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많은 종교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은 개종의 겉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 생명의 궁극적인 의지처를 완전히 바꾸었을 때, 비로소 개종이라고 합니다. 경험과 기억에 근거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중생으로서의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종이란 더 이상 상대적인 여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림과 동시에 부처님생명으로만 살아가겠다는 지향에 망설임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는 곧 싯다르타라고 불리던 구도자가 석가모니불로 개종하였음을 시사합니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법장비구는 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이는 A라는 사람이 B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A가 자기의 참생명 자리를 자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석가모니부처님이라고 불리는 그 분의 겉모습이, 부처님이 되고 난 후에 더 잘생겨졌다거나 재산이 불었다거나 키가 더 커졌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합니다.
다시 얘기하자면 그 분의 생명 내용이 아미타인 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였을 때, 깨달았다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중생생명이 아니라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이었구나. 그런데 내가 여태까지 중생 노릇을 하며 생사의 놀음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과 더불어 참된 생명으로 살아가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싯다르타가 자기 생명이 중생이 아니라, 부처님생명임을 자각하였다는 것과 법장비구가 아미타부처님이 되셨다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도자 싯다르타가 법장비구이고, 아미타불은 석가모니불의 깨달으신 내용이며, 석가모니불은 아미타불의 역사적인 실현일 뿐입니다.
결국 우리들 입장에서의 개종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전면승인을 가리킵니다. 어느 정도 믿기는 하겠는데 알 듯 모를 듯하다거나, 오늘 당장 필요한 돈이 손에 들어오게 하여 주면 부처님의 영험을 인정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부처님을 믿지 않는 삶입니다. 자신의 잣대를 앞세우는 한, 부처님 가르침을 빙자해서 세상살이의 가치를 높이려는데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으로 살 길은, “나무아미타불!”하는 순간마다 개종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중생생명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부처님생명으로서의 전면 개종이 되지 않는 한, 죽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종(宗)이란 내 생명이 의지하고 있는 제일 마지막 터전입니다. 종교(宗敎)란 말의 본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생명의 근거가 무엇이며, 생명이 무엇에 의지하고 있느냐가 먼저입니다. 그에 따라서 기술자 노릇도 하고 상인 노릇도 하고 운전사 노릇도 하는 것이지, 근거도 없이 무조건 살아가기만 한다면 기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개종이란 더 이상 상대적인 여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림과 동시에 부처님생명으로만 살아가겠다는 지향에 망설임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는 곧 싯다르타라고 불리던 구도자가 석가모니불로 개종하였음을 시사합니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법장비구는 아미타불이 되셨습니다. 이는 A라는 사람이 B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A가 자기의 참생명 자리를 자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석가모니부처님이라고 불리는 그 분의 겉모습이, 부처님이 되고 난 후에 더 잘생겨졌다거나 재산이 불었다거나 키가 더 커졌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합니다.
다시 얘기하자면 그 분의 생명 내용이 아미타인 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였을 때, 깨달았다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중생생명이 아니라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이었구나. 그런데 내가 여태까지 중생 노릇을 하며 생사의 놀음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과 더불어 참된 생명으로 살아가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싯다르타가 자기 생명이 중생이 아니라, 부처님생명임을 자각하였다는 것과 법장비구가 아미타부처님이 되셨다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도자 싯다르타가 법장비구이고, 아미타불은 석가모니불의 깨달으신 내용이며, 석가모니불은 아미타불의 역사적인 실현일 뿐입니다.
결국 우리들 입장에서의 개종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전면승인을 가리킵니다. 어느 정도 믿기는 하겠는데 알 듯 모를 듯하다거나, 오늘 당장 필요한 돈이 손에 들어오게 하여 주면 부처님의 영험을 인정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부처님을 믿지 않는 삶입니다. 자신의 잣대를 앞세우는 한, 부처님 가르침을 빙자해서 세상살이의 가치를 높이려는데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으로 살 길은, “나무아미타불!”하는 순간마다 개종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중생생명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부처님생명으로서의 전면 개종이 되지 않는 한, 죽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종(宗)이란 내 생명이 의지하고 있는 제일 마지막 터전입니다. 종교(宗敎)란 말의 본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생명의 근거가 무엇이며, 생명이 무엇에 의지하고 있느냐가 먼저입니다. 그에 따라서 기술자 노릇도 하고 상인 노릇도 하고 운전사 노릇도 하는 것이지, 근거도 없이 무조건 살아가기만 한다면 기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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