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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 그 창조의 순간

문사수 2016.10.13 조회 수 10498 추천 수 0
고생 안하는 인생
중국 송(宋)나라에 황타철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직업이 대장장이었어요. 이 사람은 집안이 아주 가난했고 살기가 몹시 어려웠답니다. 항상 ‘남들은 다들 잘 사는데 왜 나는 이렇게 못 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대장간 앞을 지나가더래요. 그래서 그 스님을 불러 모셔서 차를 한 잔 대접하면서 이야기를 했답니다.
“스님, 저는 왜 평생 쇠나 두들기고 살아야 합니까? 쇠도 보통 쇠가 아니라 빨갛게 달군 쇠를 두들기려니 더워서 못 견디겠습니다. 힘도 많이 들고요. 왜 이렇게 고생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하면 고생 안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스님은 “그럼 잘됐네! 망치로 쇠를 두들길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씩 부르게.”하셨습니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황타철은 일을 하면서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불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부른지 얼마 지난 다음에 아미타부처님이 오셔서
“너는 염불을 열심히 했으니까, 오늘 저녁에 아주 영광스럽게 극락에 왕생할 것이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런 예언을 받고 극락에 왕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염불은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여러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속으로 하는 것이 좋겠죠. 아무튼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때만 틀림없이 우리 인생이 플러스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 않을 때는 마이너스 쪽으로 떠내려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염불은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또 한 사람은 소를 잡던 백정이었습니다. 소를 잡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소를 아주 많이 잡았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몸이 약해져서 ‘오늘은 내가 죽게 되나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그 사람 손에 죽은 소들이 모여 들어서 “네, 이놈! 네가 힘 좋을 적에 나를 죽였지? 이젠 내가 너를 죽이겠다.” 이러면서 한꺼번에 몰려들더랍니다. 이 사람은 더럭 겁이 났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요.
그런데 그때 마침 그 사람의 부인은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잘 부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을 불렀어요. “소들이 이렇게 달려들어서 나를 잡아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나를 좀 살려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부인은 “걱정 마시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세요” 그랬답니다. 아주 지혜로운 선지식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얼른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더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자마자 소들이 전부 다 없어져 버렸답니다.

소가 정말 나타난 것이 아니죠? 백정 노릇하면서 소를 죽일 때마다 자기 마음속에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 기록이 한꺼번에 드러나서, ‘너는 그렇게 많은 생명을 죽였으니까 나쁜 곳에 가서 날 수밖에 없다’는 선언을 스스로 해버린 거죠.

차별 없는 염불의 공덕
그러나 말할 수 없이 죄를 많이 진 사람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염불의 공덕에 대해서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착한 사람도 염불을 하면 극락에 가는데, 하물며 악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말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착한 사람이 염불하면 당연히 극락 가겠죠? 여러분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은 거꾸로 입니다. 착한 사람도 염불을 하면 극락에 가거든, 하물며 악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게 무슨 뜻이에요?
부처님의 원력(願力)은, 가만히 놔두면 극락이나 좋은 세상에 가서 날 수 있을 만한 사람에 대해서도 미칩니다. 그 사람에게도 부처님은 자비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 자비심의 힘은 가만히 놔둬도 천당이나 극락에 갈 수 있을 만한 사람에 대해서보다, 가만히 놔두면 지옥밖에 갈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더 강렬할 겁니다. 그 의미를 아시겠어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차별이 있을 수 있나요? 그렇지만 건강하게 지내는 아이들보다 항상 골골하고 병을 앓고 있는 자식에 대해서 부모는 더 마음을 쓰고, 어떻게 해서든지 건강하게 만들어줘야겠다는 원력을 쓸 겁니다.
그러면 그 부모는 자식을 차별하기 때문에 병을 앓는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죠. 다 평등하게 보살피지만 그래도 제 힘으로 건강을 지킬 만한 아이는 자기 힘으로 지키니까요. 그 아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가만히 놔두면 점점 더 몸이 아파질 수밖에 없는 자식인 거죠. 그래서 병을 앓는 아이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질 겁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우리를 제도해주실 때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아요. 다 똑같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은 착한 사람에 대해서도 물론 관심을 가져주시지만, 악한 사람에 대한 관심은 더 강합니다. 그러면 착한 사람이 염불을 해서 극락에 가는 것하고, 악한 사람이 염불해서 극락에 가는 것하고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쉽습니까? 착한 사람에 대해서는 부처님이 관심을 덜 가질 겁니다. 악한 사람에 대해서보다는 덜하다는 말이에요.
악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정말 강렬합니다.
부처님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옥에 안 보낸다. 너를 꼭 극락에 가도록 해주겠다”는 그런 큰 원력을 가지신 대상이 바로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관심을 덜 받는 착한 사람조차도 염불을 하면 극락에 가는데, 악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뭐가 있느냐? 그런 말이 되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가 되세요?
나같이 죄 많은 인간, 나같이 어리석은 인간, 나같이 게으른 인간이 극락에 가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 참 잘됐구나. 나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나한테 더 관심을 갖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나쁜 곳에 안 보내시겠구나!’라고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창조의 순간
착한 사람은 극락에 보내주지만 악한 사람은 극락에 안 데리고 간다는 그런 말하고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나 깨나 나무아미타불, 아침에 일어나서도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연습을 자꾸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철을 타고 갈 때도 자꾸 나무아미타불을 부릅니다. 회사에 가서도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부르고 저녁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또 한 번 나무아미타불을 부릅니다. 오늘 하루 지난 것을 생각해 보는 거죠.
내가 오늘 지낸 것은 내 앞날에 영광스러운 역사를 창조하는 그런 과정이었던가? 아니면 나를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로 몰고 가는 그런 나쁜 과정이었던가?
남을 속일 수는 있지만 자기는 못 속입니다. 다 알아요. 정말 부끄럽죠. 부끄러운 생각이 나니까 얼른 합장을 하고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겁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그날 지내면서 잘못했던 것을 뉘우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처 낮에 나무아미타불을 많이 불러서 앞날에 영광스러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그런 과정을 놓쳐버렸다 하더라도, 그 순간 잠자리에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되면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죠.

아침저녁으로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때 지옥이 나타나거나, 죽은 소들이 나타날 이유가 없겠지만 나타나더라도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없어져 버리니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때, 그 때만이 인생을 뜻있게 사는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소에 복 많이 받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을 많이 받으라고 말하려면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이야기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복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아미타부처님이 날 보살펴주시고, 아미타부처님이 날 이끌어주시고, 아미타부처님이 나에게 끝없는 복을 주시는 것을 참으로 알면, 남들한테 주는 마음으로 살 겁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의 하루 종일은 주는 마음입니다. 남한테 자꾸 주는 마음입니다. 육바라밀을 행하는 거죠. 하지만 우리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것을 모르면 육바라밀이 행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염불을 장려하시는 어떤 스님은 뭐라고 했느냐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되는 순간은 정말 말할 수 없는 큰 영광스러운 찰나라는 겁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부처님이 날 불러주고 계십니다. 항상 부처님이 날 불러주고 계신 걸 우리가 못 듣고 지냈던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됐어요. 그러면 “아! 바로 여기에 부처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앉으나 서나 하루 종일 입에서 나무아미타불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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