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듣기
 

법우님~, 복 많이 지으세요!

문사수 2010.02.15 조회 수 24693 추천 수 0
복福 많이 지으세요

 
법우님, 설은 잘 쇠셨습니까?
해가 바뀌고 설도 쇠었기에 좋든 싫든 모두 나이 한 살씩을 더 먹었습니다. 나이 얘기가 나왔으니까 법우님들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부처님의 나이와 우리의 나이는 몇 살 차이가 날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우리는 부처님과 동갑입니다.
우리가 부처생명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나이는 항상 부처님과 동갑인 것입니다. 부처님께 늙고 죽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참생명도 늙고 죽음이 없는 부처생명입니다. 몸뚱이는 분명 시간이 지나면 노쇠하지만, 우리의 참생명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동차가 낡아서 폐차시켰다고 해서 그 운전자까지 어떻게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 몸이 늙고 병들어 결국엔 죽게 되더라도 우리의 참생명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법우님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를 많이 주고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불자(佛子)들은 “복 많이 지으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가을걷이를 잘 하려면 봄부터 농사를 잘 지어야 되는 것처럼, 복을 많이 받으려면 먼저 복을 많이 지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복을 짓지도 않은 사람에게 무턱대고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는 것은 인연법(因緣法)에 맞지 않습니다. 진정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 받을 인연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을 짓지는 않고 뭔가 특별한 기도를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약 이런 것을 신앙이라고 여긴다면 이것은 분명 미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 짓기를 멈추지 않으시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 불리는 아나율존자가 계십니다.
아나율존자는 이상하게도 법문을 듣는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좁니다. 그러다 어느 날 부처님께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아나율존자는 법문 들을 때뿐만 아니라, 밤이나 낮이나 항상 잠을 자지 않고 오직 정진에만 힘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한시도 눈을 감지 않고 정진한 나머지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육안(肉眼)을 잃은 대신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천안(天眼)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천안이 트인 아나율존자라 해도 육안을 잃은 이상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해진 옷을 기우려 하는데 바늘에 실을 꿸 수가 없어서, “누구 복 짓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 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 다가오셔서 손수 바늘에 실을 꿰어주셨습니다. 실을 꿰어준 사람이 다름 아닌 부처님인 것을 안 아나율존자가 여쭈었습니다.
“이미 생사의 바다를 건너신 부처님께서 복을 더 지으실 일이 있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복을 짓고자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
이렇듯 위없는 복덕을 구족하신 부처님께서도 복 지을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복을 지었습니다. 복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많이 베풀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야말로 모든 이에게 한없이 복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므로 당연히 복이 많아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나는 중생들을 위하여 복을 짓는다’고 하시며, 복 짓는 일을 멈추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의 모든 힘 중에서 복덕(福德)의 힘이 가장 으뜸이니, 그 복덕의 힘으로 불도(佛道)를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부처님께 복을 달라고 매달린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습니다. 부처님께 열심히 빈다고 해서 복을 받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복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므로 매일매일 복 짓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을 짓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열심히 공양을 올리는데도 불구하고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참다운 복덕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부처님을 나와 따로 있는 분으로 생각하고 공양을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는 것은 내 밖에 있는 어떤 특별한 존재에게 공양 올린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참생명이 곧 부처님생명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것은 바로 나의 참생명 자리에 공양 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나와 따로 있는 분으로 생각하면, 반드시 ‘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상(相)을 내게 되므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땅에 씨를 심으면 잘 덮어줘야 됩니다. 뿌려진 씨가 땅 밖에 드러난 채로 있으면 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기에 열매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공양 올리는 것은 복 받을 씨를 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복을 지었으면 숨겨야 합니다. 그런데 ‘공양을 올렸으니까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지…’하고 은근히 과보(果報)를 기대하는 것은, 공양 올렸다는 상(相)을 자꾸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날마다 좋은 날
요즘처럼 연초(年初)가 되면 ‘혹시나 올해에는 복이 좀 들어오려나?’하는 기대를 가지고 점(占)집에 가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혹시 법우님들도 올 한해의 운수가 궁금하십니까? 그렇다면 운문(雲門)선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중국 운문종(雲門宗)을 창시한 운문선사는 매달 보름(15일)에 법문을 하셨습니다. 이분이 어느 보름날 단상에 올라 법문하시기를, “15일 이전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마. 15일 이후에 대해서 한마디 말해 보거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즉 ‘과거는 묻지 않으마. 앞날에 대해서 말해 보거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 대중들은 아무도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러자 당신이 다시 법문을 주십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하루하루가 다 좋은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법우님의 앞날에도 모두 좋은 날들만 있을 것입니다. 혹시 법우님들 가운데는 ‘어떻게 하루하루가 모두 좋은 날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날마다 좋은 날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우리는 도둑을 맞으면 그 날은 나쁜 날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도둑을 맞았다고 해서 꼭 나쁜 날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일이 벌어졌다면 그것은 인연법에 의해 당연히 벌어질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숙명론을 말하고자함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인연의 주체인 내가 불러들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전생에 진 빚을 갚은 것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복 받을 일밖에는 없습니다.
또 어떤 날은 뜻하지 않게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하여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날도 나쁜 날이 아닙니다. 그 덕분에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역시 복 받을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에 처하지 않고서는 결코 인욕바라밀을 닦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억울하고 분하고 참기 힘든 일을 겪는다면 그런 날은 인욕바라밀을 닦을 수 있기에 참으로 좋은 날인 것입니다.

부처님가르침의 결론은 ‘본래부터 부처생명이니 중생노릇 그만하고 부처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생명은 부처생명이므로 우리 불자들의 하루하루는 본래의 참생명 자리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참생명 자리로 다가가는 것, 그것은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智慧波羅蜜]을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에게 있어서 정말 좋은 날은 육바라밀을 닦는 날입니다. 그런데 육바라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욕바라밀은 혼자 힘으로는 닦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어줘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연 맺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현장에서 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바라밀행을 닦게 해주는 선지식들이고, 가는 곳마다 바라밀행을 닦는 도량이 됩니다.

이처럼 참생명 자리를 찾아가는 입장에서는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매일이 모두 좋은 날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가는 곳마다 모두 좋은 곳이며, 하는 일마다 모두 좋은 일뿐입니다. 어떤 날을 선택해도 길일(吉日) 아닌 날이 없고, 어떤 곳을 선택해도 명당 아닌 곳이 없습니다.
점(占)을 보거나, 조상의 묘 자리를 옮긴다거나,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바뀌면 내 운명이 바뀌고 내 주위 환경이 바뀝니다. 이렇게 내가 바뀔 때 세상이 바뀝니다.
예를 들어 마당에 심어져 있는 가시나무에서 복숭아를 얻고 싶으면 방법은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가시나무를 뽑아버리고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빌어도, 예수님께 빌어도, 부적을 사다 붙여놓아도 가시나무가 복숭아나무로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귀찮고 힘들어도 오직 가시나무를 뽑아버리고 복숭아나무를 심는 방법밖에 없는 것처럼 나의 운명이 바뀌려면 근본적으로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바로 나로부터입니다.
모든 인연을 불러들인 당사자가 바로 나 자신이기에, 나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인연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올해의 운수, 아니 평생의 운수는 분명 대통(大通)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우님, 올해도 복 많이 짓는 한해 되기를 바랍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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