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큰 기지개 후에 옷을 두 겹, 세 겹 껴입고, 가까운 법당에서 정진합니다. 예전의 새벽 경전공부도, 또 요즘의 염불정진도 아침잠이 적은 감사한 복전[몸뚱이] 덕분이라며 스스로 기특해 합니다.(^-^);;
제가 정진을 시작한 연유는 항상 법사님들의 정진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법우님들이 법문에 대한 감격과 감흥에 대해 말씀하실 때, 저는 단지 ‘참 좋은 말씀이구나’ 하는 느낌 뿐으로 그 이상의 감동을 받아보지 못하였기에, 법문에 제대로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정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얼마 전에 자혜원법우님과 함께 정진했는데, 그 때 정진으로 살고계시다는 자혜원법우님의 말씀에 힘을 받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정진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진으로 큰 감동과 감격을 맛봤던 적은 없습니다. 이젠 그런 감격의 눈물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치지 않는 정진으로 살려지는 삶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마음만을 간직합니다.
항상 법답게 살지 못하고 부딪치는 생명들께 짓는 수많은 잘못과 실수를 참회하며, 올곧이 부처님생명으로만 살겠다는 마음으로 정진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염불하고 정진하면서 일어나는 많은 생각과 잡념들은 정진하는 시간만이 차분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니 그렇구나 하고 그저 염불할 뿐입니다.
뵐 때마다
“얼굴 환해졌어”
하시며 칭찬하시는 여여법사님.
항상 주시는 법문이 제게 꼭 들어맞는 몸 따가운 가르침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들입니다. 착함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 자기를 억누르는 짐으로 다가와, 가족이나 이웃에게 화 잘내고 짜증내는 자신을 볼 때마다 한심해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그칠 수 없는 정진의 원동력이 됩니다.
법회에서 조금은 물러나 있고 적극적이지 못함을 보고 격려하시며
“내가 없더라도 법회 잘 해나가, 명광”
하시던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처음 법회에 다니며 했던 질문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 화끈한 질문들이었습니다. 요즘은 법문하신 말씀을 차분히 되뇌이며 일상에 적용해가며 수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항상 밝은 법문을 주시며, 자애롭게 모든 법우들을 대하시는 한탑스님의 소리 없는 법문에 늘 고마움과 소중한 인연의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 고마움에 하는 작은 봉양에도 스님께서는 신세진다고 미안타고 하시지만, 그런 봉양을 연습해나가며 모든 생명들에게 회향하라는 스님법문의 조그만 실천입니다.
마음에 잔잔히 와닿는 쉬운 법문들이 처음 몇 해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면서도 법회와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성과 없이 바쁘기만 하고 소심한 명광이를 늘 한결같게 대하시는 정해법사님. 몸은 바쁘더라도 참생명 자리는 늘 여유로울 수 있도록 정진하자는 말씀을 따라 정진하고있습니다.
당장 드러나는 변화를 바라지 않고 구하는 마음 없이 한결같이 염불, 정진하겠습니다.
핸들잡고 갖는 성급함과 남들에게 험한 말을 내뱉으며 낯 뜨거워하지만, 그래도 희망인 것은 그런 모습을 보고 염불하며 고쳐나가기 때문입니다. 그 또한 정진해야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렇게 법문과 정진만이 조그만 성취에 자만하고 나태해지는 명광이를 이끌어주는 선지식입니다.
매일 아침 하던 정진을 잠시 미루고 요즘은 명호봉대 발원 사경(寫經)을 하고 있습니다. 성급한 마음도 가라앉히고 둔한 우뇌도 사용할 겸 ‘나무아미타불’을 왼손으로 쓰는데 급하게 쓰려해도 차분하지 않으면 써지지 않고 사경에 들이는 정성도 2배는 족히 드는 좋은 정진방법 같습니다.
부지런히 전법하고 정진하시는 법우님들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비교해서 저렇게 훌륭한 법우님을 본받아야지 하는 마음도 항복받습니다. 또 나만이 제대로 신앙한다는 자만도 항복하려 정진합니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참생명을 직시하려 염불하고 엎드려 절하옵니다.
내가 선 자리가 극락임을 확연히 알지는 못하기에, 한 생각에 모든 잡념을 끊고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기에, 오늘도 올곧이 정진합니다. 모든 생명을 부처님생명으로 대하지 못하기에, 다만 오직 정진입니다.
정진에 나태해질 때는,
“정진은 자기 혼자 한다고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생명이 와서 듣고 함께 하는 것이며, 그래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해야한다”
는 법사님 법문을 떠올리며, ‘나도 법문을 듣기만 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생명에게 법문하며 함께 정진한다’는 생각으로 힘을 받아서 정진하기도 합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보살의 행원은 다하지 않아’라는 경구처럼 명광이의 정진도 다함없이 모든 생명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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