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참생명을 찾아가는 사람은 남한테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법(法)에 의지하지,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절이든 교회든 어떤 스님이나 목사가 “나를 믿으라” 고 하면 그것은 속임수임을 확실히 아셔야 합니다.
또 “나는 뭘 봤다.”고 하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는 사람도 다 거짓말입니다. ‘나’라는 게 나올 적엔 ‘너’라는 게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금강경의 말씀처럼 '아상(我相)이 생기면 인상(人相)이 생기고 이어서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한꺼번에 나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따라야 할 대상이 되지 못해요. 우리가 참답게 따라야 할 것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궁극의 의지처를 찾아간다면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가 찾아 헤매는 외부적인 의지의 대상은 없다. 참으로 신앙의 대상이 있다면 그건 나의 참생명을 드러내는 것밖에 없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고 그것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때문에 부처님은 내 밖에서 찾는 게 아닙니다. 나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부처님생명, 영원절대생명입니다. 즉 아미타(阿彌陀) 그 자체입니다. 부처님이 어디 내 밖에 있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내 참생명이 그대로 부처이므로 따로 찾아갈 게 없습니다.
새삼스럽게 찾아가는 게 아니기에 법회에서는 뭐라고 표현합니까? 나의 참생명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드러내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을 전부 다 부처님으로 보고, 모든 사람들을 예경하고 칭찬하며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나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고 도우며, 항상 주는 마음으로 남들이 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삽니다. 그럴 때, 그 사람 자신은 부처임을 모를지라도 옆의 사람들은 ‘아 저사람 부처님이네.’ ‘부처님이 되셨네.’하고 보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평소에 염불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염불을 하니까, 저 멀리 계시다가 달려오셔서 도움을 주시는 그런 부처님은 없습니다. 오직 나의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공부를 하기 위해선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우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부처님은 나와 몇 리나 떨어져 계신가요? 한 오백리 정도 떨어져 계신가요?
부처님은 내 밖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므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나는 본래부터 한생명이라는 것이죠. 2인칭 3인칭이 없으니까 어디에 가더라도 남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한생명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야 됩니다. 그 믿음이 바로 진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이라는 걸 내 눈으로 보질 못했더라도 나의 참생명이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이라는 걸 확실히 믿고 누구에게든지 나를 낮추고 남들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상을 여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부처님생명이 나에게서 남김없이 드러나지이다’ 하는 원(願)을 세웁니다.
불교는 원(願)의 종교에요. 그래서 보현행원품을 자꾸 읽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원이 만듭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운명을 맞이하고 있는 것도 과거에 원을 가지고 살았던 결과입니다. 그러니 정말 부처님생명답게 멋있게 살려면 그에 맞는 원을 세워야 합니다.
보현행원품에 나오듯이 원에는 열 가지가 있지요. “부처님께 예경 드리고, 찬탄하고, 공양하고, 참회하고,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고, 항상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고, 부처님이 오래 계시기를 청하고, 부처님 따라서 배우기를 청하고, 중생들을 다 수순(隨順)하고 그래서 내가 지은 공덕을 전부다 회향하겠습니다.”하는 원을 가지고 세상을 산단 말이에요. 그렇게 신(信) 즉 믿음을 바탕으로 원(願)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행(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도 원력도 가만히 놔두면 자꾸 조금씩 희석되고 또 비뚤게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면서 나의 참생명을 잊지 말고 상기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염불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신(信), 원(願), 행(行)입니다.
오늘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결코 내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이고, 나의 참생명은 본래부터 무한가치를 지닌 영원절대생명임을 확실히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에 의해서 나의 진실생명을 드러내게 하려면 앞서 말씀드린 열 가지 원을 계속 실천해 나가야 하고 그 실천의 힘은 염불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며 내 안에 계신 부처님을 부르는 겁니다. 그럴수록 아상이 없어지니까, 부처님이 내 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에 다 계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도 부처님이고, 자식도 부처님이고, 아내도 부처님입니다. 또 우리 이웃도 부처님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부처님이고, 심지어 나를 욕해주는 사람도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온천지가 다 부처님으로 꽉차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바로 극락세계가 실현되는 겁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흔들림이 생기고, 답답함이 생기고, 또 의심이 생기거든 얼른 나무아미타불하세요. 나무아미타불!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세요. 남들 앞에서 하기 뭐하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해도 상관없어요. 문을 잠가놓고서 ‘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 하고 한번 크게 외쳐보세요. 그럼 시원해집니다. 다들 해보셨지요?
옛날에 서암큰스님은 아침마다 거울을 보시면서 그 거울 속에 있는 사람보고 얘기를 했답니다.
“아무개야.”
“네”
“주인공아!” 그러셨대요. 주인공이 바로 아미타지요.
“주인공아!” 하면 서암스님께서 스스로 대답하시는 거에요. “네.”하구요.
“정신 바짝 차리렷다.”
“알았습니다.”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아침마다 화장실 들어가거든 얼굴이 이렇게 잘 생겨서 참 좋구나 하는 생각만 하지 말고 “네가 아미타야. 그러니 아미타노릇 잘해라!” 그러면서 “네” 하세요.
아미타 노릇 잘하는 건 뭐예요?
남들을 짓밟고 누르는 건가요? 아니죠. 세상 사람을 모두 다 부처님으로 보면서 공경하고 누구에게든 주는 마음으로 사는 그런 사람이 바로 아미타불인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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