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염불인의 바른생활은~

문사수 2009.11.21 조회 수 25348 추천 수 0



우리는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참생명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극락세계로 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극락세계에 간다고 하면 흔히들 죽어서 간다고 얘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죽는다는 의미는 이 몸뚱이를 나로 알았던 중생생명, 그 중생으로서의 내가 죽어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으로서의 나는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중생으로서의 내가 살아 있으면서 극락세계에 간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는 것은, 중생으로서의 나는 크게 죽어버리고, 부처생명으로서의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 [大死一番 大活自然] 을 말합니다.

이렇게 소생하고 나면 이 세상사람들 모두가 다 ‘나’ 입니다.
이것을 정토법문에서는 ‘내 환경이라는 것이 바로 내 생명내용 [身土不二]’ 이라고 합니다.
내 밖에 있는 중생이 바로 나의 생명내용이고, 내가 살고 있는 환경도 모두 나의 생명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내 환경을 위해서 살고,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동포형제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동포형제를 다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그분들이 영원생명에서 살도록 이끌어주는 것. 그래서 우리들의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어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바른 생활방법입니다.

이렇게 내 생명의 본적지를 극락세계로 옮긴 사람이 하는 활동은 전부 보현행원(普賢行願)입니다. 보현행원이란 ‘나를 잊어버리고 일체 모든 중생을 위해서만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잊어버리고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직도 몸뚱이가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만약 몸뚱이가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이 남을 돕는 착한 일을 많이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가를 바라는 활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만큼 착한 일을 많이 했으니 그 결과가 나에게 돌아오겠지’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나에게 복이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미타생명을 살고 있는 사람의 태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보현행원을 닦는 사람이나 이 세상을 착하게 살겠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내 생명의 근거지를 극락세계로 바꾸어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명의 근거지를 바꿔놓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의 신앙입니다.

무량수경을 보면 누구든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다만 열 번만이라도 부르는 사람은 반드시 죽을 때 극락에 간다고 나옵니다.
여기에서 나무아미타불 열 번이라고 한 것은 꼭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많이 불러도 좋고 몇 번 불러도 좋습니다. 다만 이것은 입으로만 부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귀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귀의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내 생명의 근거지는 극락이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란 '중생생명을 내버릴 때'를 말하는 것으로 '내가 중생생명이다'는 생각을 내버릴 때 극락에 왕생하는 것입니다.

법우님들은 어제 오늘 나무아미타불 부른 것만 해도 엄청나니까, 이미 극락세계로 이민수속이 다 끝났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를 위해서 살 ‘나’는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공부하였으니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나면 얼른 나무아미타불 하십시오.
내 걱정이 되어도 나무아미타불, 남이 잘사는 것을 보고 시기질투가 일어나도 또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언제나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세상사람 모두를 나의 생명내용이라고 보아, 그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살도록 그렇게 노력해야 참다운 불자(佛子)인 것입니다.

법우님들 중에서 혹 가게를 운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럴 때 부자가 되려고 가게를 한다고 하면 맞지 않습니다. 내가 가게를 운영하거나 직장에 나가는 것은 남들을 위해서 심부름하는 입장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남처럼 보이는 그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나의 생명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사람 전부가 건강해져야 하고, 이 세상사람들이 전부 풍요로워져야 하고, 이 세상사람들이 전부 기쁨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모두가 다 부처가 되어야하는데 법우님들은 그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즉, 나는 극락세계로부터 출장 온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에 출장을 온 목적이 사바세계의 사람들 전부 다 행복하게 해주어 결국에는 부처가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약국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기도하기를,
 “값싸고 좋은 약품을 풍부히 공급해서 우리 고장 사람들의 건강에 큰 도움주기를 발원합니다”
해야 합니다. 물론 다른 장사를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좋은 물건을 값싸고 풍부하게 공급해서 이 고장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편리하게 되어지기를 발원합니다” 하는 것이지요.
직장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 나가면서 월급 더 받기를, 직위가 더 올라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빼앗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빼앗고자 하는 마음은 이 몸뚱이가 실제로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생깁니다. 몸뚱이는 내 생명의 도구입니다.
몸뚱이라는 도구로 이 세상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고, 또 성불할 수 있는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심부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에 나감으로써 직장과 경제발전에 공헌한다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때든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들은 남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입장, 남들을 위해서 심부름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정말 고맙기 그지없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법문은 번뇌가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법문이므로 점점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게 됩니다.
그러니 번뇌가 일어나면 얼른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만 하는 것이지, ‘어째 나한테는 번뇌망상이 더 많을까?’ 하는 생각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 것이죠.
만약 나에게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끊겠다고 하면 그 많은 번뇌에 번뇌 하나를 더하는 결과밖에는 안됩니다. 팔만사천 가지 번뇌라고 하는데, 번뇌를 없앤다고 하면 팔만사천하나가 되어서 부르기도 힘들게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번뇌망상이 일어나거든 얼른 ‘부처님의 자비광명인 나무아미타불 법문은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니, 참 고맙구나’ 하면서 나무아미타불 부르세요.

마지막으로 일화 하나 들려드리면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법우님들 잘 생각해보십시오.
예전에 어떤 사람이 큰스님께 물었습니다.
 “아이구, 스님. 염불을 아무리 해도 자꾸 번뇌망상이 생깁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아무리 불러도 번뇌망상이 점점 더 끓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세계에 간다고 했으니까 병이 나도 조금도 근심하면 안되고 ‘내가 죽으면 더 좋은데 가겠구나’ 해야될텐데 그렇지 못하고, 조금만 아파도 ‘아이구 죽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납니다.
그러니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랬더니 스님께서 손을 덥석 잡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답니다.
 “아이구, 너도 그러냐? 나도 그런데.”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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