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바램이 있다면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든 아니면 속 깊숙이 감추고 있든, 반드시 구체적인 표현(表現)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았을 때, 이를 대하는 세상의 반응은 그리 곱기만 한 게 아니더군요. 사람들은 좀체 뛰어난 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깎아 내리려는 것은 기본이고, 오히려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붓기까지 합니다. “진작부터 나도 그런 거 생각해 봤어!”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야단들이야. 운이 좋았겠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설령 천지를 창조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을지라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눈꼽만큼의 사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있어도 쓰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세상살이에서 구체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싯다르타라고 불리던 한 수행자가 석가모니부처님이 된 사연이 바로 그러합니다. 육체를 중심으로 한 지식이나 경험에 안주하였다면, 그는 열심히 산 많은 사람들 중의 한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깨달음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표현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이 아니었던 사람이 새삼스레 부처님이 된 게 아닙니다. 본래부터 부처님생명이었던 싯다르타가, 자신의 참생명을 있는 그대로 무한히 꺼내 씀으로써 부처님으로 불리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생각같이 호락호락하질 않습니다. 갖고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레 내어 쓰는 연습이 반드시 따라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경기장(競技場)에 가보면 우리는 많은 시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축구가 한창 열이 오르다보면, 선수들의 교체는 필연적입니다. 부상당했거나 몸 상태가 여의치 않은 선수를 감독이 교체를 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벤치에 앉아 있던 상태에서 교체되지 않습니다. 운동장 한편에서 미리 몸을 풀고 있다가 투입됩니다. 언뜻 생각하면 진짜 게임도 아닌데, 벤치 옆에서 뛰는 축구선수나 공을 던지고 있는 투수가 공연히 체력을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감독이 부르면 그 때 들어가서 전력을 다하는 게 나을 텐데 말입니다.
선수들 얘기로는 경기장 라인 밖에서부터 열심히 뛰거나 던지면서 근육을 풀어주어야 한답니다. 몸의 긴장이 풀린 상태로 들어가야지, 만약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뛰게 되면 허리나 어깨를 삐끗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체적인 조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축구선수나 투수가 다리를 움직이고 공 던지는 연습을 하게 되면, 계속 좋은 공을 차거나 던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잡아서 행동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행동을 하다보면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많은 불자(佛子)들이 오체투지(五體投地) 즉 절을 계속 하다보면, ‘나’라고 주장하며 세상과 대립하고 갈등을 일삼던 굳은 마음의 때가 벗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이나 일을 대함에 있어서, 저절로 하심(下心)하게 됩니다. 당연히 받기를 앞세우기보다 주기를 먼저 떠올리게 되니, 자연히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지고 맙니다. 맑고 밝은 감사의 마음이 소록소록 피어나면서 말입니다.
논리(論理)에 의지해서가 아닙니다. ‘겸손해야지’ ‘감사하고 살아야지’ 하면서 입으로만 떠드는 게 아닙니다. 무릎을 모으고 이마를 땅에 찧는 그 짧은 동안, ‘내가 잘나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살려주는 감사의 현장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감사와 찬탄을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생각이 앞선 다음에 행동이 따라 나오는 게 아니라, 절과 같이 좋은 행동을 자꾸 하게 되면 좋은 생각이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幸福)해지고 싶다면 먼저 행복을 연습하면 그만입니다. 먼저 행복을 맛보는 겁니다. 모든 원(願)은 오직 생명을 궁극적으로 살리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자신의 독자적인 힘으로 가능하면 좋겠는데, 그런 시도는 아예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그렇다면 자신 이외의 다른 존재로부터 힘을 빌려야 하는가?
먼저 답부터 하자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아도 우리 불자(佛子)들에게는 너무나 쉽고, 너무나 간단한 길이 벌써부터 일러져 왔습니다. 염불(念佛)에 의지하면, 삶의 궁극을 성취하게 된다는 부처님의 간곡하신 법문이 그것입니다.
염불은 혹간 오해하듯이 신비한 주문(呪文)을 읊조리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참생명이 부처님생명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원을 성취할 힘 이른바 원력(願力)을 따로 구해서 보충하려는 태도가 아닙니다. 잊고 있던, 돌아보고 있지 않던 자신의 생명가치를 불러냄으로써 삶의 지평은 무한한 확장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홍서원 중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하는 부처님의 원력을 믿음으로써, 자기 한정을 능사로 삼는 중생살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처님에 의해 이미 성취된 원이므로 중생을 다 건지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원을 일으키는 사람이 누구이든 그는 중생이 아니게 됩니다. 따라서 중생이 없기에 오직 부처님으로 살아가면 그만인, 삶의 진실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원이 자신에게 실현되기에 어떤 근심이나 걱정도 앞세울 새가 없습니다.
어둠을 없애려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어둠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만일 어둠이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세상에 다시없는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도저히 어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둠은 단지 밝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데 지나지 않으므로, 칠흑처럼 깜깜한 어둠일지라도 빛 한줄기가 비치는 순간 온데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대로 산다는 것은, 삶이 온통 빛으로 가득 찬 상태인 원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은 이미 부처님에 의해 성취되었으므로, 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살아가는 게 됩니다. 비록 현상적인 모습으로는 우리가 염불하는 것 같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부처님이 우리를 향해 염불하고 계심에 응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원력으로 성취된 참생명의 도리를 언제 어느 곳에서나 기억하는 염불(念佛)의 공덕은 몇 만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원력을 믿고 의심치 않을 때, 그 원력은 이제 자신에게 실현됩니다. 그렇기에 염불은 하고 말고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참된 삶을 살려는 참생명의 절박(切迫)한 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갖가지의 세상사마다 일일이 촐랑거리며 쫓아다니지 맙시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에 지레 한계를 긋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살려주는 은혜를 무한히 기억해 내고 잊지 않는 염불에 의지해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염불을 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성취하신 원을 연습하여 현실로 드러내는 적극적인 삶의 표현입니다.
법우여, 노는 입에 염불하지 않으시렵니까?
<문사수법회 여여법사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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