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내가 살려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었던 시아버님의 49재.
아버님께서 운명하기 몇 시간 전, 함께 경전 공부하던 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병원에 입원중인 아버님이 염려되어 두려움에 떨며 보낸 몇 시간이 나에겐 죽음의 공포였습니다.
같은 날 나와 관련된 두 사람의 죽음. 그것은 연로하신 친정부모님을 떠오르게 했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에 갇히게 하는 것이었지요. 나이들면 다 죽는다는 사실은 남의 얘기였고 나와는 별개였는데, 눈앞에 벌어지고 보니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현실에 눈감아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게 다가온 상황은 슬픔을 느낄 여유도 없이 영안실에서 문상객을 접대해야 하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사후처리였습니다.
장례식 당일의 날씨는 한 사람의 일생이 바로 이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변화무쌍했지요. 흩뿌리는 빗줄기,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쏟아지는 햇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단신 월남한 아버님의 자손들은 그런 자연의 조화속에서, 고향이 북녘 땅인 월남민들의 공동묘지인 경묘 공원을 향해 가는 동안 하늘이 맑아지길 고대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은 맑게 개었습니다. 마치 자연이 우리 가족을 위해 배려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명성법사님의 염불독경 속에서 아버님 시신 위에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뿌리는 흙 부스러기. 가족 모두 갑작스런 아버님의 죽음 앞에 서러워하고 막막해 하는 모습과, 왜 할아버지를 차가운 땅속에 묻는지 궁금해하는 동호에게 돌아가셔서 다시는 볼 수 없다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사후(死後)에도 고향을 그리워할 아버님의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할아버지 영전을 안은 동호와 자기도 한 몫 하겠다는 4살배기 연정을 달래며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님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법공양을 올리며 울먹이던 남편.
그렇게 맞은 아버님의 죽음이 부처님생명으로 다가온 것은 새로운 세상과의 또 다른 만남이었습니다. 다시는 아버님을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님의 49재를 지내는 동안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49재가 영가의 이름으로 세상에 은혜를 갚는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게 되니, 죽음이 단절이 아닌 세상과의 연결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어나지도 멸하지도 않는 부처생명임을 진정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이어진 일곱 번의 재.
그동안 어머님께서는 슬픔에 젖어 흐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고, 진정으로 아버님의 영가가 극락왕생하길 발원하며, 기도 정진하셨습니다. 말이 필요없이 온몸으로 보여주시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저 또한 죽음속에서 삶의 생동함을 보았습니다.
주말이면 재 음식공양을 준비해 준 법우님들의 정성. 같이 매 재마다 동참하며 법공양을 함께 한 법우님들을 보며, 나만을 고집하고 내 중심으로 주변을 헤아려보던 시각이 점점 변하여 갔습니다. 내가 먼저라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미혹한 생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만의 감정이 전부이고 소중하다고 하는 생각과, 대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앞서는 그런 나를, 세상은 나의 느낌과 상관없이 살려주고 있었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끄달리던 저는 49일 동안 정진하면서 모두가 서로 살려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말로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죽음을 통해 남겨진 사람들에게 삶 속에서 자신의 전부를 살라는 당부를 하신 것입니다. 비록 생전의 아버님과 많은 대화를 하지는 못했었지만, 아버님께서는 돌아가신 후 부처생명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의 모습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루하루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자연의 변화를 봅니다.
아버님의 빈자리를 채우는 가족들의 도닥거리는 모습도 봅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아버님의 커다란 음성이 없어서 허전해하고, 그래서 더욱 껴안아 주려는 따뜻한 배려도 보입니다. 장손을 아끼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동진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도 있었습니다. 그 이어짐 속에 아버님의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받습니다.
영가의 이름으로 세상에 은혜를 갚는 것이 49재라고 했습니다. 그 의미를 잊지 않으려 애쓰며 49재를 올리는 동안, 오히려 남아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은혜 속에서 살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제 모든 것이 표현되고 살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일상속에서 빚어지는 만남. 그 만남에서 바로 생명의 교류가 있고 부딪힘이 있습니다. 한순간의 게으름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염불정진 속에서만 삶이 발현되어질 뿐.
있는 그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 부처생명은 항상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법우님들이 보여준 정성은 감사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위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나라는 존재가 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모든 생명속에 용해되어 나라는 존재조차 생각할 필요없이 오로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존재만이 남았습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생명으로 살아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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