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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수 2014.10.23 조회 수 17202 추천 수 0

불교는 원(願)의 종교라고 합니다. 좀 더 구분해서 말하면 지혜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늘 암송하는 반야심경이나 또 금강경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불교가 지혜의 종교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지혜로 무엇을 아느냐? 모든 것은 전부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는 원리를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칙에 따라 내가 원(願)을 세우면 그 원은 꼭 성취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지혜의 종교임과 동시에 원(願)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회가 열리고 맨 마지막에 사부대중들이 다 같이 외우는 것이 있습니다. 네 가지 큰 서원 즉 사홍서원(四弘誓願)입니다. 그 첫 번째가『가이 없는 중생(衆生)을 다 건지오리다』라는 원입니다.
여러분은 중생이 얼마만큼 많은지 알 수 있겠습니까? 금강경에서는 아홉 가지 종류의 중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방식에 따라서 알로 생기는 것, 태로 생기는 것, 습으로 생기는 것, 화(化)하여 생기는 것 등의 네 가지 중생이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중생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적에 몸뚱이 모양을 드러내면서 사느냐 혹은 몸뚱이의 모양을 감추고서 사느냐에 따라 ‘형상 있는 것, 형상 없는 것’으로 나눕니다. 또 몸뚱이를 가지고 살더라도 마음이 어떤 생각에 지배받고 살고 있느냐에 따라 ‘생각 있는 것, 생각 없는 것, 생각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 없는 것도 아닌 것’ 등으로 나눕니다. 이렇게 전부 아홉 가지 종류의 중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홉 가지로 분류하니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온 우주의 모든 중생이 다 여기에 해당됩니다.

온 우주의 모든 중생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전부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중생도 예외 없이 전부 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는 괴로움에 얽매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지혜의 밝은 눈으로 보면, 우리의 생명은 몸뚱이가 생겨날 때 태어난 것도 아니고 따라서 몸뚱이가 죽는다고 우리의 생명도 죽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저 모든 중생들이 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 속에서 허덕인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생사에 얽매여 고통 받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중생의 실체입니다.
이렇게 중생의 실상을 관하게 되면, 이제 이 중생들을 다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괴로워하는 이유는 다만 지혜가 모자라서 그런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해서 지혜를 얻게 되면 이 세계는 원래 무한히 밝은 광명천지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을 다 건지겠다'는 마음은 모든 사람들을 다 지혜롭게 해야 되겠다는 마음과 같습니다. 그 지혜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일체 모든 괴로움을 다 벗어버린 이상세계의 실현은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즉 그런 세계를 이루겠다는 우리들의 욕구 혹은 바램이 작동해야만 한다는 원리를 알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원력이라고 얘기하는데, 우리는 그런 원력으로 세상을 살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불교는 원(願)의 종교다.’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서원(誓願)의 출발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중생의 실상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즉 온 우주에 있는 어떤 중생도 생로병사의 고통에 얽매여 있는 중생은 본래 없다는 실상을 보는 겁니다. 본래 없는데도 불구하고 늙는 걸 한탄하고, 병드는 것을 괴로워하고, 게다가 죽는 것을 슬퍼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피하려고만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생로병사에 대한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참생명에 대한 바른 믿음, 바른 인식을 갖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참생명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활동을 해서 '저 모든 사람들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줘야겠다.’는 원을 세우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보살(菩薩)'의 삶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보살의 삶의 내용은 한 마디로 상구보리(上求菩莉)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최상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들을 남김없이 다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밝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는 것이 보살의 삶이고 그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불교를 복잡하게 생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바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입니다.

상구보리라는 것은 불교를 공부하게 되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마음이니까 새삼 강조할 것도 없습니다. 불자라면 당연히 삼귀의(三歸依)를 외웁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에 귀의를 하면서 비로소 불자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귀의 그 자체가 벌써 위로는 부처님의 깨달음 즉 지혜를 얻겠다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니, 상구보리는 불자의 입문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수많은 인연 있는 중생들에 대하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당연히 하화중생(下化衆生)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일상생활 속에서 활동력 있게 살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간절히 원하는 것, 즉 무엇을 바라는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이 바로 ‘원(願)’입니다. 좀 더 강하게 이야기 하면 ‘오직 원[唯願]뿐’인 것입니다.
원(願)! 이것이 바로 하화중생입니다. 아래로 모든 중생들을 교화한다는 말은 나와 더불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전부 자신의 참생명을 깨닫게 해서, 어느 중생도 육신을 ‘나’라고 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허덕이도록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전부가 ‘나의 참생명이 본래부터 영원절대의 부처님생명’이라는 진리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죽으려 해도 절대 죽을 수 없는 생명을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분명히 알도록 지도해 나갈 책임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우리에게는 있는 겁니다. 그것이 하화중생이에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보살은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동시에 실천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인 면에서 구체적으로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하화중생입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전부 다 바른 길로 교화해서 모두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속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원이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불자의 원력입니다.
그래서 사홍서원 중 첫 번째 서원인 ‘다함없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라는 마음으로 사느냐 아니냐가 불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자기 혼자 육신의 쾌락을 얻고,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는 불자가 아닙니다.
원력으로 살 때 보살이고, 그런 활동을 지치지 않고 전개하고 있는 사람이 불자의 정체성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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