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와 인연인 되어 10년이 넘게 법당을 다니면서도 무늬만 불자(佛子)로 살아온 업장*을 드러내어 참회합니다. 지난 석달 동안 치룬 병치레와 연이어 이사라는 상황을 맞으면서 수행 정진이 없었기에 참다운 믿음도 얻지 못했음을 체험하고 참회합니다.
발목에 급성 세균감염으로 인한 봉와직염이라는 병명으로 일어설 수조차 없어 지난 5월11일부터 31일까지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16년 전 발병한 뇌졸중 후유증으로 왼쪽에 마비가 생기면서 왼쪽 다리에 장애가 있어 평소에도 걷기가 불편했었는데, 급격히 진행된 발목 통증으로 걸을 수가 없어 동네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당뇨수치가 400이라면서 수치가 너무 높아서 치료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이유 없는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하루 종일 팔목에 링거를 꽂고, 3시간 간격으로 하루 6번 투여하는 항생제로 인해 정신은 멍해졌습니다. 몸과 정신이 둘이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미련한 자신에 대한 원망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들끓는 번뇌 속에서 느닷없이 정신법사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났고, 법사님의 말씀에 따라 나무아미타불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새 짜증나고 갑갑한 마음으로 뒤덮이곤 했습니다.
입원 3주째, 조금씩 염증이 가라앉으면서 지난 3월 시작한 어린이 법회에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팡이라도 집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히면서 염증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여 5월 말에는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6월과 7월에는 통원 치료를 하면서 염증에서 벗어나게 되어 지팡이를 짚고 어린이 법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6일에는 2년 전 분양받은 홍은동 동부센트레빌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오랜 서원 끝에 원하는 집으로 이사하게 되는 정말로 기쁘고 감격스럽게 이사를 하는 와중에도, 매사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구보다 책이 더 많아 이사짐센터 사람들의 눈치를 받았던 그 책들이 저의 욕심과 집착을 알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저는 책 욕심이 참 많습니다. 책을 선물하는 것도 좋아하고 받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하면서 보니까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법회 책만 세권(아마도 두 권은 저도 모르게 가져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산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재산임이 분명한 잠시 빌려왔던 책까지 반납하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책욕심.
책뿐만이 아니라 버려도 버려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옷가지들, 언제 사용했었는지 안했는지도 기억에 없는 켜켜이 쌓인 그릇들을 버리면서 다시 한 번 멍해졌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 머릿속을 마구 헤집던 번뇌들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보현행원품에 '업장을 참회한다'는 문구가 마구 다가옵니다. 내가 산다는 것, 끊임없는 업장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위의 두 사건을 겪으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업장을 참회합니다. 어제에서야 가까스로 집 정리를 마치고 전쟁이 끝난 뒤처럼 텅 빈 마음에 보현행원품을 떠올리면 정리를 해봅니다.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과거 한량없는 겁 동안에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모든 악업이 한량없고 가이없어
만일 이 악업이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용납할 수 없으리라.
내 이제 깨끗한 세 가지 업으로
널리 법계의 티끌 수 같은 세계, 모든 불보살님 앞에 두루 지성으로 참회하며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아니하고
항상 깨끗한 계행의 모든 공덕에 머물러 있으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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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장(業障)
업(業)에 장애(障碍)가 발생한 것.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통해 업을 발휘하며 살아감에 있어서 업을 제대로 쓰지 못하여 장애(障碍)가 발생한 것이다. 비유하면, 전기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하면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감전사고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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