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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문사수 2013.05.08 조회 수 33715 추천 수 0

부처님께서 오신 이유
우리가 불교를 믿는 목적은 오직 부처를 이루는 것[成佛]밖에는 없습니다.
부처를 이룬다는 것은 갑자기 무슨 특별한 존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를 이룬다는 것은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인 우리의 참생명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모르고, 스스로를 중생(衆生)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나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입니다.
부처님이라는 말은 절대무한(絶對無限)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내 밖에 따로 있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내 밖에 따로 있는 부처님이라면, 그것은 절대무한이 아닌 상대유한(相對有限)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절대무한이기에 그 어떤 개념이나 이론 따위에 의해서 규정되거나 제한될 수 없습니다. 나의 참생명은 이러한 절대무한의 부처님생명이기에,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제한될 수 없는 절대자유가 그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믿는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절대자유의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태어났을 때,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을 걸은 뒤에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치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말은, 바로 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참생명은 형이상학적인 세계[天上]부터 형이하학적인 세계[天下]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것에도 지배받지 않는다는 것[唯我獨尊]을 외친 것이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인 것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생명은 석가모니부처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인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중생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오직 한가지의 이유는, 우리가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인 부처님생명이 우리의 참생명임을 알게 되면, 당연히 삼계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편안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중생이라고 착각하는 우리들을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리로, 즉 우리의 참생명 자리인 부처님생명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을 일러 부처님께서는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에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모든 상(相)이 상아님을 보라
우리의 참생명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부처님생명이기에, 재산이 줄었다거나, 지위가 낮아졌다거나, 육체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해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외부조건이 유리해지든, 불리해지든 참생명의 가치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나오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의 의미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없어지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무너진다고 해도, 우리의 참생명 자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미 구족(具足)되어 있는 참생명의 가치를 외면한 채, 부(富)나 권세(權勢)나 무병장수(無病長壽)와 같은 것을 얻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빈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불자(佛子)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참생명은 그와 같은 외부조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외부조건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라면, 그러한 신앙은 삿된 신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여러 가지 주위 환경이나 생로병사(生老病死) 등에 의해 구속받고 있다는 존재감을 감추기 힘들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재산도 좀더 모아야 할 것만 같고, 보다 더 출세도 해야지만 나의 행복이 보장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은 실재하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금강경(金剛經)》제5분에
“무릇 있는바 상(相)은 다 이것이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는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주위에 펼쳐지는 현상계(現象界)는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내 마음에 의해 그렇게 펼쳐질 따름입니다.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각자의 몫이 다릅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에 동의하고 설정해 놓은 만큼만 자신의 세계로 펼쳐지는 것일 뿐, 바깥의 현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내가 말할 수 없이 힘든 장애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상이 상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내 마음 속에서 작용하는 것일 뿐, 결코 나의 참생명은 외부조건에 의해 구속되어질 수 없습니다. 나의 참생명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부처님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상이 상아님을 보면 상대유한의 현상계는 실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고, 본래부터 있는 절대무한의 세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바깥의 현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따라서 내 밖에서 구할 것은 없습니다. 나의 참생명의 본래 가치가 실현되면 그 자리가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절대무한이므로, 오직 부처님생명 말고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천상천하유아독존입니다. 따라서 나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을 실현한다는 것은, 결코 중생이 부처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부처가 부처로 되는 것입니다. 나의 참생명이 본래부터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스스로를 못난 중생으로 여기는 상대유한적인 생각을 버리고, 본래 가지고 있는 부처님생명을 실현해야 합니다. 상이 상아님을 바로 보아, 본래 있던 절대무한세계를 드러내야 합니다.
이렇게 상대유한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나무(南無)!”입니다. 나를 옭아매는 외부조건이 실제로 있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이 바로 “나무(南無)!”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이 “나무!”하면서 부처님생명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일러 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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