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는 기독교 생활을 열심히 하였는데, 어느 날 오빠가 갑자기 아프게 되고 - 사실 갑자기라기보다 제가 쉽게 헤아릴 수는 없지만 오랜 원인들로 인해 결과가 생겼다고 봅니다 - 종교에 깊이 빠져들기가 두려워 외면해 버렸습니다. 결국 제 맘에 들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는 결혼하면서 절에 다니는 시댁을 따라 불교 쪽으로 기울어 갔습니다만, 저에게 유리한 면만을 받아들였을 뿐 여전히 제 삶과는 유리된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훌륭한 삶을 살다가신 분에 불과하며, 나에게 더 큰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는 사람은 가족이나 동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편한 대로 존경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약 2년 전만 하더라도 <부처님과 저>는 따로따로였습니다.
그런데 정해 법사님으로부터 부처님의 일생[특히 부처님의 정직성]을 다시 배우며, 문사수법회를 통해서 나의 삶에 비추어가도록 배우고 나니 뒤바뀐 생각들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 상대적인 사고(思考)로 인해 피곤하고 지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넘어뜨려야 할 상대가 없는 세계는 정말로 극락입니다. 모든 것이 내가 선택한 결과라는 법사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생활하는 지금은 원망할 상대가 아무도 없습니다. 마음에 담아둘 상처도 없습니다.
바로 ‘ 나무아미타불 ’ 부르면 지옥이 아니라 극락에 있습니다.
집안에서도 훨씬 자유로운 저를 봅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해서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고 대했을 때와는 달리, 과거는 모두 상관하지 않고 부처님생명으로 인정하고 보면 동시에 무한히 넓은 세계가 펼쳐집니다.
어렵기만 하던 부처님 법을 법사님을 통해 바로 알게 되니 이렇게 쉬울 수가 없습니다. 유한적인 사고를 벗어나니 두려움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지진, 전쟁, 기아, 동성애, 종말론, 환경 오염, 테러, 핵무기, 치매 등을 염려하였기에 걱정이 많고 염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숭고한 걱정들이 실제 제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도 있습니다만 부처님의 인과법(因果法)으로 다 들어옴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걱정하며 보낼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탐착(貪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모순을 바로잡아 가자고 서원(誓願)했습니다.
1년 넘는 기간에 무엇이 변했나 돌아보니 바로 제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요즘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선입견이 먼저 들 때는 부자유했습니다. 여자라는 틀, 나이, 출신 등 모든 것이 걸림돌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도덕적 수준에서 맴돌았기에 매번 제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남녀노소, 가족, 친구, 상사, 동료 등, 인연 지은 모든 이를 부처님생명으로 보니 제가 만든 괴로움이 없어졌습니다. 아니, 생기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이 정진하지 않으면 다시 중생심(衆生心)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낮에 직장 생활에서나 잠자리에 들기 전후에 바로 ‘ 나무아미타불’ 합니다.
사실 충분히 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법사님 말씀처럼 모양일지언정 법회에서 특별 정진을 할 때 되도록 같이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일 쉽게 정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진의 마음을 놓치면 저는 다시 스스로를 속이고 타협하는 중생이 되는 것을 봅니다.
요즘은 주위 사람들에게 저의 삶이 어떻게 밝게 변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데도 그들이 공감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제 식의 판단으로 대화의 대상을 가리거나 종교라는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써 대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렇게 하니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그저 진실된 마음을 전달한다는 편안함이 자리합니다. 이야기 도중 막히는 것도 훨씬 덜합니다. 또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끔은 내가 흥분하고 있구나, 마음이 급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어디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가다듬어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문사수에서 부처님 법을 바르게 배울 수 있겠다고 확신한 것은 참된 진리를 바로 일러주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진리란 종교라는 이름이나 모습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본래 완전한 생명이라는 밝은 파장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부처님으로부터 이어져 문사수법회에서 받는 은혜를 그대로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모두 함께 극락에 있는 길만이 그 동안의 괴로움이 괴로움이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여 제 안에서 모순된 생각의 틀과 상대적인 생각을 소멸하고 극락만 남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 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되지, 뭐가 아쉬워서 저러나 하고 이상한 눈초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산 없이 다 같이 잘살자고 이야기하는 것임을 듣는 이가 알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순간순간 싫은 생각, 나태한 생각이 듭니다. 맞다, 틀리다, 있다, 없다는 변견(邊見)으로 헤맬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 나무아미타불’ 하겠습니다. 참생명을 외칠 때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집안의 문제도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있을 어떠한 일도 감당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실제로 가능하게 함을 경험합니다.
이제는 뒤로 물러서거나 남의 책임으로 떠넘기지 않겠습니다. 시간만 흐르고 문제가 문제로 남아있는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 생활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오늘 발표하도록 배려해주신 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자칫 바쁘게 살고 행동이 분주하다가 정작 내용을 잃지 않도록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처님의 지혜, 스님과 법사님들의 지혜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여 그 힘으로 헤쳐나가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부처님 법 안에서 너와 내가 모두 잘살자는 욕심으로 바꾸어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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