다.
법당에 오는 법우가 이러한 물음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 법당은 법당으로서 제대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친목을 다지기위하여 회합하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원적 물음이 살아있는 곳이야말로 ‘나’에게 익숙한 ‘나의 무엇’으로서의 만남이 끝장나는 곳이며, 진정 법당일 수 있는 곳입니다.
법당은 참생명을 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법당은 생명의 율동이 너울거리는 곳이며, 결코 어느 특정한 공간에 머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법당이 늘 열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법당에는 항상 수많은 생명이 참여하고 교류하기에 법회(法會)라는 장엄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법당을 연다고 할 때, 이것은 내 힘으로가 아닙니다. ‘내가 일구어 온 법당’이라는 말은 애당초 어림없는 말입니다. 법당은 본래부터 무소유성(無所有性)을 능사로 하기 때문입니다.
무소유(無所有)의 의미는 단지 가진 것이 없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있는[有] 바[所]가 없다[無]는 것입니다.
이처럼 법당은 무소유성이기에 결코 특정한 공간에 한정지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익숙함을 용납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법당을 연다는 것은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참생명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여는 것이 중요하면, 한편으로 닫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난 법회의 자취가 생명의 법칙에 따라 지혜롭게 법당을 열어 온 시간이라면, 역설적으로 생명의 법칙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닫았던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교류에는 한없이 개방하여 살려짐에 맡기면서도, 아닌 것에는 분명하게 닫을 줄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생명의 법칙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분명 단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당은 부처님을 모시는 곳입니다. 따라서 적당주의가 법당에 발붙일 여지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닌 것에 대해서 단호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당을 연다는 것은 때에 따라서 단호하게 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법당은 고정된 상태에 머물기를 거부하기에, 곳곳에서 역동적인 모습으로 펼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네 가지 이유로 ‘개시오입(開示悟入)’을 말씀하셨습니다. 법당은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기에 법당의 존재 이유는 이와 다를 수 없습니다.
참생명을 담은 법당을 열고[開], 그곳에서 무한하게 너울거리는 생명의 율동을 보여주며[示],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인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양보하지 않고[悟], 스스로의 참된 생명가치를 실현하며 참생명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入]입니다.
본래부터 아니 계신 곳 없는 부처님이기에 법당 아닌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불자(佛子)가 가는 곳은 모두 개시오입의 현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리한 법당에는 염불이 끊이지 않습니다. 본래부터 개시오입의 현장을 살고 있다는 것과 염불로써 이미 구제되었다는 것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염불해서 구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염불로써 이미 구제된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할 일은 감사와 찬탄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당에서는 언제나 감사와 찬탄이 메아리칩니다.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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