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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의 패러독스

문사수 2010.10.16 조회 수 24504 추천 수 0
염불의 패러독스

생물학적인 깊은 지식이 없어도, 어미가 새끼를 배고 나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 출산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업구상을 하든, 목적지를 향해서 여행을 떠나든, 먼저 씨앗에 해당하는 현실을 먼저 심을 때 그에 상응한 열매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딛고 있는 오늘 그리고 이 땅의 현실을 떠난 해결법(解決法)을 구하려는 시도는, 마치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하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신 분이 계시니,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따르셨던 길이 부처생명의 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염불법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가모니부처님은 부처님이시니까 무조건 위대하다는 측면으로 봐서는 곤란합니다. 염불법문은 오히려 속인(俗人) 싯다르타의 관점을 강조합니다. 아직 부처가 되지 못했으면서 부처님생명으로 살아야겠다며 몸부림치는 사람,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염불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병이 나서 죽는 것도 아니요, 몸이 약해서 죽는 것도 아니요, 사주팔자가 나빠서 죽는 것도 아닙니다. 무상(無常)한 우주적인 법칙 따라 죽는 겁니다. 현상은 무상한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어찌 내 아버지만은 오래 살아야 하고, 내 자식만은 천년만년 건강해야 합니까? 그야말로 무상한 법칙에 어긋납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끝없이 부여잡고 안 놓으려고 하는 부유된 인간이라면, 이는 자신의 생명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자아상실(自我喪失)의 상태가 틀림없습니다. 특별한 모습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분명히 맞이하고 있는 현실적인 삶속에서의 자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서 이미 언급했듯이 깨달은 부처님은 그만두고, 속인(俗人) 부처 다시 말해서 갈등(葛藤)하는 부처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속세를 떠난 어딘가에 이상향(理想鄕)이 따로 있으리라는 그 기대를 헤아리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속세(俗世)를 떠나려는 그 마음이야말로 오히려 속세와 대립된 또 다른 속된 마음과 마주하자는 말입니다. 속세와 대립하고 있는 마음은 이미 속세에 속하는 마음입니다. 그 속세의 마음으로 성지(聖地)에 가서 성인(聖人)을 만난다고 해도, 그 사람은 언제나 속된 사람일 따름입니다.
속인 싯다르타는 그때 무엇을 했을까?
그리고 깨달은 상태에서 여든까지 사시다가 세상과 인연을 다했을 때,
“아난아, 나 좀 눕혀다오”
하면서 고통의 소리를 하신 육신(肉身)의 부처님은 또 누구실까?

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외면하면서, ‘부처님은 병도 앓지 않으셨을 거야’, ’부처님은 피곤도 없었을 거야’, ‘부처님은 배반도 없었을 거야’ 하는 식의 망상을 피워서는 곤란합니다.
세상살이 하신 그 부처님은 누구실까?
우리가 슬그머니 건너뛰어서는 안 될 사항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3천 년 전의 경전에 근거해 비춰보면,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좋아했으리라는 주장의 허구가 밝혀집니다. 부처님의 일대기는 순전히 외도(外道)들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시와 모멸 또는 어이없는 모함 속에서도, 다만 외도들에게 정법(正法)을 일러준 전법(傳法)으로 일관하신 부처님입니다. 사촌이 배반하고, 제자가 등을 돌리기도 하고, 술 취한 코끼리에 밟혀 죽을 뻔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왜 굳이 피할 수도 있었을 고난의 길을 스스로 걸으셨을까?
한 곳에 앉아 계시며 대접받는 성자(聖者)의 자리를 누리실 수도 있었을 텐데, 반기지도 않는 사람들을 향해 열사(熱砂)의 땅을 일생동안 걸으셨을까?

숫타니파아타라는 초기경전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대중들이여, 나도 모든 고백의 장소[포살]에 끼어다오. 나도 대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하련다.”
그러면 많은 대중들이 뭐라고 화답(和答)합니까?
“대덕이시여!”
라고 부릅니다. 교주님이라고 한다든가, 성자시여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이 장면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법회에서 자리를 함께하고 염불공덕을 쌓는 이유가 뭘까?
결국은 속인으로서 사는 -엄마노릇, 부인노릇, 아들노릇하고, 남편노릇-가운데서 수많은 갈등이 나타납니다. 굳이 이런 상태를 외면하려고하거나 안 그런 척 할 뿐이지, 세상에 내 맘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가 자신이 마땅치 않은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내 비위를 맞춰주겠습니까?
스스로 범부(凡夫)로 살아가기에 그렇습니다.
범부란, 스스로 부처님으로부터 떠난 자라는 뜻입니다. 누가 떠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범부로서 비참하게 살고 있음을 자각할 때, 비로소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범부로 사는 범주 안에서는 더 이상의 해법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범부로 살고 있다는 삶의 모순(矛盾)을 안다면, 염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범부가 할 수 밖에 없는 게 염불(念佛)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염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완성된 자인데 염불이 왜 필요합니까.
범부로서의 나, 스스로 속박(束縛)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나, 뭔가 인생이 이것만은 아니야 라며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나. 그런 사람이 하는 것이 염불입니다.
때문에 범부에게 염불은 하고 말고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염불은 한마디로,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의 소식을 뜻합니다. 그러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명의 몸부림이요, 더 나아가서는 살려주시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절규입니다.
‘범부인 내가 혼자 살려니 너무 힘들었는데, 부처님께서 무한히 살려주시는구나! 이렇게 무한한 은혜(恩惠)속에 자리하고 있구나!’하는 찬탄이기도 합니다.

이제 답은 확고부동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닥치는 자아상실과 같은 모순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대상화하기보다 자신의 문제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라고 할지라도 현실로 드러나 있는 것은 결과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만 그것은 현실입니다.
때문에 현실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해결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내 귀에 들리지 않고 내 눈에 보이지도 않기에 그렇습니다. 
하루 중에서 가장 어두울 때가 해 뜨기 바로 직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환한 세상에 살고 싶다면 해 뜨기 직전의 어두움을 자기화(自己化)합니다.
온통 전면수용(全面受容)하는 것입니다.
이런 엄연한 처지를 무시하고 대명천지(大明天地)가 오기만을 바라는 것은 허위의식(虛僞意識)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 염불은 이를 받아들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권리이며, 살려짐의 기회일지니.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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