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문사수(聞思修)로 해탈한다

문사수 2017.06.27 조회 수 8767 추천 수 0

부처님생명의 공덕은 실로 무량해서 상대적 존재인 ‘나’의 입장에서는 감히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이 공덕의 세계 안에서 살려지고 있는 은혜에 오직 감사하고 찬탄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세계를 ‘나’라고 하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측정하려고 하면, 어느새 나는 측정의 주체가 아닌, 측정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측정하면 측정된다
전 UN총장 반기문씨가 인터뷰 중에 재미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1970년에 외무고시를 합격하고 외무부에 들어가 첫월급을 받았는데, 당시 월급이 이만 원이었다고 해요. 첫월급을 받자마자 봉투째 들고 외무부 청사 가까이에 있는 조계사 법당에 갔는데, 대략 천 원 정도 보시할 생각이었답니다.
그런데 보시금을 내려고 봉투를 열어보니 오천 원짜리밖에 없더래요. 당장에 오천 원짜리를 천 원짜리로 바꿀 수가 없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 가서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고...’ 고민하다가 어찌해볼 방도가 없어서 결국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냈답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 자신의 첫월급의 1/4을 부처님께 보시한 거죠.
 
그런데 이 분의 말씀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 당시 돈을 낼 때는 너무 부담스럽고 아깝기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의 보시의 공덕으로 오늘날 제가 이렇게 잘된 것 같습니다.” 갈등하면서 보시하기는 했지만, 그때의 경험은 그에게 있어 진정한 보시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었던 감사한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화를 통해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보시금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에요. 천원이냐 오천 원이냐를 따지며 ‘측정하는 나’는, 오히려 ‘측정의 대상’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자신에게 다가온 보시의 인연에 수순(隨順)했기에 보시의 공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인연이 다 그러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인연은 무엇으로도 측정할 수가 없어요. 모든 인연의 본질은 부처님생명과 부처님생명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인연이 왔을 때 99%의 인연이란 없는 겁니다. 단 1%라도 나의 측정치는 개입될 여지가 없는 100%의 인연일 뿐이에요.
부모자식 간의 인연, 부부의 인연, 동료의 인연 등 인연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채롭지만, 단순히 부모, 부부, 동료가 아니라 그 모습으로 오신 부처님을 만나는 겁니다. 따라서 나에게 다가오는 인연은 모두 부처님과의 인연, 즉 불연(佛緣)뿐이기에, 그것들에 대해 측정하고 있을 새가 없습니다. 매순간 오직 완전한 생명과 완전한 생명의 만남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연의 주인공
이처럼 모든 인연이 부처님과 부처님의 만남임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걸림 없는 인연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습니다.
칠십 넘은 나이에 비로소 세상에 이름을 떨쳤던 강태공이 바로 그러했어요. 그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지혜가 뛰어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데, 칠십이 되도록 무전취식하고 능력도 없었다고 해요. 일생동안 직업도, 논밭뙈기 하나도, 벼슬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 강태공의 부인은 무능한 남편이 견딜 수 없어서 참다못해 가출을 했어요.
그러던 강태공이 칠십 넘은 나이에 재상이 되어서 중국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된 겁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봤을 때도 칠십의 나이는 어떤 일을 도모하기에 이른 나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자신의 생명가치를 세상의 잣대로 한정 짓지 않고, 절대적으로 믿고 긍정하였기에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엄청난 능력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자신이 믿고 동의한 만큼 펼쳐지는 것이 삶입니다.

얼마 전에 한 법우에게 재미난 고백을 들었습니다. 이 법우가 다리를 다쳐서 치료받느라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했는데, 그 법우는 지금껏 자기의 혈액형을 O형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몇 차례를 다시 검사 해봐도 A형으로 나왔답니다.
항간에 혈액형별 성격분류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요. 지금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법우도 그런 사람이었어요.
혈액형 분류에서 O형은 외향적 성격이고 A형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고 합니다. 20대 때부터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주저함이나 낯가림 없이, “저는 O형이라서 그래요. O형은 이렇게 살아요.”라고 그래왔는데, 본인 혈액형이 A형으로 밝혀진 날부터 A형의 성격특성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답니다. 갑자기 내성적이고 소극적으로 됐다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가 설정해놓고 측정한 것에 거꾸로 측정 당하게 된다’는 법문의 의미를 잘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리셋 되지 않는 삶
여태 O형으로 살아왔던 사람은 누구이고, 갑자기 A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A형이면 어떻고 O형이면 어떻습니까만은, 자기 생명가치를 O형에 동의하면 O형으로 사는 것이고, A형에 동의하면 A형으로 사는 겁니다. 결국 상대적인 세계는 남이 만드는 게 아니라, 상대적인 ‘나’가 만드는 것이죠.
그러면 운명의 주인공은 누굽니까? 바로 ‘나’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주팔자나 혈액형, 또는 남녀의 성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을 한번 규정해놓으면 규정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서 원래 그렇다고 주장을 합니다.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생명가치를 매순간마다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염불이에요. 염불은 ‘나의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라는 진리를 그때마다 놓치지 않고 새롭게 들으며 깨닫는 것입니다. 5분전에 한 염불을 지금 들을 수는 없으며, 5분후에 할 염불도 지금 미리 할 수가 없습니다. 해서 염불은 반복된 적이 없이 항상 지금 처음 듣는 것입니다.
지나간 것은 이미 완료되었기에 역전할 수도, 되풀이할 수도, 리셋 할 수도 없습니다. 컴퓨터는 리셋이 되지만, 생명은 리셋이 되지 않습니다. 생명 자체에서 보면 현상은 잡을 이유도, 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끝났으며, 그때마다 새로운 생명입니다. 그때마다 사는 인생입니다.

참으로 듣는 것(聞)은,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그때마다’ 깨닫는 것입니다. '나’를 앞세우면 들을 수가 없고, 남과 비교하여 끝없이 쫓기게 됩니다. '나’는 세상과 관계 짓기 위한 것일 뿐,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될 수 있고 어떤 삶도 살 수 있으니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해탈의 길
이와 같이 염불이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자신의 참 생명가치를 깨달아 무한성장의 길을 가게 합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의 무한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듣고(聞), 생각하여(思), 수정하는(修) 문사수의 시작과 끝입니다.
문사수(聞思修)의 길을 따라 그때마다 법문 들으며, 나의 참생명의 진실을 알면 현상에 끄달렸던 내가 그것에서 벗어납니다. ‘나’라는 것에 묶여있던 내가, 묶여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미 풀어져 있게 됩니다.
그것이 해탈(解脫)입니다.

삶은 일호지간(一呼之間)입니다.
숨 한번 들이켰다가 숨 한번 내쉬는 사이가 일생이지, 몇 십 년의 세월이 아닙니다. 찰나생 찰나멸하는 순간마다 부처님생명으로 사니 나는 영원한 삶의 주인공인 겁니다.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후회할 시간도 없고 걱정할 여지도 없습니다. 호호탕탕하게 나아가기만 하는, 성장하는 삶의 주인공입니다.
 이것은 나무아미타불 일구(一句)속에 있는 것이니, 우리는 매일매일 문사수의 길을 따라 해탈문에 들어섭니다. 끊임없는 염불로 살아가니 그 어떤 걱정이나 후회 없이, 어디엘 가도 떳떳한 부처님생명입니다.
만나는 모든 인연들마다 이러한 법문을 듣고, 그분들도 또한 문사수 길을 따라서 해탈문에 항상 드시길 축원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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