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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베풀고 볼 일이다

문사수 2016.12.30 조회 수 10448 추천 수 0

“받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뭘 줘?”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대체 감사(感謝)가 뭔지 모르기 때문이거나, 온통 감사로 휩싸여 살아왔으면서도 그것을 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사는 순간마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을 읽거나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말입니다.

감사(感謝)란 말을 돌이켜봅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느끼고 있는 만큼 되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받은 대로 되돌려줍니다. 무엇을 향해서? 언제나 멈추지 않는 베풂의 주인공인 세상이 바로 목표입니다.
이와 같이 감사란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세상에 그대로 토해내되,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되는 생명활동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살아가면서 할까 말까 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사항입니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난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은 무한히 주고 있는데, 스스로 받은 게 없다면 가난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물질적인 게 많으면 과연 부자(富者)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항상 가난하게 살면서 그것을 벌충하기 위해 양적(量的)인 추구를 능사로 하는 한, 결코 끝없는 부족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설령 지구만한 금덩이를 갖는다고 해도, 더 갖으려는 마음이 그치지 않기에 언제까지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베푸는 마음을 앞세우는 사람이 부자(富者)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속 베풀려면 계속 공급받아야 할 텐데, 그런 공급(供給)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베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자신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인정(認定)하는 만큼일 뿐입니다.
각자마다 폭과 깊이가 다르기에, 스스로 택한 만큼 인생의 내용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오직 부처로 살라고 하십니다.
부처가 아닌 사람에게 새삼 부처가 되라는 억지가 아닙니다. 부처는 본래부터 무한한 능력의 주인공이기에, 그대로 살면 그만이라고 하십니다.
결코 부족함을 보충하거나 연장함으로써, 새삼 무한성(無限性)이 보장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물질화된 대상으로 규정하며 ‘나는 가진 게 없습니다’ ‘자식 복(福)이 없습니다’ ‘학력이 부족합니다’ ‘배경이 별 볼일 없습니다’ 하는 식으로 살기를 작정한 사람이 있다면, 천(千) 부처 만(萬) 부처가 나타나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인정한 틀 속에서 웃고 울고 지낼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생명가치에 걸맞게 살아갈 때 사람답다고 합니다.
자신이 택하였기에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모든 상황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자식이 못난 짓을 하면 부모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행여 방관으로 일관하면서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를 때까지 쳐다보기만 한다면, 그런 사람은 부모의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매를 들거나 말로 꾸짖어 그 모순을 자각(自覺)하도록 인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비록 자식의 처지로서야 아픈 체벌이나 기존 사고방식의 포기 등 싫고 짜증나는 과정을 겪겠지만, 그런 어려움이야말로 오히려 성장(成長)의 계기가 될 수 있기에 그래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지난날의 고달팠던 일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의미 없이 겪은 적은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지금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은 상당히 의외에 가깝습니다. 싫은 사람을 사귀다 보니 좋은 사람으로 자리한 기쁨이나, 싫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던 보람을 느끼던 때가 아닐까요?
알고 보면 처음부터 즐거웠던 일이나 좋은 사람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만남의 끈이 이어지면서, 어느 한 매듭을 고정시켜 확인할 따름입니다.

허나 일생동안 고정된 모습이나 상태만을 부여잡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으며 못난 생각에 사로잡혔다가도, 생각 한번 돌이켜 자신을 수정(修正)함으로써 역전의 발판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한 과정(過程)을 통해서 성장하려는 우리 참생명의 절박한 요구에 따라 벌어지는 당연한 귀결(歸結)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 자신이 자신답기 위해서 온갖 난관(難關)에 마주하게 합니다. 스스로를 말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으로부터 다가오는 무한한 베풂에 자신을 개방시킵니다.
고정된 상태로 머무는 한, 세상의 베풂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그렇습니다. 그것을 어려움으로 부르든, 역경(逆境)으로 부르든 아니면 위기(危機)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미처 돌아보지 않고 있던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낼 계기일 따름입니다.

앞에서 베푸는 마음을 앞세우는 사람이 부자이기에, 먼저 베푸는 사람은 다만 부자로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스스로를 돌아봄에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안타까워 할 새가 없습니다. 부족감(不足感)은 그 부분을 고정시킨 데 말미암습니다.

그러니 이제 선택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한한 공급에 따른 무한한 베풂은 결코 그치지 않기에, 그렇다면 먼저 베풀고 볼 일 아니겠습니까?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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